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희, 붓으로 고향 구례를 노래하다 돌아온 고향, 비로소 마주한 풍경의 재발견 전통의 숨결로 그려낸 오늘의 산수(山水) 그림은 행복의 초대, 관객과 나누는 평안 김태리 기자 hoahn01@hanmail.net

2025년 09월 09일(화) 13:21

이강희 작가의 '산수유 연가'

구례의 산과 강, 봄이면 온 동네를 꽃바다로 만드는 산수유꽃. 한 화가의 붓끝에서 익숙한 고향의 풍경은 경이로운 사계의 절경으로 다시 태어난다. 구례 출신으로 오랜 시간 한국화 외길을 걸어온 이강희 화백. 그의 작품 세계는 그가 나고 자란 땅, 구례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20대 중반부터 그림을 그려왔지만, 전업 작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12년 전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면서부터다.

수도권에 살며 좋은 경치를 찾아 교외를 헤매던 과거와 달리, 이제 그는 눈을 돌리면 보이는 모든 풍경이 그림의 소재가 되는 축복 속에 산다. 그의 그림은 전통 한국화의 기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선 오늘의 풍경을 담아내 현대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는다. 본지는 이강희 화백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지탱하는 구례의 자연과 예술에 대한 그의 소박하고도 단단한 철학을 들었다.

돌아온 고향, 비로소 마주한 풍경의 재발견

이강희 화백은 구례산동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서울로 전학하기 전까지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고향에서 보냈다. 그리고 12년 전, 태어났던 본가로 다시 돌아왔다. 귀향은 그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는 “겪어보니 구례의 산과 강 등 자연 풍경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습니다”라고 말한다. 어릴 적에는 그저 일상이었던 풍경들이 세월의 더께를 지나 비로소 경이로운 아름다움으로 다가온 것이다. “수도 없이 보고 자랐던 산수유꽃의 아름다움도 깨닫게 되었고 기온과 날씨 따라 변하는 모든 계절이 경이롭게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재발견은 그의 작업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 한국화 중 실경산수화를 주로 그렸던 그는 “수도권에 살면서 작업을 할 때는 좋은 경치를 찾아 교외로 야외 사생을 다니고,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눈에 담아 와 작업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먼 곳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어졌다. “구례에 내려온 후로는 보이는 모든 풍경이 그림 소재가 되었습니다.” 특히 그가 사는 산동면은 봄이면 산수유꽃이 온 동네를 꽃바다로 만들어, 그에게 가장 사랑받는 그림 소재가 되어주었다.

전통의 숨결로 그려낸 오늘의 산수(山水)

그의 작품은 전통에 기반하면서도 현대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그 비결에 대해 그는 “수묵화를 공부하며 배웠던 옛 관념적인 산수화를 벗어나 실제 풍경을 각색하지 않고 그대로 그림에 담으려고 노력하는데, 그 부분이 좋은 평을 듣는 것 같습니다”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의 그림이 전문가의 평론보다 마을 주민들의 소박한 감상에서 그 진가를 드러내는 이유다. 그림을 잘 모르는 마을 분들조차 그의 그림을 보면 “여기가 거기구만. 그림으로 그려 놓으니 아주 멋지네”라며 무릎을 친다. 이는 그의 그림이 박제된 풍경이 아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와 연 첫 개인전의 제목은 ‘내 고향 산동의 향기전’, 두 번째는 ‘아! 그래 구례전’이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그는 오롯이 구례의 실제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우리 고장 분들이 내 고향의 아름다움을 그림을 통해서라도 새롭게 느꼈으면 해서였습니다.”

현대미술 속에서 실험적인 정신으로 새로운 한국화 영역을 개척하는 젊은 작가들의 노력을 존중하면서도, 그는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걷는다. “전통 한국화의 기법을 지키며 꾸준히 발전시켜 가야 할 작가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에게 전통은 낡은 유물이 아니라, 오늘의 풍경을 담아내는 살아있는 숨결이다.

고향 구례로 귀촌하여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강희 작가.

그림은 행복의 초대, 관객과 나누는 평안

화가로서의 창작 활동뿐만 아니라, 그는 한국미술협회 구례지부 사무국장으로서 지역 미술 발전을 위한 헌신도 마다하지 않는다. 구례는 활동 작가가 적어 어려움이 많지만, 그는 서예, 민화 등 참여 분과를 확장해 회원을 늘리고, 10년간 각 마을의 이야기를 담은 공공벽화를 꾸준히 작업하며 군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또한, 열악한 전시 공간을 개선하고 새로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동료 회원들과 함께 노력 중이다.

이 모든 활동의 근원에는 그가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픈 메시지가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제 그림을 보면서도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졌으면 합니다.” 그의 실경산수화 속에 유독 행복해 보이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도 그 그림을 그릴 때 그림 속의 인물처럼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행복이 그림을 통해 관객에게 전이되는 것, 그것이 그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소통이다. 그는 관람객들이 자신의 그림을 보며 더 평안하고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오십이 넘을 때까지 직장 생활과 그림을 병행해야 했던 고된 시간 속에서도 예술은 그에게 “인생을 살아오는데 늘 든든한 뒷받침이 되어 주었습니다.” 휴일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때로 생활의 큰 활력소였다. 이제 전업 작가로서 온전히 그림에 몰두할 수 있게 된 그는, 그동안 미뤄왔던 풍경들을 큰 화폭에 마음껏 그려볼 계획이다. 그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다. “그저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관람객들과 전시장에서 자주 만나 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의 소박한 바람처럼, 그의 그림이 주는 평안과 행복을 더 오래, 더 많은 이들이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