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년 전 장흥은 왜 안중근을 모셨나··· 해동사의 긴 추모 한 칸 사당서 시작된 추모 박태영기자 hoahn01@hanmail.net |
| 2026년 08월 18일(화) 1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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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보다 먼저 움직인 마음
장흥 사람들이 안중근 의사를 모신 것은 1955년이었다. 6·25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던 시절, 장동면 만년리의 유림과 죽산 안씨 문중은 안 의사의 제향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겼다. 이들은 문중 사당인 만수사 곁에 한 칸짜리 사당을 따로 짓고 안 의사의 영정과 위패를 모셨다. 오늘날 해동사의 시작이다.
안중근 의사와 장흥 사이에는 특별한 지역적 인연이 없었다. 안 의사가 장흥에서 활동했거나 이곳을 찾았다는 기록도 없다. 사당 건립을 이끈 안홍천 등 장흥의 문중은 죽산 안씨였고, 순흥 안씨인 안 의사와는 본관도 달랐다. 같은 안씨라는 인연은 있었지만, 장흥 사람들이 그를 모신 더 큰 이유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뜻을 기리고 제향을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직접적인 연고가 없던 장흥에 안중근 의사를 위한 사당이 세워졌고, 그 선택은 70여 년의 추모로 이어졌다.
해동사는 이후 제향을 올리는 곳을 넘어 마을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주민들에게는 가까이에서 안중근 의사의 삶과 정신을 접하는 역사 공간이었고, 어린 세대에게도 그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알리는 장소가 됐다. 어른들이 제향으로 이어온 기억은 다음 세대로 전해졌다. 한 칸짜리 작은 사당에서 시작한 해동사는 그렇게 세대를 거치며 안중근을 기억하는 장흥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해마다 제향이 이어지고 마을 사람들이 사당을 지켜온 시간은 해동사가 단순한 문화유산을 넘어 지역 공동체의 기억이 쌓인 장소임을 보여준다.
해동명월 품고 이어온 사당
사당이 세워진 뒤에는 ‘해동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건립을 주도한 안홍천이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서 ‘해동명월(海東明月)’이라는 친필 휘호를 받았고, 이 가운데 ‘해동’ 두 글자를 따 사당 이름으로 삼았다. 해동은 예부터 우리나라를 이르는 말이다. 장흥의 작은 마을에 세워진 안중근 사당이 ‘해동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배경이다.
한 칸 규모로 시작한 사당은 안 의사의 공적을 기리기에는 공간이 협소하다는 의견이 이어지면서 지난 2000년 세 칸 규모로 다시 지어졌다. 지난 2019년에는 전남 문화유산자료 제291호로 지정됐고, 국가보훈부 현충시설에도 등록돼 있다. 지역 유림과 문중의 뜻으로 세워진 작은 사당은 이제 장흥을 대표하는 독립운동 역사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두 시각에 담긴 의거와 순국
사당 안에는 지금도 안 의사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이 한쪽에 놓인 괘종시계다. 시계의 바늘은 오전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바로 그 시각을 기억하기 위해 멈춰 놓은 것이다.
오전 9시 30분은 안중근이라는 이름을 한국 근현대사의 한복판에 새긴 시간이다. 당시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안 의사가 총탄을 쏜 뒤 현장에서 체포됐고, 이후 뤼순감옥으로 옮겨져 재판을 받았다. 해동사의 괘종시계는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날의 한순간을 가리킨다. 방문객에게는 단순한 옛 시계가 아니라 하얼빈 의거의 시간을 눈앞에서 확인하게 하는 상징물인 셈이다.
해동사가 기억하는 또 하나의 시간은 오전 10시 15분이다. 안 의사가 1910년 3월 26일 중국 뤼순감옥에서 순국한 시각이다. 해동사에서는 매년 이날 추모제를 열어 안 의사의 넋을 기리고 있다. 올해도 순국 116주기를 맞아 지역 주민과 학생, 문중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향이 봉행됐고, 추모행사는 순국 시각인 오전 10시 15분에 맞춰 진행됐다.
하얼빈의 오전 9시 30분과 뤼순의 오전 10시 15분. 하나는 나라를 빼앗은 침략의 책임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그 선택 끝에 서른한 살의 생을 마친 시간이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기록된 두 순간은 장흥의 해동사에서 다시 만난다. 사당 안의 괘종시계와 해마다 이어지는 순국일 제향이 해동사를 단순히 영정과 위패를 모셔 놓은 공간에 그치지 않게 하는 이유다. 지난 1955년 장흥 사람들이 시작한 추모는 이렇게 의거와 순국의 시간을 기억하며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추모에서 역사교육 현장으로
해동사 일대는 지난 2024년 안중근 의사 순국 114주기에 맞춰 추모역사관이 문을 열면서 새로운 역사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역사관에는 안 의사의 의병활동과 하얼빈 의거, 옥중생활과 평화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체험 콘텐츠가 마련돼 있다. 주변에는 메모리얼파크도 조성돼 해동사와 함께 둘러볼 수 있다.
해동사가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이어온 추모의 공간이라면, 추모역사관은 안 의사의 생애와 독립운동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교육의 공간이다. 한 칸짜리 사당에서 시작된 추모는 역사관과 공원으로 확장됐고, 이 일대는 안 의사의 삶과 정신을 배우고 되새기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자리 잡았다.
광복절을 앞두고 해동사를 찾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안중근 의사와 직접적인 지역 연고가 없었던 장흥 사람들이 지난 1955년 사당을 세운 뒤 세대를 이어 제향을 올리고 그의 뜻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70여 년 전 장흥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기억은 이제 다음 세대가 안중근을 만나고 배우는 공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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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영기자 hoahn0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