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김진환의 지구별 여행

템즈강변을 따라 걷는 런던 여행

2026년 08월 06일(목) 16:29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 전남광주 지부장 김진환.
아침 7시 30분, 호텔 앞 버스정류장에서 시내버스에 올랐다. 런던의 시내버스는 마치 관광 전용 차량처럼 귀여운 2층 구조가 대부분인데, 붉은색 차체가 이른 아침의 잿빛 풍경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직 도시는 고요했지만, 창밖으로 스치는 사람들 사이에는 하루를 준비하는 분주한 기운이 묻어났다. 흐릿한 하늘과 오래된 벽돌 건물을 바라보며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첫 목적지인 런던 타워에 도착했다.

1000년이 넘는 시간을 견뎌온 성채는 투박한 회색 벽에서 묵직한 역사의 숨결을 내뿜고 있었다. 성 안을 유유히 거니는 까마귀들과 두툼한 성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로마 시대부터 이어진 런던의 시간이 조용히 귓가에 속삭이는 듯했다. 시선을 돌리자 파란 철골과 빅토리아 양식의 탑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타워 브리지가 아침 햇살 아래 장대한 팔을 펼친 듯 서 있었다. 다리 위에서는 버스, 자전거, 출근길 사람들의 흐름이 서로 교차하며 도시의 리듬을 만들어냈다.

강물은 탁하고 유속이 빨랐다. 수영을 시도할 사람이 전혀 없을 듯했다. 문득 우리 한강이 떠올랐다. 템즈강의 폭은 한강보다 훨씬 좁지만, 강을 따라 꽃피운 문화와 예술의 깊이는 결코 비교할 수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다리를 건너 남쪽 강변을 따라 런던 아이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자 곳곳에서 공사 현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자리한 카페와 상점들은 여행자의 지갑을 살짝 열어보라며 유혹하는 듯했다.

강바람을 맞으며 벤치에 잠시 앉아 숨을 고른 뒤 다시 걷다 보니, 갑자기 눈앞에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이 나타났다. 하얀 벽과 검은 목재 골조로 이루어진 원형 건물은 17세기 런던의 열기와 소란을 그대로 불러오는 듯했다. 화재로 사라졌던 옛 극장을 되살리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했고, 당대 방식 그대로 목재 연귀맞춤과 나무못만을 사용해 지었다고 한다. 과거를 존중하는 이 도시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 옆의 테이트 모던은 옛 발전소를 개조한 벽돌 건물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모두에게 무료 개방’이라는 안내문을 따라 들어가자 보안 검색대를 지나 넓은 터빈 홀의 거대한 공간이 시야를 압도했다. 기존 건물을 무조건 허물지 않고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모습에서 영국 특유의 보존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내부에는 카페와 샵, 그리고 어린이를 위한 넓은 창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도시의 다음 세대를 위한 배려도 엿보였다.

10층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내려다본 템즈강은 흐르는 강물 위로 도시의 역사와 현대가 겹겹이 쌓여 있는 풍경을 보여줬다. 강 건너에는 은빛 곡선이 우아한 밀레니엄 브리지가 가느다란 선으로 뻗어 있고, 다리를 건너면 곧 세인트 폴 대성당의 웅장한 돔이 하늘을 가득 채운다.

다시 강을 따라 걷기 시작하자 멀리서 거대한 바람개비처럼 천천히 도는 런던 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오가 지난 시간, 이곳은 사람들로 가득 차 발을 내딛기 어려울 정도였다. 관광객들 사이로 빅벤에서 울려 퍼지는 정오의 종소리가 묻혀버린 것은 조금 아쉽기도 했다.

여행의 마지막은 버킹엄 궁전이었다. 넓은 광장 앞을 가득 메운 사람들 사이로 근위병이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황금빛 장식과 하얀 대리석의 조화는 영국 왕실의 전통을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오고 있었다.

아침 7시 30분에 시작한 강변 산책은 오후 2시 30분에야 끝났다. 짧다면 짧은 반나절이었지만, 템즈강을 따라 이어진 도시의 건축물과 다리, 그리고 그 속에 흐르는 시간의 결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런던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강과 함께 살아온 거대한 역사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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