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2조 원 육박하는 곡성군 살림… 금고 은행의 빛과 그림자 수천억 군민 혈세, 은행의 수익 잔치 지역 상생인가, 거액의 자리세인가 송태주 기자 hoahn01@hanmail.net

2025년 10월 27일(월) 15:46

출처 KBC

곡성군의 한 해 예산은 약 5,000억 원에 달한다. 4년 임기의 군 금고가 관리하는 돈은 단순 계산으로도 2조 원에 육박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이 막대한 군민의 혈세는 어디에, 어떻게 보관되고 운용될까? 군민 대다수는 세금을 내거나 민원서류를 떼러 군청 옆 은행에 들를 때 잠시 스칠 뿐, 그 거대한 돈의 흐름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는 많지 않다.

최근 5년간 곡성군의 살림을 도맡아 온 지정 금고를 군민의 관점에서 심층 취재했다. 금고 지정 현황부터 수익구조, 그리고 그 수익이 우리 군민에게 어떤 혜택으로 돌아오는지, 더 나은 상생을 위한 과제는 없는지 꼼꼼히 짚어본다.

5년간의 ‘굳건한 파트너’, NH농협은행 곡성군지부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근 4년간 곡성군의 제1 금고는 NH농협은행 곡성군지부가 변함없이 맡아왔다. 2025년 까지 4년 약정 기간에 이어, 올 해 상반기에 재공고를 통해 2029년까지 앞으로 4년간의 금고 운영권도 확보했다. 곡성군이 1금고(일반회계 및 특별회계)와 2금고(기금)를 분리하지 않고 통합 운영하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군의 모든 자금은 농협은행을 통해 관리되는 셈이다.

농업이 지역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곡성군의 특성상, 군내 가장 많은 지점과 ATM을 보유하고 농업인 조합원과 깊은 유대감을 형성해 온 농협은행의 금고지기 역할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주민이용 편의성’과 ‘지역사회와의 협력’ 측면에서 타 은행이 넘보기 힘든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러한 ‘굳건함’이 때로는 경쟁 없는 ‘독점’으로 비치며, 군민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금고의 수익 극대화, ‘제로금리’에 가까운 군민의 돈

금고 은행은 어떻게 수익을 낼까? 핵심은 ‘예대마진’에 있다.

지자체 금고에 예치되는 수천억 원의 자금 대부분은 수시 입출금이 가능한 보통예금 계좌에 머문다. 이들 자금은 세금 수납, 인건비 지급, 사업비 집행 등 매일같이 드나드는 ‘대기성 자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자금에 적용되는 이율이 연 0.1% 수준, 사실상 ‘제로금리’에 가깝다는 점이다.

최근 4년간의 금리 추이를 보면 이 구조는 더욱 명확해진다.

저금리 시기 (2020~2021년):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0.5%까지 떨어졌던 시기. 이때는 예금과 대출 금리 모두 낮아 예대마진이 크지 않았다.
고금리 시기 (2022~2023년): 물가 급등으로 기준금리가 3.5%까지 치솟았다. 시중 대출금리는 5~7%를 넘나들었다. 이 시기, 금고 은행은 0.1%의 저비용으로 조달한 군 예산을 고금리 대출로 운용하며 막대한 이자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군 예산이 보통예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유자금은 정기예금 등으로 운용되지만, 핵심적인 운영자금은 여전히 초저금리로 묶여있다. 금고 은행 입장에서 군 금고 유치는 ‘땅 짚고 헤엄치는’ 가장 확실한 수익 사업인 셈이다. 2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거의 무상으로 확보해 높은 이윤을 창출하는 이 구조가 과연 군민에게 최선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주민이 받은 혜택: 편의성과 ‘협력사업비’라는 이름의 환원

물론 금고 은행은 막대한 수익을 독식하지만은 않는다. 그 대가로 군과 군민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첫째, 압도적인 납부 편의성이다. 군민들은 지방세, 상하수도 요금, 과태료 등 각종 공과금을 가까운 농협 창구나 ATM, 모바일 앱을 통해 수수료 없이 편리하게 납부할 수 있다. 특히 고령 인구가 많은 우리 군의 특성상, 읍면 단위까지 촘촘하게 깔린 오프라인 지점망은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에게는 필수적인 서비스다.

둘째, 금고 지정의 대가로 제공하는 ‘지역사회 협력사업비(출연금)’다. 이는 금고 은행이 벌어들인 수익의 일부를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이 돈은 군의 재정만으로는 부족했던 다양한 사업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

지난 4년간 농협은행은 △곡성세계장미축제 등 지역 대표 축제 후원 △지역 인재 육성을 위한 장학금 지급 △코로나19 방역물품 지원 △저소득층 및 독거노인 난방비 지원 △귀농·귀촌인 정착 지원 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형태로 군정에 협력해왔다. 이러한 협력사업비는 단순한 기부를 넘어, 군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넓히고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한다.

금고 지정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상생’과 ‘과제’

NH농협은행의 금고 운영은 곡성 경제에 깊숙이 관여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장 큰 순기능은 ‘지역 자금의 역내 순환’이다. 군 금고 운영을 통해 얻은 수익과 조달된 자금이 다시 지역 농업인과 소상공인을 위한 저금리 대출, 농기계 구입 자금 지원, 스마트팜 구축 지원 등 지역 맞춤형 금융상품으로 공급된다. 이는 지역 경제의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협력사업비를 통한 축제나 행사 지원은 외부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 상권을 활성화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지역 인재로 성장하고, 복지 지원을 받은 이웃이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 모두 지역경제의 잠재력을 키우는 선순환 구조의 일부다.

하지만 ‘그림자’도 존재한다. 장기간 한 은행이 금고를 독점하면서 금융 서비스 경쟁이 실종될 수 있다는 우려다. 예를 들어, 다른 은행이 더 혁신적인 모바일 행정 서비스를 제안하거나, 더 높은 협력사업비를 약속하며 경쟁에 뛰어들 유인이 차단될 수 있다. 주민 편의성 평가에서 오프라인 지점 수의 비중이 여전히 높은 현행 평가 방식이 디지털 시대에 뒤처진 것은 아닌지, ‘출연금’ 규모가 금고 선정의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은 아닌지 점검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기여: 금고의 사회공헌 활동들

금고 은행의 사회공헌은 협력사업비 외에도 다양하다. 본지 취재 결과, NH농협은행 곡성군지부는 지난 4년간 다음과 같은 활동을 꾸준히 펼쳐왔다.

농촌 일손 돕기: 수확철마다 직원들이 직접 나서 양파, 마늘 수확 등 일손이 부족한 농가를 도왔다.
금융 교육: 지역 내 초·중·고등학교를 방문해 청소년을 위한 금융 사기 예방 및 합리적 소비 교육을 진행했다.
환경 정화 활동: ‘깨끗한 곡성 만들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섬진강변 등 주요 관광지 환경 정화 활동에 정기적으로 참여했다.
‘또 하나의 마을’ 운동: 기업 CEO를 농촌 마을의 명예이장으로 위촉하고, 직원들이 마을의 숙원사업을 돕는 등 도농 교류의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활동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금전적 혜택은 아닐지라도,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려는 은행의 노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금고 은행이 단순한 ‘자금 관리인’을 넘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지난 5년간, 그리고 앞으로 4년간 NH농협은행은 곡성군의 든든한 금융 파트너로서 안정적으로 군 자금을 관리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해왔다. 그 공로는 분명히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군민의 입장에서 질문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의 소중한 세금이 만들어낸 막대한 수익이 과연 최선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는가? 안정과 익숙함에 기댄 채, 더 나은 혜택과 서비스를 제공할 기회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4년 뒤 새로운 금고 지정 시기가 다가올 때, 곡성군과 군의회, 그리고 군민은 더 날카로운 시선으로 금고 은행을 바라봐야 한다. 단순히 ‘얼마를 더 낼 것인가’의 출연금 경쟁을 넘어, 우리 군의 미래 비전(청년 농업인 육성, 스마트 관광 도입 등)에 어떤 금융적 지원을 할 수 있는지,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행정 편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지역사회와 상생할 더 창의적인 방안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물어야 한다.

곡성군의 금고는 단순한 은행이 아니다. 군민의 희망과 미래를 담보하는 거대한 저수지다. 이 저수지의 물이 지역 곳곳에 가장 효율적이고 풍성하게 흘러넘칠 수 있도록, ‘당연한 파트너’를 ‘더 똑똑하고 건강한 파트너’로 만들어가는 것은 이제 우리 군민 모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