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문화재단 출범, 예술행정 새 체계 가동

전담기구 힘찬 첫발 내디뎌
군민향유 넓힐 구심점 마련
우주도시 비전과 자산 접목

서은선 기자 hoahn01@hanmail.net
2026년 07월 03일(금) 14:32
지난 29일 고흥문화재단이 고흥문화회관 김연수실에서 출범식을 열고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고흥군]
재단법인 고흥문화재단이 지난 29일 고흥문화회관 김연수실에서 출범식을 열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공공기관과 문화예술계, 주민 등 5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는 단순한 기관 출범을 넘어 고흥의 문화정책을 한곳에서 기획하고 실행하는 새 체계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였다. 고흥군은 우주발사체 국가산단과 우주항공 중심도시 구상을 키우는 동시에 군민의 일상을 채우는 문화 기반도 함께 넓히겠다는 방침이다.

행사 넘어 정책 전담기구로

출범식은 설립 경과보고와 기념사, 축사, 출범·축하 영상 상영, 비전 발표, 선포 퍼포먼스 순으로 진행됐다. 송재헌 초대 대표이사는 ‘문화예술로 여는 고흥의 미래’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재단이 단순히 공연이나 축제를 돕는 조직에 머물지 않고, 지역 문화행정의 중심축으로 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출범 선포에는 지역 어린이들도 함께했다. “어린 날의 꿈이 동요·그림·시가 돼 오늘의 문화가 되었다”는 메시지는 재단의 방향을 상징했다. 문화가 특정 세대나 일부 예술인의 영역이 아니라 군민 모두의 일상에서 자라야 한다는 의미다.
고흥문화재단은 군과 전남도 출자·출연기관 운영 심의, 설립 허가 등 절차를 거쳐 출범했다. 앞으로 지역 문화예술 정책을 종합적으로 기획하고, 예술인 창작활동을 지원하며, 군민이 가까운 곳에서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사업을 맡는다. 그동안 부서별로 흩어져 있던 공연, 전시, 예술인 지원, 문화복지 사업을 재단 중심으로 묶으면 사업의 지속성과 전문성이 높아질 수 있다.
고흥처럼 읍면이 넓게 퍼진 지역에서는 이 역할이 더 중요하다. 한두 차례 큰 행사보다 주민이 사는 곳 가까이 문화 프로그램을 보내는 일이 체감도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재단이 맡을 일은 새 사업을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기존 행사의 중복을 줄이고, 계절별·권역별 일정을 조정하며, 민간 예술단체가 행정 절차 때문에 활동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창구 역할도 해야 한다.

공영민 고흥군수가 고흥문화재단 출범식에서 재단의 과제를 전하고 있다. [사진=고흥군]

군민 일상으로 넓히는 향유

공영민 군수는 이날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는 것 못지않게 군민의 일상이 풍요로운 ‘문화 강군 고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산업 기반이 일자리와 경제를 움직인다면, 문화는 지역에 머물고 싶은 이유를 만든다는 뜻이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이어지는 농어촌에서 문화정책은 여가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어르신에게는 외로움을 줄이는 생활 복지가 되고, 청소년에게는 지역 안에서 꿈을 키우는 경험이 된다. 귀향·귀촌을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정주 여건을 판단하는 기준도 된다.
재단의 첫 과제는 군민이 체감할 수 있는 맞춤형 문화복지다. 공연장을 찾기 어려운 면 지역 주민을 위한 찾아가는 공연, 지역 동아리와 생활예술 활동 지원,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창작 교육, 어르신 문화교실 등이 가능한 사업으로 꼽힌다. 행정이 예산과 시설을 마련하고 재단이 현장의 수요를 읽어 프로그램을 설계하면, 문화사업은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니라 생활 속 서비스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읍면별 문화 수요를 조사하고, 기존 시설과 단체, 학교, 마을공동체를 연결하는 기초 작업이 필요하다. 예술인에게도 의미가 작지 않다. 지역 작가와 공연단체가 안정적으로 활동할 무대가 늘어나야 창작 생태계가 이어진다.

지역 인물 자산을 콘텐츠로

고흥은 오래된 문화 자산을 가진 지역이다. 천경자 화백, 목일신 선생, 송수권 시인 등 고흥이 배출한 인물은 지역을 대표하는 이름이다. 천경자는 한국 채색화의 독자적 세계를 남긴 화가로 기억되고, 목일신은 ‘자전거’와 ‘누가 누가 잠자나’ 등으로 알려진 아동문학가다. 송수권은 남도 서정의 깊이를 보여준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이들의 이름을 기념행사에만 쓰지 않고 교육, 전시, 문학, 관광 콘텐츠로 연결하는 일이 재단의 핵심 과제가 될 수 있다.
고흥군은 천경자 기념관 조성과 독립운동가 서민호 선양 사업을 위한 고향사랑 지정기부제 홍보도 병행하고 있다. 이는 지역 문화정책이 단순한 소비 사업이 아니라 기억과 계승의 사업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인물의 이름을 나열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 일이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동요·그림 교육, 청소년 문학 캠프, 마을 골목 전시, 지역 작가 협업 상품처럼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콘텐츠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고흥의 문화자산은 과거의 유산을 넘어 현재의 성장 동력이 된다. 재단이 자료 수집과 해설, 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다듬으면 흩어져 있던 자산도 하나의 이야기로 묶일 수 있다.

우주 비전과 결합한 새 브랜드

고흥문화재단 출범은 우주항공 중심도시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고흥에는 나로우주센터가 있고, 우주발사체 국가산업단지 조성도 추진되고 있다. 산업단지가 기업과 연구기관을 끌어들이는 기반이라면, 문화는 도시 이미지를 넓히는 장치다. 우주를 소재로 한 공연, 미디어아트, 어린이 과학문화 프로그램, 야간 관광 콘텐츠가 결합하면 고흥만의 차별화된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관광객에게는 볼거리와 머물 이유를 주고, 주민에게는 내 지역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를 줄 수 있다.
관건은 운영 능력이다. 특히 재단의 사업이 군청 안에서만 정해지지 않고 예술인, 학교, 마을, 상인회와 함께 설계돼야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 군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사업은 오래가기 어렵고, 지역 밖 시선만 의식한 행사는 뿌리내리기 어렵다. 작은 사업도 꾸준히 반복될 때 신뢰가 쌓인다. 꾸준함이 관건이다. 재단은 출범의 상징성에 머물지 말고 군민 참여, 예술인 지원, 관광 연계, 생활권별 프로그램을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성과도 관람객 수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참여한 주민의 만족도, 지역 예술인의 활동 기회, 읍면별 접근성, 관광 소비로 이어지는 효과까지 함께 봐야 한다. 고흥문화재단이 이런 기준을 세우고 꾸준히 실행한다면 고흥은 산업으로 성장하고 문화로 머무는 도시라는 두 축을 함께 갖출 수 있다. 이번 출범식은 그 첫걸음이다.
서은선 기자 hoahn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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