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향교와 숲, 함평 선비의 길을 걷다

사백년 향교 배움터의 역사
수백년 숲길에 깃든 이야기
선비문화 체험이 여는 새길

서은선 기자 hoahn01@hanmail.net
2026년 08월 25일(화) 10:02
(사진자료)함평군 ‘2026 우리고장 국가유산 활용사업’ 신규 선정 1_함평향교(명륜당)
늦여름의 열기가 한풀 꺾이는 함평 대동면 향교리. 마을로 들어서면 오래된 나무들이 먼저 길을 연다. 느티나무와 팽나무, 개서어나무가 옛길을 따라 줄지어 서고, 그 곁으로 400년 가까운 시간을 품은 함평향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선비들이 글을 읽고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던 향교와 마을 사람들의 삶을 지켜온 숲이 한 풍경 안에서 이어진다. 향교 담장 안에는 조선시대 교육의 시간이, 담장 밖 천연기념물 숲에는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이 오간 흔적이 배어 있다. 향교와 숲이 함께 쌓아온 시간은 향교리만의 깊은 풍경이 됐다. 올해 처음 시작된 국가유산 활용사업은 이 오래된 길에 다시 사람을 불러들이며 ‘선비의 길’을 오늘의 문화여행으로 되살리고 있다.

전란 견딘 400년 배움의 터

함평향교의 창건 시기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지만, 조선시대부터 지역 유생들이 학문을 익히고 성현의 뜻을 기리던 배움터로 오랜 시간을 이어왔다. 여러 차례 소실과 중건을 거쳐 오늘의 모습을 갖췄다. 지난 1597년 정유재란 때 불에 탄 뒤 지난 1599년 초가로 다시 세워졌고, 지난 1631년 함평 유림이 뜻을 모아 대성전과 명륜당을 갖췄다. 이후 지금의 대동면 향교리로 자리를 옮겨 지역의 교육과 제향을 맡는 중심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향교가 이곳에서 이어온 시간은 어느덧 400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향교 안으로 들어서면 조선시대 배움터의 흔적이 건물 곳곳에 남아 있다. 대성전은 공자와 유학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공간이며, 명륜당은 유생들이 글을 읽고 학문을 익히던 곳이다. 동재와 서재, 내삼문과 외삼문 등도 함께 자리해 당시 향교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함평향교는 제향 공간인 대성전이 앞에 놓이고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뒤를 잇는 ‘전묘후학’ 배치를 갖춘 점이 특징이다. 지난 1985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뒤에도 봄과 가을이면 석전이 이어지며, 오랜 향교의 전통은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천연기념물 숲에 깃든 전설

향교를 나서 숲으로 발길을 옮기면 풍경의 중심은 기와지붕에서 오래된 나무로 바뀐다. ‘함평 향교리 느티나무·팽나무·개서어나무 숲’은 지난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1만4917㎡ 규모의 숲이다. 느티나무와 팽나무, 개서어나무가 옛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줄나무’ 형태가 가장 큰 특징이다. 한곳에 모여 자란 숲이 아니라 길을 따라 나무들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숲길을 이룬다. 오래전 이 길을 오가던 사람들에게는 그늘을 내주고 바람을 막아주는 생활 속 공간이기도 했다.

줄나무 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사례는 국내에서도 드물다. 함평 향교리 숲과 무안 청천리 팽나무·개서어나무 숲이 대표적이다. 이곳의 가치는 오래된 나무 몇 그루에만 있지 않다. 나무가 길을 따라 줄지어 서고, 그 길이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삶과 함께 이어져 왔다는 데 의미가 있다. 사람이 오가던 길과 그 곁을 지킨 나무가 긴 세월을 지나 하나의 자연유산이 된 것이다.

숲에는 향교를 지키기 위해 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향교 남쪽 수산봉이 불의 기운을 품은 형국이라 여긴 유림들이 화재를 막고자 내교리에서 큰 나무를 옮겨 심었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숲을 단순한 경관이 아니라 향교와 마을을 지켜주는 존재로 여겼던 옛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느티나무와 팽나무, 개서어나무는 오랜 세월 향교와 마을 곁을 지키며 그늘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쉼터를 내줬다. 향교가 학문을 익히고 성현을 기리는 공간이었다면, 그 곁의 숲은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해 온 생활의 공간이었다.

400년 풍경을 지키는 손길

오래된 향교와 숲이 지금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던 데에는 꾸준한 관리도 한몫했다.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는 세월이 흐를수록 병충해와 가지 손상 등에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함평군은 올해 향교리 느티나무·팽나무·개서어나무 숲을 대상으로 병충해 방제와 수관 솎기, 상처 치료 등 생육환경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오래된 나무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숲의 상태를 계속 살피는 것이다.

함평향교도 올해 내삼문과 담장을 보수한다.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건물을 살피고, 향교리 숲과 어우러진 풍경을 이어가기 위한 작업이다. 여기에 올해부터는 교육과 체험, 공연을 더한 국가유산 활용사업도 시작됐다. 오래된 향교를 보존하는 데 머물지 않고, 사람들이 직접 찾아와 보고 듣고 경험하는 공간으로 활용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선비의 길, 오늘 문화로 잇다

올해 함평향교와 향교리 숲에는 사람의 발길을 다시 잇는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함평군은 국가유산청의 ‘2026 우리고장 국가유산 활용사업’에 신규 선정돼 지난 3월부터 오는 12월까지 ‘고즈넉한 숲길 따라 함평향교 로(路)’를 운영하고 있다. 향교와 천연기념물 숲을 하나의 공간으로 묶어 선비문화와 지역의 역사, 숲의 생태를 다양한 체험으로 풀어내는 사업이다.

대표 프로그램인 ‘함평 선비 지혜길’은 향교와 숲길을 걸으며 선비문화와 지역 이야기를 만나는 탐방 프로그램이다. 지난 5월과 6월에 이어 오는 10월 14일에도 운영될 예정이다. ‘함평이야기 콘서트’는 오는 28일과 다음달 11일, 10월 2일과 16일 열리며 음악과 이야기를 통해 향교의 역사와 문화를 전한다. 숲 체험과 치유 체조, 차담, 대성전 창호 바르기 등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오랫동안 제향과 교육의 터전이었던 함평향교는 올해 숲길과 체험을 더하며 사람들과 만나는 방식을 넓히고 있다. 대성전과 명륜당에 남은 선비문화를 살펴보고, 담장 밖 천연기념물 숲을 걸으며 마을의 오래된 이야기도 함께 만날 수 있다. 400년 가까운 향교와 수백 년 된 나무가 나란히 지켜온 향교리는 그 자체로 함평의 역사와 자연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향교 담장 안에 쌓인 배움의 시간과 담장 밖 숲에 남은 마을의 시간이 지금도 한 길 위에서 이어지고 있다.
(사진자료)함평군 ‘2026 우리고장 국가유산 활용사업’ 신규 선정 3_향교리 느티나무·팽나무·개서어나무 숲

사진자료(함평향교 항공사진)
서은선 기자 hoahn01@hanmail.net
이 기사는 이슈전남광주 홈페이지(issuegj.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issuegj.co.kr/article.php?aid=3849678892
프린트 시간 : 2026년 10월 19일 17: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