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6조 메가투자, 서남권 산업지도 바꾼다

군공항 이전 논의 새 국면
전력·용수망 확충 큰 과제
통합시 실행력 첫 시험대

성지용 기자 hoahn01@hanmail.net
2026년 07월 03일(금) 10:19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앰코가 서남권에 총 896조 원 규모의 반도체·인공지능(AI) 투자를 내놓으면서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첫 경제 과제가 분명해졌다. 단순한 공장 유치가 아니라 산업단지, 전력, 용수, 교통, 정주 여건을 한꺼번에 다시 짜는 국가 프로젝트다. 지난달 30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 이후 지역의 관심은 “어디에 들어서느냐”에서 “얼마나 빨리 실행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896조 계획, 제2 생산거점 신호탄

이번 보고회는 지난달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의 후속 행사로 마련됐다. 정부는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국가 성장의 세 축으로 제시했고, 그 첫 지역 무대로 서남권을 세웠다. 행사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관계 부처 장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앰코 등 주요 기업 관계자가 참석했다.
기업별 계획도 구체적이다. SK는 약 470조 원을 들여 서남권에 반도체 메모리 메인 팹 2기와 1GW 규모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삼성전자는 425조 원을 호남에 투입해 메모리 팹 2기와 국가 AI 컴퓨팅센터 등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앰코는 광주에 1조 원을 투자해 첨단 패키징 팹 공장을 증설한다. 정부와 기업은 서남권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양해각서도 체결했다.
정부는 이번 계획을 수도권에 이은 제2 반도체 생산거점 구축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생산시설은 단독 공장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협력업체, 연구개발, 물류, 인력 양성, 주거 시설이 함께 붙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투자는 광주와 전남이 오래 요구해 온 균형발전 논의에 실질적 동력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서남권 산업단지 후보지를 항공시찰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헬기 시찰로 확인한 현장 과제

이 대통령은 보고회 전 SK그룹 전시를 둘러보며 서버용 D램, 고대역폭 메모리(HBM), AI 데이터센터용 스토리지 등을 확인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 냉각 방식과 반도체 발열 관리 기술을 물으며 전력과 냉각이 첨단산업의 핵심 조건임을 확인했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헬기로 서남권 산업단지 후보지와 에너지 거점을 살폈다.
시찰 대상은 전남 무안으로 이전이 추진 중인 광주 군공항 부지, 광주 미래차 산업단지 후보지, 해남 솔라시도, 목포 신항만, 신안 안좌쏠라시티, 전남 해상풍력 발전단지, 영광 낙월 해상풍력 발전단지 등이다. 이 동선은 정부가 반도체 생산기지와 재생에너지, 항만 물류, 군공항 이전 현안을 하나의 산업 벨트 안에서 보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광주 군공항 이전은 그동안 지역 갈등과 이전지 문제로 장기간 표류했다. 그러나 반도체 생산기지와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구상이 맞물리면 군공항 이전 부지 활용, 무안국제공항 기능 강화, 광역 교통망 확충이 함께 논의될 수 있다. 군공항 문제가 단순 이전 갈등을 넘어 국가 첨단산업 입지 전략의 일부로 다뤄질 가능성이 더 커진 셈이다.

물과 전기, 속도전의 핵심

반도체 팹은 물과 전기를 대량으로 쓰는 산업이다. 정부는 서남권 신규 반도체 산업단지에 하루 65만 t의 용수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동복댐 30만 t, 주암댐·장흥댐 15만 t, 보성강댐 10만 t, 나주댐 10만 t을 활용하는 공급 방안을 제시했다. 하수재이용수 활용도 검토 대상이다.
전력도 큰 과제다. 정부는 재생에너지와 원전, 송전망을 결합해 안정적 공급 체계를 만들겠다는 방향을 내놨다. 전남은 태양광과 해상풍력 잠재력이 크지만, 반도체 공장은 순간적인 전압 변동도 민감하다. 전기를 많이 생산하는 것과 공장을 안정적으로 돌리는 것은 다른 문제다. 송전망, 변전소, 냉각 설비, 비상 전력까지 촘촘히 맞물려야 한다.
정부는 산업단지 조성 기간을 현재 절반 수준인 5년 이내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필요한 경우 인허가와 보상, 설계를 동시에 추진하고, 부지 조성과 건축 공사를 연계하는 패스트트랙도 적용한다. 메가특구 지정, 기반시설 비용 최대 100% 지원, 지역별 차등세제 도입도 검토된다. 전남대 캠퍼스혁신파크, 광주 도심융합특구, 광주과학기술원 등과 연결한 산학연 혁신허브도 함께 거론된다. 공장만 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연구, 창업, 주거, 교육, 여가가 붙은 기업형 첨단도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계획이 실제 착공으로 이어지려면 중앙정부 지원과 지방정부 집행력이 같은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 시간표가 늦어지면 선점 효과도 약해진다.

첫 과제 된 국비와 행정력

1일 출범한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첫 시험대를 반도체에서 맞게 됐다. 산업부는 기업 투자가 차질 없이 이행되려면 지방정부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통합특별시의 행정역량을 요청했다. 입지 선정, 주민 협의, 도시계획 변경, 인허가, 교통·주거 대책은 현장 행정이 없으면 속도를 내기 어렵다. 지역 대학과 기업을 잇는 인재 양성 체계도 동시에 준비돼야 한다. 청년이 떠나지 않고 머물 수 있는 생활 기반이 뒤따라야 한다.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은 이번 대통령 메시지를 호남 소외와 균형발전 문제를 정면으로 짚은 발언으로 평가했다. 민 시장은 구체적 입지 발표가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가장 빠르게 속도를 낼 수 있는 곳을 찾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며, 취임 후 반도체 사업 추진과 오는 2027년 국비 확보에 행정의 중심을 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2일 충남 아산에서 충청권 보고회를 연 데 이어 3일 경남 진주에서 영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를 이어간다. 전국 권역별 경쟁도 본격화되는 셈이다. 서남권이 896조 원 계획을 실제 성장으로 바꾸려면 발표의 열기보다 실행의 순서가 중요하다. 어느 부지를 먼저 확정하고, 어떤 전력망을 깔며, 물과 교통을 누가 부담할지에 대한 답이 빨라야 한다. 반도체 유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전남광주가 이 기회를 산업 구조와 지역 현안을 함께 바꾸는 전환점으로 만들 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관건이다.
성지용 기자 hoahn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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