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엔날레, 43인·팀이 묻는 ‘삶의 변화’

오는 9월 5일 72일간 여정
300여 점 한자리에서 선보여
오월정신·시민 참여 한데 묶어

박태영 기자 hoahn01@hanmail.net
2026년 08월 21일(금) 10:06
광주비엔날레 전시 작품 '제주 화산암'(제주돌문화공원). [사진=광주비엔날레]
수천 년의 시간을 품은 제주 화산암과 한국인에게 익숙한 초코파이가 한 전시장에서 만난다. 하나는 불과 압력, 냉각과 풍화를 거쳐 자연이 빚은 돌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 작가 사사키 켄이 둥근 과자를 검은 우주의 입구처럼 그린 유화다. 출발점이 전혀 다른 두 작품은 익숙한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오는 9월 5일 개막하는 제16회 광주비엔날레는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를 주제로 오는 11월 15일까지 72일간 이어진다. 22개국 43인·팀이 300여 점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를 바꾸는 예술의 힘을 탐색한다.

명령문에 담긴 열린 질문

전시 제목은 독일어권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지난 1908년 발표한 시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 마지막 구절에서 가져왔다. 시 속 화자는 머리와 팔다리가 사라진 고대 조각의 몸통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낀 뒤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바꿀지는 정해주지 않는다. 단호한 명령이면서도 각자가 답을 찾도록 가능성을 열어둔 문장이다.

이번 전시도 변화를 한순간의 거대한 사건으로만 보지 않는다. 몸을 움직이는 습관과 타인을 대하는 태도,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훈련처럼 조용히 쌓이는 일상도 삶을 바꾸는 힘이 된다고 본다. 여러 위기 속에서 예술이 새로운 관계와 생활방식을 시험하는 방법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싱가포르 출신 시각예술가이자 영화감독인 호추니엔이 예술감독을 맡고 박가희, 브라이언 쿠안 우드, 최경화 큐레이터가 공동 기획했다. 호 감독은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의 역사를 지닌 광주에서 변화는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역대 가장 적은 작가가 참여하는 집중형 방식을 택했다. 이름을 많이 나열하는 대신 43인·팀의 여러 시기 작품을 함께 보여주며 한 작가가 오랫동안 이어온 생각과 실천을 깊게 들여다본다.

돌과 몸, 일상에서 찾은 변화

개막을 앞둔 전시장에서는 설치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재단은 지난 18일 제4전시실에서 사전 공개 행사 ‘뽀짝바짝’을 열었다. 작품의 포장을 풀어 상태를 살피는 기존 해포식에서 나아가, 작품이 공간과 관계를 맺고 전시가 완성돼 가는 과정까지 공개했다. ‘가까이’ 또는 ‘바짝 붙어서’라는 뜻의 지역말 ‘뽀짝’에는 현대미술을 시민 곁으로 끌어오겠다는 뜻이 담겼다.

이날 공개된 제주 화산암은 인간만이 창작자가 아니라는 시선을 보여준다. 화산 분출과 냉각, 수천 년의 풍화가 만든 돌을 자연의 작품으로 바라본다. 사사키 켄의 ‘초코파이’는 반대로 평범한 소비재에서 출발한다. 검고 둥근 과자를 블랙홀과 연결해 일상적 사물 안에서 우주의 시간과 공간을 불러낸다. 거대한 변화와 사소한 생활 사이에 뚜렷한 경계가 없다는 전시의 생각이 두 작품에 압축됐다.

대만계 미국 작가 시에테칭과 싱가포르의 아만다 헹은 삶 자체를 작품의 재료로 삼아 반복과 규율, 시간의 의미를 파고든다. 매튜 바니와 정금형, 안젤라 고, A K 돌벤은 몸을 낯설게 움직이거나 다시 구성하며 고정된 인간의 모습을 흔든다. 니나 카넬은 물질의 작은 변화에 주목하고, 키리 달레나는 한 사람의 몸이 가족을 거쳐 거리에서 목소리를 내는 공동의 몸으로 넓어지는 과정을 다룬다.

오월의 기억과 남도의 시간

광주와 전남의 역사도 전시의 중심에 놓인다. 오월어머니집 어머니들이 직접 그린 그림이 본전시에 나온다. 국가폭력의 상처를 견디며 진실과 민주주의를 요구해 온 삶 자체를 끈기와 창의성의 실천으로 본 것이다. 광주는 작품을 가져다 놓는 장소가 아니라 억압을 연대와 변화의 힘으로 바꿔온 살아 있는 현장으로 전시 안에 들어온다.

자연과 함께 작업해 온 임동식과 자연미술가 우평남의 활동도 소개된다. 의재 허백련이 지난 1947년 세운 광주농업고등기술학교와 그가 일군 춘설차를 통해 그림과 농업, 자연과 배움을 하나로 묶었던 실천을 되짚는다. 진도 운림산방을 이어온 허련·허형·허건·허림·허문·허진의 작업도 참여 목록에 올랐다. 한 명의 이름보다 여러 세대가 쌓은 남도 미술의 시간을 비춘다.

시민은 관람객에 머물지 않고 제작에도 참여했다. 권병준과 박찬경의 신작 ‘불림’은 마을을 돌며 쇠붙이를 모아 무구를 만들었던 전통 의례 ‘쇠걸립’에서 출발한다. 광주와 전남 주민들이 기부한 그릇과 장신구 등 금속 물건은 소리를 내는 설치 작품으로 되돌아온다. 개인의 기억이 담긴 물건을 공동체의 리듬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재클린 키요미 고크는 공기압과 기계장치, 다채널 음향으로 관람객의 몸과 감정을 흔드는 공간을 만든다. 남화연은 조선 후기 서학을 받아들인 여성들이 남성 중심 질서를 넘어 삶을 스스로 선택해 간 과정을 살핀다.

전시관 넘어 도시 전체로

본전시 밖에서는 27개 파빌리온이 광주를 하나의 거대한 전시장으로 넓힌다. 국내외 국가와 문화기관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전일빌딩245, 광주미술관 등 도심 곳곳에서 서로 다른 동시대 미술을 선보인다. 광주·전남 작가 7명과 지역 창작공간 7곳을 잇는 ‘GB 작가탐방 2026’도 오는 11월까지 이어져 지역 미술계와의 연결을 넓힌다.

사전예매는 오는 9월 4일까지며, 프리뷰도 이날 열린다. 입장료는 성인 1만7000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5000원이며 개막 뒤 정상가는 각각 2만 원, 1만 원, 7000원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민은 증빙자료를 제시하면 별도 할인요금을 적용받는다. 관람시간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다. 입장 마감은 오후 5시 30분이다.

남은 과제는 어렵게 느껴지는 현대미술을 시민의 언어로 풀어내는 일이다. 작품 해설과 동선 안내, 본전시와 도심 파빌리온을 잇는 교통·관광 정보가 촘촘해야 도시 전체의 축제라는 구상이 완성된다. 이번 행사의 성패는 ‘삶을 바꾸라’는 문장을 크게 외치는 데 있지 않다. 관람객이 전시장을 나선 뒤 익숙한 일상을 다르게 보고 작은 실천을 시작하게 하는 데 달려 있다.
박태영 기자 hoahn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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