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탓? 댐 탓?" 서시교 철거 논란 격화 주민들, 1만 명 서명부 "멀쩡한 다리 철거 반대" 익산청, "감사 결과 및 하천 기본 계획 따라 진행" 서시교 철거 둘러싼 해묵은 갈등, 다시 수면 위로 김태리 기자 hoahn01@hanmail.net

2025년 09월 09일(화) 08:59

서시교 철거 반대를 외치고 있는 구례 군민들(사진 제공 - 정연권 전 구례농업기술센터 소장)

전남 구례의 한 다리를 둘러싼 갈등이 다시 전국적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5년 전 구례읍을 집어삼켰던 침수 피해의 원인을 놓고 지역 주민과 익산지방국토관리청 간 첨예한 책임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권익위원회가 직접 중재에 나섰다. 당시 수천억 원 재산 피해 남겼던 침수 피해의 원인을 둘러싼 책임 공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은 감사원 지적에 따라 서시교 철거 방침을 고수하는 반면, 주민들은 수해 근본 원인이 교량이 아닌 섬진강댐 관리 미흡에 있다고 강력히 반박하고 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국민권익위원회가 직접 중재에 나서 그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기록적 폭우와 뼈아픈 피해, 감사원의 지적

2020년 8월, 구례 지역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는 섬진강 지류인 서시천의 범람을 불러왔고, 서시교 하부 제방이 붕괴되면서 구례읍 시가지 일대가 물에 잠기는 사태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수천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남긴 이 사건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감사원이 나섰고, 2023년 수해 원인을 서시교 및 서시1교 하부 제방이 설계 기준보다 낮아 물이 넘친 것으로 최종 결론 내렸다. 이에 따라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은 감사원의 지적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서시교를 철거하고 재가설하는 방침을 결정했다.

주민들 "수해 원인은 댐 방류… 철거는 부당"

그러나 주민들의 입장은 익산지방국토관리청과는 확연히 다르다. 주민들은 수해의 근본 원인이 서시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섬진강댐의 대량 방류와 홍수위 조절 실패에 있다고 강력히 반박하며 서시교 철거에 결사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지난달 집중호우 사례다. 지난달에는 5년 전 수해 때보다 100㎜ 이상 더 많은 비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큰 피해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김창승 서시교 대책위 상임대표는 "지난달 엄청난 폭우에도 홍수위가 5년 전보다 7m 낮았고 댐 방류는 6톤 정도였다. 5년 전 수해 원인은 명백히 댐의 대량 방류와 물그릇 조절 실패에서 비롯됐다. 지난달 호우는 이를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익산청이 신규 다리를 개설해 교통 약자인 노인층의 편의를 도모해도 모자랄 판에 멀쩡한 다리를 철거하려 한다. 다리를 없애고 인근 도로를 우회하라는 안을 지속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주민들의 생활 편의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1만 명 서명부와 권익위의 중재

서시교 철거 반대 움직임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서시교 지키기 구례군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달 정부와 국회, 대통령실, 권익위 등을 직접 찾아 '서시교 철거 반대 1만 명 서명부'를 전달하고 시위를 벌이며 주민들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구례군 인구 2만 3천 명 중 1만 명이 서명에 참여했다는 것은 구례군민 40% 이상이 서시교 존치를 찬성하고 있다는 의미로,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지역 여론이다.

결국 이러한 주민들의 목소리와 첨예한 대립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국민권익위원회가 직접 중재에 나섰다. 권익위가 8월 27일 구례군청에서 익산국토관리청, 영산강유역환경청, 전남도, 한국수자원공사, 구례군, 구례군의회 등 관련 기관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시교 관계 기관 회의를 개최하면서 어떤 결과가 도출될지 지역 주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익산국토관리청은 감사원 결과와 하천 기본 계획 등 관련 법규에 따라 절차대로 진행 중이라며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통 불편, 지역 경제 침체 우려… 다각적 문제 제기

단순히 교량 철거 문제를 넘어, 주민들은 다각적인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서시교는 국도 17호선, 18호선, 19호선이 만나는 구례의 주요 교통 요지로, 하루 6천 대 이상의 차량이 오가는 핵심 도로다. 서시교가 철거될 시 우회 도로를 1.2㎞나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여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막대한 불편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특히 교통 약자인 노인층의 불편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다리 공사가 진행된다면 구례읍으로 진입하는 접근성이 떨어져 관광객 유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그렇지 않아도 인구 소멸 위기에 직면한 구례군이 이러한 교통 불편과 관광객 감소로 인해 지역 경제 침체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근본적인 섬진강 수계 관리 시스템 개선 요구

일부 전문가들은 수해의 근본적인 원인을 섬진강 하상 구조 자체에서 찾고, 섬진강 수계 관리 시스템의 전반적인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서시천이 섬진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이 곡선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시천 쪽으로 배수 효과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홍수위가 올라가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자연적인 현상인 만큼, 단순히 교량을 철거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주민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나아가, 이번 기회에 아예 섬진강 수계를 전담하는 전문 조직을 신설하여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수계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까지 현장 조사에 나선 서시교 철거 논란은 단순한 지역 갈등을 넘어, 과거 수해의 원인 규명, 지방 소멸 위기 속 지역 주민들의 생존권 문제, 그리고 국가 하천 관리 시스템의 개선까지 아우르는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과연 권익위가 나선 중재 회의에서 어떤 해법이 도출될지, 구례군민들의 시선이 권익위로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