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부만 늘리는 ‘역주행 조직개편’
지난 17일, 제320회 구례군의회 정례회 본회의에서는 구례군 집행부가 제출한 ‘구례군 지방공무원 정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상정됐으나, 재석 의원 6명 중 5명의 반대로 끝내 부결됐다. 해당 조례안은 4개 부서 신설과 5급 사무관 정원을 4명 증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반면, 6급 이하 실무직 공무원 정원은 4명 감축된다. 실무 인력을 줄여 사실상 간부 자리만 늘리는 구조다.
구례군은 행정 여건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고, 부서 간 업무 불균형 해소와 인사 적체를 풀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개편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구례군의회 의원들은 구례군의 인구가 지속해서 감소하는 상황에서 행정조직만 비대해지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입을 모았다. 조직개편은 행정 수요, 중장기 계획, 인건비 구조, 사업 성과 분석 등이 종합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중대한 과제라는 입장이다. 특히 이번 개편으로 인해 연간 약 2억 원의 인건비가 추가로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선거용' 포석?…정치적 셈법 의혹 짙어져
의회가 조직개편안에 강하게 반대한 배경에는 단순한 행정적 비효율 문제를 넘어,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구심이 자리 잡고 있다. 2026년 6월 지방선거가 2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3선 도전설이 꾸준히 제기되는 현직 군수가 5급 사무관 자리를 4개나 늘리려는 시도 자체가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군정 발전을 위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선거가 다가오는 민감한 시기에 간부직을 늘리는 것은 특정 인물에 대한 보은 인사나 선거를 위한 지지 기반 다지기로 비칠 수 있다.
김 군수가 조직개편의 또 다른 명분으로 내세운 ‘직원들의 승진 적체 해소’ 역시 비판적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인사 적체 해소라는 명분을 왜 하필 임기 말에, 실무 인력을 줄이고 간부만 늘리는 방식으로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결국 인사 문제를 고리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선거용 카드’가 아니냐는 의혹만 짙어지고 있다.
소통 대신 SNS 불만 표출, 협치 부재 '불통 행정'
이번 논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김순호 군수의 일방적인 행정 스타일과 소통 부재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공된 자료에 따르면, 김순호 군수는 2018년 8월 취임 이후 2024년 7월까지 총 8차례의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평균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한 번꼴로 조직을 뒤바꾼 셈이다. 이는 즉흥적인 조직개편이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을 뒷받침하는 명백한 증거다. 잦은 조직개편은 공무원들의 업무 연속성을 저해하고 전문성을 축적하기 어렵게 만들며, 결국 행정 서비스의 질 저하와 군민 불편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중요한 사안을 추진하면서 의회와의 사전 협의나 충분한 공감대 형성 과정이 부족했다는 점도 문제다. 그럼에도 김 군수는 의회 부결 직후 자신의 SNS를 통해 “군정 발전과 군민 복리 증진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이 가로막혔다”며 “직원들의 승진과 역량 발휘 기회가 제한되어 안타깝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는 의회와의 소통을 통해 해법을 모색하기보다는 ‘일부 의원의 반대’로 책임을 돌리고, 의회를 군정 발전의 걸림돌로 규정하는 듯한 태도다.
지금 구례군에 필요한 것은 “서로 협의를 통해 합의점을 도출해내는 지혜”이다. 조직개편이 진정 구례군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그 필요성을 데이터와 구체적인 비전을 통해 증명하고 군민과 의회를 끈질기게 설득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군정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 과연 의회의 반대인지, 아니면 군수의 독단인지, 김순호 군수 스스로 성찰해야 할 시점이다.
한편 구례군 측은 본지의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은 채, 이미 지나간 일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김태리 기자 hoahn0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