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리 들판에 묻힌 전우치, 담양 의적 서사가 되다

황금리 들에 묻힌 의적의 꿈
구름 타고 넘어간 권력의 문
금빛 전설로 걷는 담양 여행

정원채 기자 hoahn01@hanmail.net
2026년 05월 13일(수) 17:31
전우치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수북면 황금들녘. [사진=담양군]
담양 수북면 황금리에 들어서면 먼저 보이는 것은 요란한 표지판이 아니라 들판과 물길이다. 그러나 이 조용한 마을의 이름 뒤에는 황금보다 오래 살아남은 이야기가 흐른다. 전우치가 중국 궁궐에서 거둔 황금 들보를 쌀로 바꿔 백성에게 나누고, 남은 금을 훗날을 위해 이곳에 묻었다는 설화다. 금괴의 행방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황금이 누구의 밥이 됐는가 하는 질문이다. 그래서 황금리 전우치 설화는 단순한 도술담이 아니라, 담양이 품은 의적 서사의 한 장면으로 읽힌다.

강물 따라 남은 이름

황금리는 영산강 물길 가까이 자리한 마을이다. 큰길에서 한발 비켜선 들녘은 여행자의 속도를 늦춘다. 대숲으로 이름난 담양에서 이곳은 화려한 관광지라기보다 이야기의 배경에 가깝다. 황금이라는 지명은 사람을 먼저 혹하게 만들지만, 마을에 남은 설화는 재물의 유혹보다 공동체의 기억을 앞세운다. 전우치가 묻었다는 금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 금을 캐내지 못했다. 대신 이야기는 남았다. 보물은 땅속에 숨었지만, 전설은 입에서 입으로 옮겨 다니며 마을의 또 다른 재산이 됐다.
전우치는 고전소설 「전우치전」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졌다. 도술을 부리고 권세를 조롱하는 인물, 때로는 장난스럽고 때로는 위험한 영웅이다. 그러나 담양 황금리의 전우치는 영화 속 요괴 사냥꾼이나 소설 속 기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굶주림을 본 뒤 움직이는 사람이다. 이 지역 설화는 해적과 탐관오리의 횡포로 백성이 도탄에 빠진 때를 배경에 놓는다. 전우치의 도술은 하늘을 나는 재주가 아니라, 부당하게 쌓인 부를 백성의 밥상으로 돌리는 상상력으로 작동한다. 담양에서 전우치는 한 지점에 갇히지 않는다. 황금리는 금을 묻은 자리로, 금성산성 자락의 연동사 전승은 배움과 도술의 배경으로 회자된다. 여행자의 걸음은 그래서 점이 아니라 선이 된다. 마을과 산성, 강변과 들녘을 잇는 동안 전우치는 책 속 인물이 아니라 지역의 기억을 따라 이동하는 문화적 인물로 다시 살아난다. 이런 걷기는 화려한 인증 사진보다 오래 남는다. 전설을 알고 보는 들판은 비어 있지 않고, 강물 소리도 한 편의 오래된 기사처럼 읽힌다.
고전 소설 전운치전 [사진=나무위키]

황금 들보의 역전극

설화의 절정은 중국 궁궐 위에서 펼쳐진다. 전우치는 동자 한 쌍과 함께 구름을 타고 궁궐을 내려다본다. 그는 자신을 하늘의 선관이라 내세우며 옥황상제가 지상의 임금들에게 황금 들보를 하나씩 거두라 했다고 말한다. 왕권의 상징인 궁궐 들보가 한순간에 백성 구휼의 재원으로 바뀌는 장면이다. 권력의 천장을 받치던 금이 굶주린 사람의 쌀이 되는 순간, 이야기는 통쾌한 풍자극이 된다.
전우치는 그 황금 들보 일부를 팔아 쌀을 사고, 백성에게 나눠 준다. 남은 금은 때가 오면 쓰기 위해 황금리에 묻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황금리는 단순한 은닉 장소가 아니다. 미래의 정의를 맡겨 둔 장소다. 세상이 다시 어두워질 때 꺼내 쓸 몫, 아직 오지 않은 백성을 위한 비상금이 그 들판에 묻힌 셈이다. 결국 찾지 못한 금괴는 역설적으로 이야기를 더 오래 살렸다. 금이 발견됐다면 전설은 끝났겠지만, 금이 없기에 사람들은 지금도 묻는다. 우리 시대의 황금 들보는 어디에 있는가.

숨은 금보다 빛나는 질문

전우치 서사가 매력적인 이유는 선악이 지나치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우치전」은 작자와 연대가 분명하지 않고 여러 이본이 전한다. 전우치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전설에서 출발했지만, 소설 속에서는 도술로 조정을 속이고 횡포한 무리를 징벌하며 억울한 사람을 돕는 인물로 변주된다. 그가 언제나 완전한 성인은 아니다. 오만하고 즉흥적인 면도 있다. 그래서 더 인간적이다. 백성을 돕는 의협심과 도술에 취한 장난기가 한 몸에 들어 있어, 독자는 그를 영웅과 문제아 사이에서 바라보게 된다.
담양판 설화의 힘은 이 모순을 지역의 풍경 안에 내려놓는 데 있다. 황금리는 도시의 신화처럼 번쩍이지 않는다. 들판은 낮고, 강물은 천천히 흐르며, 마을은 조용하다. 바로 그 담백함이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만든다. 전우치가 묻었다는 황금은 탐욕을 부추기는 보물이 아니라, 불의한 시대를 견딘 백성의 바람이다. 금을 찾는 손보다 굶주린 이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마음, 권력보다 생명을 앞세워야 한다는 감각이 이 전설의 중심에 놓여 있다.
전우치 동굴 법당. [사진= 블로그 캡처]

여행은 전설을 깨운다

황금리 여행은 큰 볼거리 하나를 소비하는 방식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담양의 대숲과 정자, 강변길을 지나 수북면의 들녘에 이르면 여행은 풍경 감상에서 이야기 읽기로 바뀐다. 죽녹원과 관방제림, 메타세쿼이아길이 담양의 초록을 눈으로 보여 준다면 황금리는 담양의 상상력을 귀로 들려준다. 발밑의 흙을 보고, 물길의 방향을 보고, 마을 이름을 천천히 불러 볼 때 전설은 비로소 살아난다. 황금리는 금괴가 사라진 장소가 아니라, 의로움의 상상력이 묻힌 장소다.
이 길은 아이들과 걷기에도 좋다. 전우치의 도술은 판타지로 시작하지만 끝은 나눔이다. 구름을 타고 궁궐을 넘어간 이야기는 어린 세대에게 상상력을 주고, 황금을 쌀로 바꾼 대목은 어른들에게 공공성의 뜻을 다시 묻게 한다. 마을 해설이 곁들여진다면 황금리는 체험 관광의 무대가 되고, 지역 신문과 문화기획이 힘을 보태면 담양 의적 서사의 현장이 된다. 설화는 낡은 이야기가 아니라 지역을 새로 읽게 하는 문화 자원이다.
문화 여행의 깊이는 유적의 규모가 아니라 질문의 크기에서 나온다. 전우치 황금리 설화가 오늘의 독자에게 남기는 질문은 분명하다. 부당하게 쌓인 부는 어디로 흘러야 하는가. 권력의 들보를 백성의 쌀로 바꾸는 상상력은 지금도 가능한가. 담양의 들판은 답을 크게 외치지 않는다. 다만 오래된 이야기 하나를 바람 속에 풀어 놓는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여행자는 황금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정의의 행방을 묻는 사람이 된다.
정원채 기자 hoahn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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