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선 한 척이 맺은 인연, 175년 뒤 나주서 다시 만나다

비금도 난파서 시작된 인연
옹기 술병에 남은 긴 세월
한불 인연 춤으로 이어지다

김예영 기자 hoahn01@hanmail.net
2026년 08월 24일(월) 09:23
윤병태 나주시장(오른쪽)과 엠마뉴엘 르블랑 체슬러 주한 프랑스대사관 영사(왼쪽)가 1851년 한국과 프랑스의 역사적 첫 만남의 상징인 옹기 술병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나주읍성 골목을 걷다 보면 오래된 도시의 시간 한가운데 뜻밖의 프랑스를 만난다. 옛 금남금융조합 건물을 고쳐 문을 연 ‘나주 첫만남센터’다. 이곳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175년 전 서남해의 거친 바다로 향한다. 지난 1851년 프랑스 포경선 나르발호가 지금의 신안 비금도 인근에서 좌초했고, 조선 관리들과 프랑스인들은 말 대신 손짓과 그림으로 서로를 이해했다. 우연한 난파에서 시작된 만남은 술과 음식을 나누는 자리로 이어졌고, 그날 건넨 옹기 술병은 바다를 건너 프랑스에 남았다. 한때 기록 속에 묻혀 있던 이야기는 이제 나주읍성의 전시와 음식, 미디어아트, 춤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윤병태 시장(가운데)은 지난해 6월 프랑스 국제교류 방문 당시 1851년 한불 첫 만남의 상징인 ‘옹기주병’이 보관된 프랑스 파리의 세브르 국립도자기박물관을 방문했다

비금도에 닿은 낯선 배 한 척

지난 1851년 4월 2일, 프랑스 포경선 나르발호가 전라도 나주목 관할이던 비금도 인근 해역에서 좌초했다. 오늘날 ‘나주와 프랑스의 첫 만남’으로 불리는 인연은 바로 이 바다에서 시작됐다.

난파를 피한 선원들은 비금도에 머물며 구조를 기다렸다. 말도 문화도 달랐지만 조선 관리들은 낯선 이들을 내치지 않았다.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해 손짓과 그림으로 뜻을 주고받았고, 선원 일부는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작은 배를 타고 상하이로 향했다. 이들은 현지 프랑스 영사 샤를 드 몽티니에게 구조를 요청했고, 소식을 들은 몽티니는 그해 5월 초 조선 해역으로 들어왔다.

프랑스 사절단을 맞은 이는 당시 나주목사 직을 겸임하던 남평현감 이정현이었다. 조선 측은 먼 바다를 건너온 일행을 예우했고, 양측은 한자리에 앉아 음식과 술을 나눴다. 정식 외교관계조차 없던 시절, 난파선 한 척에서 시작된 우연은 표류민 보호와 구조, 접대와 답례로 이어졌다.

이 만남의 의미는 이후 한불 관계와 나란히 놓고 볼 때 더욱 선명해진다. 조선과 프랑스가 조불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고 공식 외교관계를 맺은 것은 지난 1886년이었다. 그보다 20년 앞선 지난 1866년에는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한 병인양요가 벌어졌다. 무력 충돌의 기억이 남기 전, 지난 1851년 비금도에서는 전혀 다른 만남이 먼저 이뤄졌다.

총과 대포가 아니라 조난자를 보호하고 음식을 나누며 서로를 마주했던 만남이었다. 공식 외교관계가 시작되기 35년 전, 조선과 프랑스 사람들이 서남해 작은 섬에서 먼저 인연을 맺었다. 175년 전 비금도 앞바다의 우연한 사고는 오늘날 나주가 프랑스와의 인연을 되살리는 역사적 출발점이 됐다.
옹기주병. [사진=연합뉴스]

술병 하나가 되살린 잊힌 만남

175년 전 만남을 오늘까지 이어준 것은 거창한 외교문서만이 아니었다. 당시 술을 담아 건넨 평범한 옹기 주병이 그날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지난 1851년 비금도를 찾은 몽티니는 조선 측과 음식을 나누고 술잔을 주고받았다. 이때 받은 옹기 주병은 그와 함께 프랑스로 건너가 지난 1856년 세브르도자박물관에 기증됐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지난 2015년 한국 관련 특별전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바닥에는 몽티니가 나르발호 선원들을 구조하기 위해 비금도를 찾았다가 주민들에게 다과와 함께 받았다는 소장 이력이 남아 있었다.

화려한 왕실 공예품도, 국가 간 조약문서도 아닌 생활용 술병 한 점이 조선과 프랑스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고 마음을 주고받았던 순간을 증언하는 셈이다. 올해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아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에 소개되면서 그 의미도 다시 주목받았다.

비금도 바다에서 시작된 인연은 옹기와 함께 프랑스로 건너가 175년의 시간을 지나 다시 나주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한 점의 옹기에 담긴 기억이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다는 점에서 나주의 한불 인연은 더욱 특별하다.

읍성에 문 연 ‘첫 만남’의 공간

그 이야기는 지난 6월 20일 문을 연 나주 첫만남센터에서 다시 이어지고 있다. 금성관길의 옛 금남금융조합 건물을 새롭게 꾸민 공간에는 ‘1851한불첫만남기념관’과 방문자센터가 들어섰다. 기념관에서는 나르발호 사건과 당시 나주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고, 디지털 방명록과 포토존, 느린우체통 등 다양한 체험도 마련됐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곳이 과거의 역사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센터는 프랑스 살롱 문화에서 착안한 ‘벨에포크’ 프로그램을 통해 175년 전 한불 교류의 기억을 오늘의 문화로 이어가고 있다. 음식과 미술, 공연을 매개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교류하면서 오래된 역사가 현재의 문화로 다시 살아나는 공간이다.

지난 6월 열린 ‘살롱 드 퀴진’에서는 프랑스 식문화와 나주배를 활용한 음식과 음료를 함께 즐겼고, 지난달 25일 ‘살롱 드 아트’에서는 프랑스와 전남·광주 예술가들이 만나 창작 경험을 나눴다. 프랑스 디지털 예술기관 비디오폼도 지난달 나주에 머물며 지역의 역사와 사람을 기록했다. 나주문화재단은 이달 비디오폼과 업무협약을 맺어 공동 전시와 창작 교류, 레지던시 협력으로 한불 문화교류의 폭을 넓히고 있다.
취타대 행렬과 수문장 교대의식으로 ‘나주 첫만남센터’ 개관식이 화려한 막을 올렸다

춤으로 이어가는 175년 인연

다음 만남은 다음달 19일 펼쳐진다. ‘첫만남 춤결-살롱 드 댄스’는 프랑스 스트리트 댄스 문화를 함께 배우고 전남·광주 댄서들의 공연을 만나는 자리다. 지난 1851년 서로의 말을 몰라 손짓과 그림으로 뜻을 전했다면, 175년이 흐른 지금은 춤과 몸짓이 서로를 잇는 새로운 언어가 된다.

난파선 한 척에서 시작된 우연은 구조와 환대로 이어졌고, 당시 건네진 옹기 주병은 그 기억을 175년 동안 간직했다. 이제 프랑스 예술가와 지역 청년, 나주 시민과 여행객이 한 공간에 모여 음식을 나누고 작품을 감상하며 춤을 춘다. 지난 1851년의 만남이 전시관 속 역사에 머물지 않고 오늘의 사람들을 다시 잇는 문화로 살아나고 있다.

나주읍성에서 만나는 프랑스는 단순한 이국적 풍경이 아니다. 바다에서 조난당한 낯선 사람을 받아들였던 환대와 함께 음식을 나누고 술잔을 주고받았던 기억, 그 인연을 오늘의 예술로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175년 전 비금도 앞바다에서 시작된 한불의 인연은 시간을 건너 나주읍성 골목에서 새로운 만남을 만들어가고 있다.
김예영 기자 hoahn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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