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흥 원도심에 되살아나는 585년 역사…‘흥양현읍성 1441’ 흥양현 옛길 따라 걷는 밤길 김예영 기자 hoahn01@hanmail.net |
| 2026년 08월 28일(금) 10: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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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1년 흥양현, 고흥의 시작
축제 이름에 붙은 ‘1441’은 흥양현’이라는 이름이 역사에 등장한 해다. 조선 세종 23년인 지난 1441년, 고흥현은 두원현 일대로 치소를 옮기고 남양현 등 주변 지역을 합쳐 ‘흥양현’으로 이름을 바꿨다. 앞서 지난 1395년 왜구의 침입을 피해 보성 조양현 쪽으로 행정 중심을 옮긴 지 46년 만이었다. 이때 행정구역과 중심지가 새롭게 정비되면서 이후 오늘날 고흥으로 이어지는 지역의 틀이 마련됐다.
새로 자리 잡은 흥양현의 중심에는 읍성이 있었다. 흥양현읍성은 관아와 마을을 둘러싸 외부의 침입에 대비하고 지역 행정을 뒷받침하던 공간이었다. 성 안에는 관아와 우물 등이 자리했고 성문을 통해 주민과 물자가 오갔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성벽 대부분은 사라졌지만 고흥읍 옥하리 일대에는 옛 읍성의 자취가 남아 당시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그 흔적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유산이 존심당과 아문이다. 지난 1739년 세워진 존심당은 흥양현의 행정 업무가 이뤄지던 동헌이었고, 아문은 지난 1765년 무렵 세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이 일대는 오랫동안 고흥 행정의 중심 역할을 이어갔다. 군청이 이전한 뒤에는 역사문화 공간으로 정비됐고, 지난 2023년 존심당 역사문화공원이 조성되면서 옛 관아와 읍성의 흔적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자리 잡았다.
흥양수군, 고흥 바다를 지키다
고흥의 바다는 오래전부터 삶의 터전이자 나라를 지키는 방어선이었다. 조선시대 흥양현과 사도·여도·녹도·발포 등 이른바 ‘1관4포’가 지금의 고흥에 자리했고, 임진왜란 때는 이곳 수군이 이순신 함대와 함께 남해의 전선으로 나아갔다. 이순신도 지난 1580년 발포만호로 부임해 수군을 지휘했고, 전라좌수사가 된 뒤에는 사도와 여도, 녹도, 발포 등을 돌며 군사와 방어 태세를 살폈다. 이처럼 흥양은 임진왜란을 전후해 남해안을 지키는 조선 수군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했다.
오는 28일에는 그 호국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행렬이 고흥읍 원도심을 지난다. 해군 제3함대와 7391-3대대가 합동으로 펼치는 ‘흥양수군 입현 퍼레이드’가 오후 5시부터 고흥읍 파리바게뜨 인근 로터리에서 존심당 역사문화공원까지 이어진다. 흥양현의 시작과 호국의 기상을 담은 행렬이 옛 관아를 향해 나아가며 축제의 문을 열고, 남해 바다를 지켰던 흥양수군의 역사도 오늘의 거리 위에 다시 살아난다.
밤길 따라 만나는 옛 흥양현
해가 지면 흥양현읍성과 옛 관아는 낮과 다른 표정을 드러낸다. 존심당 일대에 불이 들어오고 1441년 흥양현의 역사를 소재로 한 창작 음악극과 공연이 이어지면서 조용했던 원도심 곳곳이 무대로 바뀐다. 국가무형유산 줄타기 보유자 김대균 명인은 아슬아슬한 묘기와 재담으로 관객을 만나고, 최태성 강사는 ‘조선을 지킨 흥양 이야기’를 통해 흥양의 역사와 수군의 역할을 풀어낸다. 오래된 유산을 배경으로 공연과 해설이 더해지며 흥양현의 옛 시간이 밤의 공간 위에 펼쳐진다.
관람객들은 불빛을 따라 읍성과 골목을 걸으며 곳곳에 남은 흥양현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다. 해설사와 함께 성곽의 흔적을 짚고 옛 관아의 역할을 체험한 뒤 존심당과 홍교 등 원도심의 유산을 차례로 둘러보는 방식이다. 존심당에서 읍성, 홍교와 오래된 골목으로 발길을 옮기는 동안 평소 따로 보이던 유산들의 위치와 쓰임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공연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걷고 체험하며 옛 흥양현의 공간을 따라가도록 꾸민 것이 이번 야행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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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서 만나는 고흥의 예술
천경자 화백의 생가터가 있는 골목에서는 고흥의 근현대 문화도 만날 수 있다. ‘천경자 화백 그림전’과 제12회 목일신 전국동시대회 수상작을 선보이는 ‘골목에 머문 흥양의 시간’이 천경자 생가터 일대에서 마련된다. 읍성과 관아에서 조선시대 흥양현의 역사를 살펴봤다면 이곳에서는 고흥이 낳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또 다른 시대의 고흥과 마주하게 된다. 수백 년 전 흥양현의 흔적에서 출발해 관아와 성곽, 수군의 역사를 지나 미술과 문학에 이르기까지, 고흥이라는 지역에 켜켜이 쌓여온 여러 시대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이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해가 완전히 지고 존심당에 불이 들어오면 고흥의 오래된 중심가는 다시 사람들로 채워진다. 누군가는 성곽의 남은 자취를 따라 천천히 걷고, 누군가는 홍교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춘다. 천경자 생가터가 있는 골목에서는 그림과 동시를 마주하고, 곳곳에서 이어지는 공연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게 관아와 성곽, 골목과 사람들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585년이라는 숫자는 더 이상 먼 과거의 연대에 머물지 않는다. 흥양현으로 불렸던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흥에 쌓여온 시간이 밤길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오는 28일과 29일, 고흥의 옛 중심가는 두 밤 동안 오래된 이야기를 품은 채 다시 문을 연다.
김예영 기자 hoahn0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