공천제도 30년, 기로에 선 지방자치 민선 30년의 관성, 공천의 재점검 미니 총선의 그늘을 걷어내려면 다양성을 담는 선거구, 어디까지 확장할까 강주성 기자 hoahn01@hanmail.net

2025년 08월 28일(목) 11:25

진짜 지방자치’를 위한 모색

지방자치 30년, 논쟁의 축은 다시 “정당공천제”로 모인다. 1995년 민선 도입 이후 기초의회까지 정당공천이 전면 허용된 2006년을 거치며 제도는 뿌리내렸지만, 2022년 선거에서 무투표 321곳과 양당 의석 93.6%라는 지표는 대표성의 경고음을 울렸다. 여성·청년 비율도 전국 평균에 비해 낮다. 국회에선 3~5인 중대선거구 전면 도입과 비례 확대가 논의되고, 여권은 ‘도농복합형’ 절충을 저울질 중이다. 제도 개선의 방향은 분명하다. 다만 ‘무조건의 폐지’도, ‘현행 유지’도 해답이 아니다. 책임성과 대표성을 함께 키우는 촘촘한 설계와 실행이 관건이다. 선거구획정 법정 시한(통상 선거일 6개월 전)을 지키고, 현행 규정과의 정합성을 사전에 점검하는 일정 관리 역시 성패를 가를 변수가 된다.

30년의 공과, 빛과 그림자를 넘어
1995년 제1회 지방선거로 단체장·의회 동시 선거가 시작됐고, 2006년부터는 기초의회에도 정당공천이 전면 허용됐다. 정당은 후보를 걸러내고 공약을 묶어 유권자 선택 비용을 낮춘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2022년 선거에선 일부 지역에서 3~5인 중대선거구가 시범 도입되며 다양한 대표를 넓히려는 실험도 시작됐다. 이를 둘러싼 평가는 엇갈리지만, ‘경쟁 활성화’라는 취지 자체는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현실의 성적표는 엇갈렸다. 같은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 선거구가 321곳까지 늘었고, 거대 양당이 당선자의 93.6%를 가져갔다. 광역의회 여성 비율은 약 19.8%, 기초의회 여성은 33.4%, 2030 청년 의원은 10.1% 수준이었다. ‘표심의 다원성’이 ‘의석의 단순성’으로 번역되는 구조가 굳어졌다는 지적이 힘을 얻었다. 특히 농촌·소도시일수록 후보 난립과 경쟁 부재가 동시에 나타나는 역설이 관찰돼, 선거구 설계와 후보자 발굴의 병행 처방이 요구된다.

이 구조가 지역정치의 상상력을 제약한다는 비판도 크다. 중앙 정당의 이해가 지역 후보 선발에 우선할 때, 지방선거는 ‘미니 총선’으로 변질되고 공천 파동·밀실야합·금품비리 같은 부작용이 되풀이된다. 동시에 제도의 장점—정당 책임정치와 정책 일관성—또한 부정할 수 없기에, ‘빛과 그림자’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 공천의 기준을 공개하고, 결과를 사후 평가하는 시스템을 제도화하지 못하면 같은 논쟁은 다시 반복될 것이다.

책임정치의 보루인가, 중앙정치 예속의 족쇄인가
옹호론은 분명하다. 정당은 후보 검증의 첫 관문이며, 유권자는 정당명이라는 ‘정보 단서’ 덕에 낮은 정보 환경에서도 선택을 효율화한다. 당선 이후에도 정당 규범이 의정의 일관성을 담보한다. 기성정치의 벽이 높은 한국에서 신인·여성·청년에게 정당은 진입 통로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중앙·광역과의 정책 연계에선 정당 네트워크가 행정 조정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반대론은 뿌리 깊다. 공천권이 중앙에 있을수록 후보는 주민보다 권력에 충성하게 되고, 지역 의제는 중앙정치의 프레임에 종속된다. 다당 구성이 늘면 합의 비용과 의회 비효율이 증가하고 책임소재가 애매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과거 ‘무정당’ 실험이 지역 토호 강화·책임정치 약화로 귀결될 위험을 경고하는 연구도 존재한다. 특히 기초단위에서 조직·자금력을 갖춘 이해집단이 경선·본선 모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크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오픈프라이머리는 공천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지만, 역선택·비용 부담·현역 프리미엄 같은 부작용이 명확하다. 따라서 핵심은 제도의 ‘채택’ 자체가 아니라, 공천 과정의 공개성·심사 기준·사후 평가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예컨대 안심번호 국민경선, 현장 청문·정책검증, 이해충돌·형사 리스크에 대한 사전 공시 등 절차를 고도화하면 ‘예속’의 우려를 줄이면서도 정당의 책임성은 유지할 수 있다.

폐지, 오픈프라이머리, 지역정당… ‘진짜 지방자치’를 위한 모색
국회에는 2025년 7월 ‘광역·기초 3~5인 중대선거구 전면 도입 + 비례 최소 20%’를 골자로 한 개정안이 올라와 있다. 입법조사처도 3인 이상 선거구 확대와 비례 정수 확대를 통해 여성·청년·소수정당의 진입장벽을 낮추자고 제안한다. 2022년 시범지역에서 소수정당 당선 비율이 높았다는 분석 역시 ‘대표성 개선’의 근거로 거론된다. 다만 지방비례 5% 컷오프, 비례 후보 여성 50%·홀수순번 여성 배치 의무 등 현행 규정과의 충돌·보완 관계를 세밀히 짚어야 한다.

동시에 균형의 과제도 분명하다. 여권이 검토하는 ‘도시는 중대·농촌은 현행’ 절충은 농촌 대표성 약화 우려를 달래려는 시도다. 제도 변경을 2026년 선거에 적용하려면 선거구획정 법정시한(통상 선거일 6개월 전)과 같은 시간표도 지켜야 한다. 획정 지연은 후보 발굴과 유권자 교육을 동시에 어렵게 만들어 취지를 반감시키는 ‘숨은 비용’을 낳는다.

결론은 문화와 실행이다. 어떤 모델이든 공천 기준의 공개, 안심번호·현장검증 같은 시민참여 경선의 상설화, 윤리·자격·성과의 사후평가가 병행돼야 한다. 제도가 바뀌어도 운영 문화가 그대로라면 ‘그들만의 리그’는 끝나지 않는다. 책임성과 대표성을 함께 키우는 설계—그것이 30년의 배움을 다음 30년의 표준으로 바꾸는 길이다. 지방의회가 생활정치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 그물망’이 되려면, 이번 개혁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으로 증명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