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가 김진환의 지구별 여행 카코르토크(Qaqortoq) ― 북대서양 끝에서 만난 오래된 동화의 도시 |
| 2026년 09월 04일(금) 1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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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코브를 떠난 배는 3일 동안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북대서양을 가르며 항해했다. 드디어 그린란드 남부의 중심 도시, 카코르토크(Qaqortoq)에 도착했다. 바다에서 바라본 첫 풍경은 동화책 속 삽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붉은 집, 노란 집, 파란 집이 산 중턱에 옹기종기 붙어 있었고, 마을 뒤편에는 하얀 유빙이 천천히 흘러가며 이 도시 이름의 의미인 ‘하얀 도시’를 조용히 증명하고 있었다.
인구는 고작 3천 명 남짓.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아파트 한 단지에도 못 미치는 규모지만, 이곳 사람들은 오랜 세월 자연과 맞서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단단한 삶을 이어왔다. 유럽인들이 이곳에 도착한 뒤 교회를 세우고 종교를 전하며 원주민들을 모아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원주민인 이누이트족은 동양적인 얼굴에 몽골계의 특징을 갖고 있어 낯설면서도 묘한 친근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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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한 바퀴 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신비로운 땅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벅찼다. 대부분의 집은 콘크리트 기초 위에 조립식 구조로 지어져 있었는데, 먼 나라에서 자재를 컨테이너로 실어 와 조립하는 방식일 것 같았다. 산비탈을 따라 이어진 알록달록한 집들은 바다의 푸른빛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많지 않아 도시가 더욱 고요하게 느껴졌다.
잠시 묘지 근처를 지나며 이곳의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몇 세대 전 원주민들은 아마 이 작은 만을 벗어나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짧은 생을 이곳에서 보내고 묘비 하나 남긴 채 바람 속에 누워 있는 그들의 삶을 상상하자, 지금 내가 누리는 자유와 시간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새삼 깨달았다.
마을 곳곳에는 바위에 새긴 조각 작품과 작은 박물관, 기념품 가게, 그리고 규모가 제법 큰 학교가 있었다. 마을의 유일한 마트는 주민들의 소박한 일상을 상징하듯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8월이라지만 코끝을 때리는 공기는 차가웠고, 여름에도 겨울옷을 입는 주민들을 보며 이들이 맞이할 혹독한 겨울을 잠시 상상해봤다. 긴 어둠과 추위 속에서도 그들은 해마다 봄을 기다리며 꿋꿋이 살아왔을 것이다.
산책하던 중 바다에서 막 잡아 올린 듯한 거대한 연어를 손질하는 부부를 만났다. 양해를 구하고 연어를 들어봤는데 30kg은 족히 넘어 보였다. 매일 거친 바다를 상대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의 삶을 보니 자연 앞에서도 당당히 버티는 사람들의 강인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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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중앙에는 그린란드에서 유일하다는 작은 분수대가 여행객들을 맞고 있었다. 분수 아래로는 실개천이 흐르며 작은 마을에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마치 자신만의 시간을 고요히 품은 듯한 도시였다.
카코르토크는 세련된 관광지는 아니었지만, 거대한 자연 속에서 작고 단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이었다. 알록달록한 집들, 유빙이 흐르는 잔잔한 만, 맑고 차가운 공기, 그리고 바람에 실려 오는 이누이트의 오래된 숨결.
이곳에서 보낸 하루는 마치 오래된 동화 속에 잠시 들어갔다 나온 듯한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