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음-傳’, 기증으로 이어진 도자의 시간

유물 백여 점에 담긴 시간들
왕명 잔탁에 남은 고려 흔적
기증의 뜻 잇는 특별전 개막

김예영 기자 hoahn01@hanmail.net
2026년 09월 10일(목) 15:05
고려청자박물관. [사진=강진군]
박물관 유리장 안의 오래된 그릇 한 점에는 서로 다른 시간이 포개져 있다. 흙을 빚고 불에 구워 그릇을 만들었던 옛사람의 시간, 그리고 오랫동안 간직해 온 유물을 기꺼이 세상과 나눈 기증자의 시간이다. 강진 고려청자박물관에서 오는 16일 막을 올리는 기증유물 특별전 ‘아름다운 이음-傳’은 그렇게 과거와 오늘을 잇는다. 삼국시대 토기부터 고려청자, 조선 분청사기와 백자, 중국 도자기까지 100여 점이 한자리에 펼쳐진다. 이번 전시는 오래된 도자의 아름다움과 함께, 그 유물을 지켜 오늘에 전한 사람들의 뜻까지 함께 들여다보게 한다.

청자에 담긴 기증의 시간들

고려청자박물관이 위치한 강진군 대구면과 인근 칠량면 일대에는 200여 개에 이르는 청자요지가 자리한다. 박물관 주변으로 펼쳐진 강진 고려청자 요지는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됐고, 대구면 곳곳에 남은 가마터는 이곳이 고려시대 대표적인 청자 생산지였음을 말해준다. 오래전 장인들은 이곳에서 흙을 고르고 그릇을 빚고, 문양을 새긴 뒤 뜨거운 가마에 불을 지폈다. 그렇게 만들어진 청자에는 장인의 손끝과 기술은 물론, 당시 사람들이 즐겨 쓰던 그릇의 모습과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번 특별전은 오래된 유물에 또 하나의 시간을 보탠다. 바로 오랫동안 유물을 품고 지켜온 기증자의 시간이다. 고려청자박물관은 지금까지 51명에게서 완형 유물과 도자기 편 등 모두 718점을 기증받아 보존·관리하고 있다. 개인이나 한 가정이 오랫동안 간직해 온 유물은 박물관에서 보존과 연구를 거쳐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전시를 통해 더 많은 사람과 만나면서 한 사람의 소장품은 여러 사람이 함께 보고 기억하는 문화유산이 된다.

전시 제목 ‘아름다운 이음-傳’도 이런 뜻을 품고 있다. ‘傳’은 단순히 유물을 건넨다는 의미를 넘어, 기증자의 뜻과 유물의 가치를 현재와 미래 세대에 전하고, 문화유산 기증 문화가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의미가 담겼다.

도자로 만나는 시대의 풍경

이번 전시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우리 도자문화의 흐름을 시대별로 살펴볼 수 있다. 토기부터 청자, 분청사기, 백자까지 다양한 도자기를 한자리에서 만나며 시대에 따라 달라진 그릇의 형태와 쓰임을 살펴볼 수 있다. 같은 흙과 불에서 태어난 도자기지만 시대마다 빛깔과 문양, 형태가 달라 각 시대의 미감과 생활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중국 도자기도 함께 전시돼 당시 한반도와 주변 지역이 도자를 매개로 주고받은 교류의 흔적도 엿볼 수 있다.

특히 시선을 붙드는 유물은 고려 후기의 ‘청자 상감 王명 잔탁’이다. 잔과 한 벌을 이루던 받침으로, 꽃잎처럼 벌어진 안쪽에 ‘王’자가 흑상감돼 있다. 이 잔탁은 강진 사당리 41호 가마터 주변에서 수습됐다. 같은 ‘王’자가 새겨진 청자는 사당리 7호와 41호를 비롯한 강진 일대에서도 확인됐다. 이 같은 출토 사례를 바탕으로 ‘王명 청자’의 생산지는 사당리 일대로 보고 있으며, 13세기 후반 고려 왕실의 도교 의례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잔탁만 남아 있지만, 안쪽에 새겨진 ‘王’자는 이 그릇이 평범한 생활용기와는 다른 특별한 쓰임을 가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초기 청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해무리굽완도 함께 전시된다. 굽이 햇무리처럼 보여 붙은 이름으로, 초기 청자의 형태적 특징을 살필 수 있다. 또 꽃잎을 닮은 청자 화형접시와 정병, 주자, ‘辛巳’명이 새겨진 청자 발도 선보인다. 서로 다른 형태와 용도의 청자를 비교해 보는 것도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재미다.

청자 상감 王명 잔탁. [사진=국가유산청]

기증에 담긴 사람의 이야기

이번 전시는 유물만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박물관은 유물이 전시장에 오기까지의 과정과 기증자들의 이야기를 영상 콘텐츠와 전시도록에 함께 담았다. 관람객은 도자의 제작 시기와 형태를 살펴보는 동시에, 오랜 시간 유물을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도 조금 더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문화유산 기증은 개인이나 가족이 간직해 온 유물을 박물관에 맡겨 그 가치를 더 오래 이어가는 일이다. 기증된 유물은 조사와 연구를 거쳐 역사적·문화적 의미가 새롭게 조명되고, 전시와 교육을 통해 더 많은 사람과 만나게 된다. 한 사람의 소장품이 모두가 함께 보고 기억하는 문화유산으로 다시 자리 잡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유물이 기증된 뒤 보존과 연구를 거쳐 세상과 다시 만나는 과정까지 보여주며, 문화유산을 지키고 다음 세대에 전하는 기증과 박물관의 의미를 함께 생각하게 한다.

정정희 고려청자박물관장은 “소중한 문화유산을 기꺼이 나눠준 기증자들의 뜻이 있었기에 박물관의 소장품과 연구 기반을 더욱 풍성하게 갖출 수 있었다”며 “이번 특별전이 기증자들에게 감사와 예우의 마음을 전하고, 아름다운 기증 문화가 널리 이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물과 오늘이 만나는 순간

전시장을 천천히 걷다 보면 오래된 그릇은 더 이상 유리장 안의 옛 물건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빛이 바랜 토기와 은은한 비색의 청자, 담백한 백자 한 점마다 그것을 만들고 쓰고 간직해 온 사람들의 시간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품은 도자와 오늘의 관람객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순간, 전시는 한층 더 깊은 이야기를 품는다.

특별전 포스터. [사진=강진군]

특별전 ‘아름다운 이음-傳’은 오는 16일부터 내년 2월 28일까지 고려청자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개막식은 오는 16일 오후 3시 박물관 시청각실에서 진행된다. 오랜 세월을 건너온 유물과 오늘의 기증이 만나는 지점, 이번 전시가 말하는 ‘아름다운 이음’은 바로 그곳에 있다.
김예영 기자 hoahn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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