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에 생각나는 맛, 담양 복달임 한 상

계곡백숙으로 채운 여름날
민물탕 메기찜의 여름나기
복날팥죽에 담긴 옛 지혜

김예영 기자 hoahn01@hanmail.net
2026년 08월 07일(금) 10:58
백숙. [사진=연합뉴스]
한여름 담양의 음식은 산과 물길을 따라 달라진다. 산속 계곡에서는 촌닭백숙이 푹 익고, 담양호와 영산강 상류 주변에서는 민물고기탕과 메기찜이 상에 오른다. 읍내에서는 오래 끓인 팥죽이 더위에 지친 속을 든든하게 채운다. 오는 14일은 삼복의 마지막인 말복이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기를 기다리며 뜨거운 국물과 매콤한 음식으로 기운을 보충하는 날이다. 담양의 복달임 음식에는 산과 물에서 얻은 재료를 푹 끓이고, 한 상에 둘러앉아 나눠 먹어 온 지역의 생활 방식이 담겨 있다.

계곡물 곁에서 먹는 닭백숙

담양읍을 벗어나 월산면과 용면, 대전면의 산길로 접어들면 한여름의 풍경이 달라진다. 햇볕은 여전히 뜨겁지만 나무 그늘 아래로 맑은 물이 흐르고, 바위에 부딪히는 계곡물 소리가 더위를 잠시 잊게 한다. 월산면 용흥사계곡과 용면 가마골, 대전면 한재골은 담양 사람들이 여름이면 즐겨 찾는 피서지다. 계곡으로 향하는 길목의 식당에서는 커다란 냄비에 촌닭백숙이 푹 익어 간다.

단단한 닭고기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푹 끓이고, 마늘과 대추 등을 넣어 국물에 맛을 더한다. 식탁에 냄비가 오르면 뚜껑을 여는 순간 뜨거운 김이 한꺼번에 피어오른다.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근 채 닭고기와 국물을 먹다 보면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맺힌다. 찬물로 몸을 식히고 뜨거운 음식으로 속을 채우는 것이 담양 계곡에서 즐기는 여름 식사의 모습이다.

닭고기를 건져 먹고 나면 남은 육수에 불린 쌀이나 찹쌀을 넣어 죽을 끓인다. 닭고기와 마늘에서 우러난 맛이 쌀알에 스며들면서 구수하고 든든한 한 그릇이 완성된다. 계곡 백숙은 더위에 지친 몸을 채우는 보양식이면서, 가족과 이웃이 한자리에 모여 여름날의 추억을 나누는 음식이다.

옛사람들은 복날이면 산과 계곡을 찾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으로 더위를 식혔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계곡 그늘에 자리를 잡고 물놀이를 즐긴 뒤 뜨거운 백숙을 나눠 먹으며 여름을 난다. 시원한 물가에서 쉬고 든든한 음식으로 기운을 채우는 여름나기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담양의 계곡 백숙은 오래된 피서 풍경과 복달임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여름 음식이다.

여름 입맛 깨우는 민물밥상

담양은 물과 가까운 고장이다. 용면 가마골의 용소는 영산강 물줄기가 시작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고, 담양호와 광주호 주변에는 물을 끼고 형성된 마을이 이어진다. 메기를 비롯한 민물고기를 탕과 찜으로 끓여 먹는 음식도 이런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지금도 민물고기 음식은 무더운 여름이면 담양 사람들이 즐겨 찾는 별미다.

민물고기탕은 손질한 생선에 고추장이나 고춧가루, 마늘을 풀고 무와 대파, 미나리나 깻잎 등을 더해 푹 끓이는 음식이다. 생선에서 우러난 담백한 맛과 채소의 향이 어우러지면서 국물은 점차 깊어진다. 한 숟가락 떠먹으면 얼큰한 맛이 먼저 입맛을 돋우고, 뒤이어 구수하고 진한 맛이 입안에 남는다.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느라 허기진 날, 생선살을 발라 먹고 뜨거운 국물에 밥까지 말아 먹으면 든든하게 한 끼를 채울 수 있다.

메기찜은 매콤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돋보이는 음식이다. 손질한 메기에 무와 시래기를 넉넉히 넣고 고춧가루와 마늘로 만든 양념을 풀어 자박하게 익힌다. 끓이는 동안 메기살에는 양념이 배고, 시래기는 생선에서 우러난 맛을 머금는다. 부드러운 메기살과 푹 익은 시래기를 밥 위에 함께 올려 먹으면 매콤한 맛이 더위에 지친 입맛을 깨운다.

메기는 단백질과 비타민, 무기질을 고루 함유한 민물고기다. 단백질은 근육과 몸의 조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영양소로, 무더위로 체력 소모가 큰 여름철 영양을 보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살이 부드러워 먹기 편하고, 시래기를 함께 넣어 조리하면 식이섬유와 무기질도 더할 수 있다. 담백한 메기살과 구수한 시래기, 매콤한 양념이 어우러진 메기찜은 더위에 지친 입맛을 돋우는 담양의 여름 별미다.

붉은 팥죽에 담긴 여름나기

팥죽은 동짓날에만 먹던 음식이 아니다. 옛사람들은 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복날에도 팥죽을 쑤어 먹었다. 조선 후기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는 삼복에 팥죽을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고 질병을 피할 수 있다고 여겼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팥의 붉은색이 밝고 강한 기운을 상징해 더위와 나쁜 기운을 물리쳐 준다고 믿었던 것이다.

복날 팥죽은 집안 어른들에게 먼저 대접하기도 했다. 무더위에 체력이 떨어지기 쉬운 노인들이 남은 여름을 건강하게 보내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팥을 푹 삶아 곱게 거른 뒤 쌀이나 새알심을 넣고 천천히 끓이는 동안, 한 솥의 팥죽에는 가족의 안부를 살피고 서로의 기운을 북돋우려는 마음도 함께 담겼다.

오래 끓인 팥죽은 부드럽고 걸쭉하다. 고소한 팥 맛에 은은한 단맛이 어우러지고, 소금이나 설탕을 곁들이면 입맛에 따라 맛을 달리할 수 있다. 뜨거운 팥죽을 천천히 떠먹다 보면 이마에는 땀이 맺히지만 속은 한결 든든해진다. 복날 팥죽 한 그릇은 특별한 약재보다 제철 곡식을 정성껏 끓여 더위를 견뎌 온 옛사람들의 여름나기를 보여준다.

오는 14일 말복을 앞두고 담양의 더위는 여전히 한창이다. 계곡에서 푹 끓인 촌닭백숙과 얼큰한 민물고기탕, 붉은 팥죽, 시래기를 넉넉히 넣은 메기찜은 이 무렵 더욱 생각나는 음식이다. 담양 사람들은 차가운 물가와 짙은 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식힌 뒤 뜨겁게 끓인 음식을 나누며 지친 몸에 기운을 보태 왔다. 산과 물에서 얻은 재료를 정성껏 익혀 차린 담양의 여름 밥상은 복날 하루를 넘어 긴 무더위를 든든하게 견디게 해 주는 한 끼다.
김예영 기자 hoahn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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