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는 충분히 줬다…호남의 표는 ‘힘’이 됐나

22대 국회 반환점…압도적 지지에도 중앙정치 존재감은 여전히 숙제
다선 의원들 상임위원장 맡았지만 지역 묶는 정치적 구심점 아직 흐릿
국비 확보 넘어 국가 의제·당권·전국 리더십으로 남은 2년 증명해야

안호걸 기자 hoahn01@hanmail.net
2026년 10월 19일(월) 11:31
지난 1일 국회에서 정기국회 제10차 본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호남은 표를 아끼지 않았다. 광주·전남 18석을 맡기고 대선에서도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22대 국회 임기의 절반이 지난 지금, 이제 물어야 한다. 그 표와 의석은 중앙정치의 힘이 됐는가. 지역민이 키운 다선 의원들은 전남광주의 구심점과 전국적 지도자로 성장했는가.

임기 절반을 넘긴 지금의 중간평가는 초선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국회 경험과 정치적 네트워크를 축적한 다선 의원들에게 더 무거운 질문을 던질 때다. 경험이 깊어졌다면 지역 전체를 위해 감당해야 할 역할도 커지기 때문이다.

5선 박지원, 4선 이개호, 3선 신정훈·서삼석, 재선 김원이·주철현 의원은 지역민이 한 번 이상 다시 선택한 정치인들이다. 그 반복된 선택에는 지역구 민원과 예산을 챙기는 일을 넘어 지역의 목소리를 묶고 중앙정치에서 전남광주의 체급을 높여달라는 기대가 담겨 있다.

지난 2년간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신정훈 의원은 22대 국회 전반기 행정안전위원장을 맡았고, 서삼석 의원은 후반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에 올랐다. 전남광주 행정통합 과정에서는 지역구 의원 18명이 특별법 공동발의에 참여해 통합특별시 출범의 법적 토대를 만드는 데 힘을 모았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큰 질문이 남는다. 몇몇 의원의 개별 성과를 넘어 18석 전체를 하나의 정치적 힘으로 만드는 리더십은 지난 2년 동안 얼마나 만들어졌는가.

표의 힘…85%의 지지는 어디에서 작동했나

전남광주 정치권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은 분명하다. 표다.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이재명 후보는 광주에서 84.77%, 전남에서 85.87%를 얻었다. 전남은 전국 최고, 광주는 두 번째로 높은 득표율이었다. 2024년 총선의 18석과 함께 보면 지역 유권자의 정치적 선택은 어느 지역보다 선명했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이 강한 지지를 무엇으로 돌려줬는가. 국비 몇천억 원 확보, 특별교부세 몇억 원 확보, 지역 숙원사업 건의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압도적인 표와 18석의 의석을 가졌다면 당의 정책 방향을 움직이고 정부의 우선순위를 바꾸며 국가계획과 법률 속에 지역의 요구를 넣는 힘으로 이어져야 한다.

현재 민주당 지도부에는 호남과 인연을 둔 인사들이 진입해 있다. 박선원·서미화 의원이 지난 8월 최고위원에 선출됐고, 신정훈 의원은 당 참좋은지방정부위원장을 맡았다.

하지만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현재 민주당의 당대표와 원내대표, 선출직 최고위원 가운데 전남광주 지역구 의원은 없다. 호남 출신이나 연고 인사가 지도부에 있다는 것과 전남광주 지역구 의원들이 최상위 의사결정 과정에서 하나의 세력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요구를 전달할 통로에 더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끝까지 협상할 집단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자리보다 의제다. 반도체와 AI, 재생에너지, 군공항 이전, 공공기관 이전, 농어촌 소멸, 지역의료 등 전남광주의 미래를 결정할 굵직한 문제 가운데 주민이 곧바로 떠올릴 대표 의제는 무엇인가. “전남광주 정치권이 전국적인 논쟁을 주도해 대한민국 정책을 바꿨다”고 설명할 만한 성과가 얼마나 선명한지 물어야 한다.

통합특별법은 분명 집단 정치의 성과다. 그러나 한 번의 큰 공동행동이 상시적인 정치력까지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통합의 법적 틀을 만드는 데 힘을 모았다면 이제는 그 틀 안에 산업과 일자리, 재정과 권한을 채우는 과정에서도 공동의 협상력을 보여줘야 한다.

표를 받을 때마다 ‘호남의 선택’과 ‘민주당의 심장’을 말해왔다면 이제는 그 표가 중앙정치에서 어느 정도의 결정력으로 전환됐는지 설명해야 한다. 선거의 기여와 선거 뒤의 영향력은 같지 않다. 22대 국회 절반이 지난 지금, 그 사이의 간극을 얼마나 줄였는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왼쪽부터 5선 박지원 의원, 4선 이개호 의원, 3선 서삼석 의원, 3선 신정훈 의원. [사진=의원 측]

집단의 힘…18석인데 누가 지휘봉을 잡고 있나

두 번째 문제는 집단 정치력이다. 의원 한 명 한 명이 자기 지역구에서 성과를 내는 것과 18석이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움직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22대 국회 후반기 상임위 배치를 보면 전남광주 지역구 의원 18명은 12개 상임위에 배정됐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각각 4명씩 포진했고, 서삼석 의원은 농해수위원장을 맡았다.

반면 광주 군공항 이전을 다룰 국방위원회에는 한 명도 없다. AI·우주항공 정책을 맡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도 비었다. 재생에너지와 전력정책이 핵심 현안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도 지역 의원이 없다. 모든 상임위에 18명을 고르게 배치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정치적 조정력이다.

상임위에 지역 의원이 없어도 다른 의원과 협력하고 당 지도부와 정책위원회를 움직여 공백을 메울 수 있다. 다만 협력이 개인의 관심과 인맥에만 의존한다면 지속성과 책임성이 약해진다. 공동 대응의 틀을 갖춰야 하는 이유다.

군공항은 누가 총괄할 것인지, AI는 누가 다른 지역 의원과 연대할 것인지, 에너지정책은 누가 정부와 당 정책위를 설득할 것인지 18명 안에서 역할을 나누고 지휘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선 의원들의 존재 이유가 커진다.

초선 의원에게 자기 상임위 활동을 넘어 중앙당과 정부를 조율하고 18명의 이해까지 묶으라고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일은 국회 경험과 인맥, 당내 발언권을 쌓은 중진들이 앞장서야 한다. 박지원 의원은 5선이다. 이개호 의원은 4선에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까지 지냈다. 신정훈 의원은 3선으로 전반기 행안위원장을 맡았다. 서삼석 의원 역시 3선으로 현재 농해수위원장이다. 김원이·주철현 의원도 재선이다.

개별적으로 보면 경험과 자산이 적지 않다. 그런데 지난 2년을 한 장면으로 놓고 보면 “전남광주 18석을 실질적으로 누가 묶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주민이 자연스럽게 떠올릴 정치적 구심점은 뚜렷하지 않다. 이를 특정 의원의 능력 부족으로 단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지역민이 반복해 다선을 만들어 준 정치적 투자와 지역 전체가 얻는 영향력 사이에 간극이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선수를 쌓는 이유는 국회에서 더 좋은 자리를 갖거나 상임위원장을 한 차례 더 맡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선수는 정치적 자산이다. 후배 의원들을 이끌고 지역의 이해를 조정하며 중앙당과 정부를 상대로 협상력을 키울 때 다선의 의미가 생긴다. 요구가 다를 때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해가 충돌할 때 타협을 끌어내는 일도 중진의 몫이다.

행정은 이미 전남광주통합특별시라는 하나의 틀로 들어섰다. 이제 정치도 ‘광주 8석, 전남 10석’을 따로 헤아리는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통합된 지역에 통합된 정치의 구심점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중진들이 답해야 할 문제다.

사람의 힘…다선으로 키웠는데 전국적 지도자는 어디 있나

세 번째이자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이다. 지역민은 왜 한 정치인을 재선, 3선, 4선, 5선으로 만들어 주는가. 지역구 예산을 조금 더 가져오고 민원을 잘 처리하라는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반복된 선택은 정치적 체급을 키워 중앙에서 더 큰 역할을 하라는 투자이기도 하다.

22대 총선 직후부터 지역 정치권에서는 박지원·이개호·신정훈·서삼석 등 3~5선 의원들이 ‘호남 정치의 복원’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가 제기됐다. 실제로 신정훈·서삼석 의원은 상임위원장을 맡았다. 성과일 수 있다.

국회 임기 절반을 넘긴 지금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전남광주 정치권에서 지역 밖 국민까지 설득하며 국가 의제를 자신의 이름으로 끌고 가는 지도자는 누구인가. 전국적 지도자란 반드시 대통령 후보나 당대표를 뜻하지 않는다. 언론 노출이 많은 정치인도 아니다.

지방소멸, 수도권 집중, 에너지전환, 농어업 위기, 지역의료, 산업 재편 같은 대한민국의 큰 문제에 자기 해법을 내놓고 다른 지역 의원들을 묶어 실제 법과 제도를 바꾸는 정치인이다. 무엇을 바꿀지 제안하고, 왜 바꿔야 하는지 설득하며, 반대와 이해관계를 조정해 결과를 만드는 능력이 전국적 지도력의 기준이어야 한다.

전남광주는 그런 정치인을 만들기에 부족한 지역이 아니다. 농촌소멸의 최전선이면서 대한민국 재생에너지 생산의 중심이고, 동시에 반도체와 AI를 미래 성장축으로 삼고 있다. 수도권 집중의 피해와 산업전환의 가능성이 한 공간에 함께 존재한다.

이 문제에서 해법을 내놓는다면 전남광주의 문제가 곧 대한민국의 의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정치적 성과의 언어가 계속 ‘국비 ○천억 확보’, ‘도로 ○㎞ 건설’, ‘특별교부세 ○억 확보’에만 머문다면 아무리 선수가 높아져도 전국적 리더십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지역구 예산을 챙기는 것은 기본이다. 다선에게는 그 기본을 넘어서는 정치가 요구된다. 호남의 이익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남광주에서 발견한 문제를 영남·충청·강원까지 설득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문제로 바꾸는 것이다. 농어촌의 의료 공백을 국가의 공공의료 책임으로, 재생에너지의 가능성을 산업과 전력체계의 개편으로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더 아쉬운 것은 지역이 다선 의원을 만들어도 그 정치적 자산이 다음 단계의 지도력으로 축적되는 모습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2024년 총선에서 18명 가운데 11명이 초선이었다. 앞선 21대 국회에서도 초선 비율은 72%에 달했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은 필요하다. 하지만 정치적 자산이 축적되기도 전에 현역을 계속 교체하고 살아남은 중진마저 지역구 정치에 머문다면 전국적 지도자를 키우는 구조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유권자에게 책임을 돌릴 문제도 아니다. 다선 의원 스스로 지역구 울타리를 넘어야 한다. 당권에 도전하고, 국가적 정책을 자신의 이름으로 만들며, 다른 지역 의원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지역민이 3선과 4선, 5선을 만들어 준 것은 그 정도의 정치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제22대 국회 초·재선 의원. [사진=의원 측]

남은 2년…18석의 숫자를 ‘힘’으로 바꿀 시간

22대 국회의 전반전은 끝났다. 전남광주 정치권에도 성과는 있었다. 통합특별법이라는 큰 과제 앞에서 18명이 힘을 모았고, 상임위원장도 배출했다. 후반기에는 산업과 농수산 분야에 의원들을 집중 배치했다. 그러나 중간진단은 잘한 일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지난 2년을 돌아볼 때 가장 아쉬운 지점은 개별 의원들은 보이는데 ‘전남광주 정치’라는 하나의 힘은 상대적으로 흐릿했다는 것이다. 특히 초선 비중이 높은 지역 정치구조라면 다선 의원들의 책임은 오히려 더 크다. 중진이 초선을 묶고, 18석을 묶고, 지역 현안을 대한민국의 의제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18명이 공동의 핵심 의제를 몇 가지로 압축하고, 각 사안마다 책임 의원을 정하고, 국회와 정부에서 무엇을 바꿨는지를 주민에게 정기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법안 발의와 회의 개최에 그칠 것이 아니라 법률 반영, 예산 편성, 국가계획 수정 등 어느 단계까지 진전됐는지 설명해야 한다. 다선 의원들은 그 앞줄에 서야 한다.

전남광주시민이 바라는 것은 복잡하지 않다. 압도적으로 보낸 표가 중앙당에서 ‘당연한 표’로 소비되지 않는 것. 18명의 국회의원이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로 움직이는 것. 그리고 지역이 여러 번 선택해 키운 정치인 가운데 대한민국의 방향을 말할 지도자가 나오는 것이다. 표는 이미 충분히 줬다. 의석도 18석이다. 시간도 절반을 썼다.

지역민이 3선·4선·5선으로 키운 이유는 정치기술자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법을 다루는 기술자, 예산을 가져오는 기술자를 넘어 호남의 힘을 모으고 대한민국의 방향을 제시하는 정치인으로 성장하라는 뜻이다.
안호걸 기자 hoahn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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