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군 1조 살림, '붙박이 금고' 이대로 좋은가 "군민의 돈으로 굴린 금고, 과연 지역에 얼마나 되돌려줬을까?" "수십억 이익에도 '생색내기' 비판… 금리 인상기, 은행의 '금고 특수' 그 이면" "4년 주기 금고 재지정, 출연금 경쟁 대신 '진정한 지역 공헌'이 우선되어야" 송태주 기자 hoahn01@hanmail.net

2025년 10월 16일(목) 14:36

농협은행 /출처-KBC

한 해 예산 4천억 원, 각종 기금까지 합하면 4년간 운용되는 자금은 1조 원을 훌쩍 넘는다. 인구 2만 4천여 명의 작은 지자체 구례군의 살림 규모다. 이 막대한 자금을 관리하고 운용하는 '곳간 열쇠'는 누가 쥐고 있을까? 바로 '군 금고'로 지정된 금융기관이다.

군 금고는 단순히 군의 예산을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다. 군의 세입·세출을 총괄하고, 여유자금을 굴려 이자 수익을 내며, 때로는 군에 저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금융 파트너다. 더 나아가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군민들에게 금융 편의를 제공하는 핵심 기관이기도 하다.

지난 수십 년간 구례군 금고는 NH농협은행 구례군지부(이하 농협)가 굳건히 지켜왔다. 특히 최근 5년을 돌아보면, 사실상 경쟁 없는 '독주 체제'였다. 농협은 구례군민에게 가장 친숙한 은행이자 농업이 중심인 지역 특성상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초저금리 시대의 종식과 고금리 시대의 도래, 그리고 금융 환경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군민의 한 사람으로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우리의 소중한 세금으로 채워지는 군 금고는 지난 5년간 구례군과 군민을 위해 최선의 역할을 다했을까? 농협이 얻어간 막대한 이익만큼, 그 혜택은 온전히 지역사회로 환원되었는가? 구례군 금고의 과거와 현재를 면밀히 분석하고 미래를 조망해 본다.

1. '붙박이 금고'의 5년… 안정인가, 안주인가?

지난 5년간 금고 지정 현황

지방회계법에 따라 지자체 금고는 4년마다 경쟁을 통해 새롭게 지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구례군의 지난 5년을 포함한 최근 금고 지정 과정을 살펴보면 '경쟁'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다. 2019년부터 현재까지 제1금고는 변함없이 NH농협은행 구례군지부였다.

구례군 내에 본점 또는 지점을 둔 금융기관은 몇 곳 있지만, 읍·면 단위까지 촘촘한 지점망과 ATM을 갖추고 고령층 군민의 이용 편의성까지 확보한 곳은 농협이 유일하다시피 하다. 이는 금고 선정 평가항목 중 '주민 이용 편의성'에서 압도적인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른 은행들이 막대한 출연금(협력사업비)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사실상 농협의 수성이 유력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물론 이러한 안정성이 주는 장점도 분명하다. 금고 교체 시 발생할 수 있는 행정 시스템의 혼란이나 공무원 및 군민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경쟁 부재로 인한 '안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경쟁이 없으면 금고 은행은 더 나은 금리 조건, 더 많은 지역사회 공헌, 더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동기를 잃기 쉽다. 지난 5년간 농협의 독주가 구례군에게는 '안정'이었을까, '안주'였을까.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2. 금고의 수익 극대화, 우리의 세금은 어떻게 운용됐나?

기본 이율 추이와 은행의 수익

금고 은행의 가장 큰 수익원은 지자체의 막대한 예금을 낮은 이자로 유치해 높은 이자로 대출해주는 '예대마진'이다. 지난 5년간 기준금리 변동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① 초저금리 시대 (2019년 ~ 2021년):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1%대에서 0.5%까지 떨어졌던 시기다. 이때 구례군이 각종 보통예금, 정기예금에 예치한 자금에 대한 이자율 역시 연 0.1% ~ 1% 초반대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군은 사실상 '이자 없는 돈'을 금고에 맡겨둔 셈이다. 반면 농협은 이 안정적인 자금을 바탕으로 기업대출, 가계대출 등을 통해 꾸준한 이자수익을 창출했다.

② 고금리 전환 시대 (2022년 ~ 현재): 기준금리가 3.5%까지 치솟으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군이 예치한 자금에 대한 이자율도 3~4%대로 상승하며 군의 이자수익(세외수입)이 크게 늘었다. 이는 긍정적인 측면이다. 하지만 여기서 군민들은 질문해야 한다. 당시 시중에는 연 5%를 넘나드는 특판 예금 상품이 쏟아졌다. 과연 구례군은 금고와의 약정금리 안에서만 자금을 운용했을까, 아니면 단기적으로라도 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금융상품을 찾아 자금을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노력을 기울였을까? 금고 은행이 군의 수익 극대화를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컨설팅하고 협조했는지도 중요한 평가 잣대다.

결국 지난 5년간 농협은 저금리 시기에는 안정적인 자금을 확보해 이익을 냈고, 고금리 시기에는 예대마진을 통해 또 다른 수익을 올리는 '꽃놀이패'를 쥔 셈이다. 군민의 세금이 금고 은행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든든한 발판이 되어준 동안, 그 과실은 어떻게 분배되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3. 금고가 군민에게 준 혜택, 체감도는?

금고 은행은 지역사회와 주민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지난 5년간 농협이 제공한 혜택은 크게 직접적인 것과 간접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직접적 혜택: 금융 편의성과 우대 상품
가장 큰 혜택은 단연 '이용 편의성'이다. 구례읍은 물론, 문척면, 간전면 등 면 단위 지역 어르신들도 가까운 농협 지점에서 편리하게 지방세, 공과금을 납부하고 금융 업무를 볼 수 있었다. 이는 다른 은행이 따라오기 힘든 농협만의 강점이다.

또한, '구례군민 우대 예·적금'이나 '소상공인 특별 대출'과 같은 지역 맞춤형 금융상품을 출시해 군민들에게 실질적인 금리 혜택을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우대 상품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홍보되고, 얼마나 많은 군민이 혜택을 보았는지에 대한 체감도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간접적 혜택: 협력사업비를 통한 지역 환원
금고 지정 시 은행은 '지역사회 기여 및 지자체와의 협력사업 계획'의 일환으로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에 달하는 출연금(협력사업비)을 지자체에 제공한다. 이 돈은 구례군의 세외수입으로 편성되어 다양한 공익사업에 쓰인다.

지난 5년간 농협이 제공한 협력사업비는 ▲지역 인재 육성을 위한 장학금 지급 ▲구례산수유꽃축제 등 지역 대표 축제 후원 ▲소외계층 지원 사업 ▲공공시설 개선 사업 등의 재원이 되었다. 우리가 무심코 즐겼던 축제, 우리 아이들이 받은 장학금 속에 군 금고의 기여가 녹아 있는 것이다. 이는 분명 긍정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이러한 기여 활동이 군민들에게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농협이 금고 운영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는 만큼, 이 정도는 당연한 것 아니냐"는 인식을 넘어, "우리의 세금을 관리해주는 대가로 농협이 우리 지역에 이렇게 기여하고 있다"는 긍정적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4. 지역경제의 혈맥, 하지만 '독점'의 그림자

금고 지정은 단순히 자금 관리를 넘어 지역경제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긍정적 영향: 지역 자금의 선순환
농협은 '지역 자금의 역외 유출 방지'라는 중요한 순기능을 수행한다. 군 예산과 군민들의 예금을 통해 조성된 자금을 지역 내 소상공인, 농업인, 중소기업에 대출해줌으로써 지역 경제의 혈맥 역할을 한다. 특히 농업 기반이 절대적인 구례에서 농업 정책자금 대출, 농기계 구입자금 지원 등 농협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금고 은행으로서 확보한 안정적인 자금은 이러한 지역 밀착형 금융 지원의 든든한 기반이 된다.

우려되는 점: 금융 생태계의 고착화
반면, 한 금융기관의 장기적인 독점은 지역 금융 생태계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만약 다른 은행이 경쟁을 통해 구례군에 새롭게 진입한다면, 기존 금고인 농협을 견제하고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예를 들어, 신규 진입 은행이 '소상공인 지원센터'를 운영하거나, '청년 창업 특화 대출'을 파격적인 조건으로 내놓는다면 지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농협의 독주 체제는 이러한 '메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군민과 지역 기업들의 금융 선택권이 제한되고, 전체적인 금융 서비스의 질이 상향 평준화될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5. 사회공헌, '의무'인가 '진심'인가?

금고의 사회공헌활동은 평가 항목 중 하나이자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의 표현이다. 지난 5년간 농협은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쳐왔다.

대표적 활동:
장학사업: 매년 지역 학생 수십 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며 교육 환경 개선에 기여했다.
농촌 일손 돕기: 농번기마다 임직원들이 직접 나서 일손이 부족한 농가를 도왔다.
소외계층 지원: 연말연시 김장 나눔, 난방유 지원, 저소득층 생필품 전달 등 꾸준한 활동을 펼쳤다.
금융 교육: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을 실시하는 등 재능기부 활동도 진행했다.

이러한 활동들은 분명 박수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금고 지정 평가를 앞두고 '보여주기식'으로 집중되거나,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진정한 사회공헌은 지역사회가 현재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고, 금고 은행의 전문성을 살려 지역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진정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구례군의 인구 소멸 위기 극복을 위해 '청년 귀농·귀촌 정착 지원 금융 프로그램'을 지자체와 공동으로 기획·운영하거나, 지역 농산물 판로 개척을 위해 농협의 유통망과 금융을 결합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결론: 차기 금고 선정, '익숙함'을 넘어 '최선'을 택해야

지난 5년간 NH농협은행은 구례군의 안정적인 재정 관리 파트너이자 군민들의 편리한 금융 동반자로서 많은 역할을 수행해왔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구례군은 '익숙함'과의 결별을 각오하고, 더 냉철한 기준으로 차기 금고를 바라봐야 한다. 다가올 금고 선정 과정에서 군과 군의회, 그리고 군민들은 다음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첫째, 우리의 세금을 가장 높은 수익률로 안전하게 운용해 줄 금융 전문성을 갖추었는가?
둘째, 군민의 편의성을 넘어, 급변하는 디지털 금융 환경에 맞는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셋째, 수천억 원의 이익에 걸맞은 규모와 진정성을 담아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구례군의 미래 비전에 동참할 파트너인가?

경쟁은 더 나은 결과를 낳는다. 설령 차기 금고 역시 농협으로 결정되더라도, 치열한 경쟁 과정을 거친 후의 결과는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다른 은행들의 도전을 이겨낸 금고는 더 큰 책임감을 갖고 군과 군민을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군 금고는 특정 은행의 전유물이 아니다. 2만 4천 구례군민 모두의 자산을 관리하는 '공공의 곳간'이다. 다가올 금고 선정은 향후 4년간 구례의 살림살이를 책임질 파트너를 뽑는 중차대한 과정이다. 군민 모두가 감시자가 되어, 우리의 곳간을 가장 훌륭하게 채우고 지킬 수 있는 '최고의 일꾼'을 뽑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