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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호남예술제에 시를 내라고 하는데, 시가 뭔지 알아야죠. 자식 공부를 위해선 뭐든지 하는 엄마가 대신 써줘서 뽑혔어요.”
그 후 학교에선 행사만 있으면 정 작가에게 글쓰길 맡겼다고 한다. 이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전했다. 이후 어느 날, 하굣길에 창고에 쓰인 ‘멸공방첩’이라는 글을 본 순간 그는 이 땅을 떠나고 싶어졌다고 한다. 그 네 글자가 정 작가를 옥죄어 들려는 것 같아 어머니를 졸라 서울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상처, 내가 남과 다르다는 자각이 사람에게 글을 쓰게 하는 것 같아요. 제 글의 원천은 어쩌면 가난과 이데올로기였을지도 몰라요.“
정 작가는 좌절감에 허덕이던 때에 책을 통해 위로를 받았고 계속된 독서로 인해 소설가란 꿈을 갖게 됐다. 처음 어머니가 써준 시로 상을 타고, 이후 별 수 없이 쓴 글로도 쭉 상을 휩쓸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소설가란 꿈은 없었다고 한다.
“저는 대개 어떤 인물로부터 시작해요. 어떤 인물과 관련한 장면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을 때가 있어요. 왜 그럴까 생각하다 보면, 보통 그 장면 안에 주제가 숨어 있어요. 평소에 들어왔던 여러 사람의 이야기 중에 그 주제에 합당한 것들을 끌어다가 쓰는 거죠.”
글의 영감을 어디서 얻느냐는 질문에 답한 정 작가의 말이다. 그는 소설을 쓸 때에 아무도 돌아보지 않을 만한 것들, 누추하고 초라한 것들에서 순간의 빛나는 순간을 잡아내는 마음으로 쓴다고 한다. 실제로 <빨치산의 딸> 이후 그가 출간해낸 <행복>, <봄빛>, <숲의 대화>, <검은 방> 등 은 대부분 단편집으로 출간되어 개인의 삶에 대해 다루고 있다.
가령 <봄빛>의 ‘반편이’ 노인의 애틋한 누이 사랑을 만개한 자운영에 비유한 ‘못’,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성이 씩씩한 고모의 손길에 위안 받는 이야기 ‘양갱’, 빨치산 남편을 따라 입산한 아낙의 신산한 삶을 그린 ‘세월’ 등 같이 세속에 휩쓸리지 않고 충실히 견디며 본인몫을 해내는 이들을 많이 써 내렸다.
그 존재는 미미하거나 초라할 정도지만 아름답고 따뜻한 삶을 보여주어 독자로부터 하여금 위로를 느끼게 한다.
최근 정 작가는 지난 9월에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로 제14회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암으로 인해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사촌동생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세상의 잣대로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평범하다 못해 초라한 삶을 살다간 한 사람이 지상에서 흔적도 없이 잊혀지는 게 아팠어요. 초라하게 살다갔지만 너로 인해 많은 사람의 인생이 따듯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변변찮은 직업에 배운 것이 많진 않지만, 사촌동생의 하염없이 고운 마음결을 지나치긴 어려웠다고 한다.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에 실린 구김 없이 살아 온 그의 삶은 독자로부터 하여금 안타까우면서 신비로운 여유를 안겨다 주는 작품이다. 심사위원단으로 참여한 문학평론가 김경수는 ‘단편소설이 어때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수작’이라는 극찬에 가까운 평을 내렸다
정 작가는 요즘 누구나 창작자로 소통하는 시대에서, 소설쓰기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한다. 이에 그는 “산다는 것은 그저 애잔할 뿐”이라며 “누군가의 애잔함으로 내 애잔함을 위로받고, 내 애잔함으로 누군가의 애잔함을 위로하는 것, 그것이 내겐 삶이고 문학이지 않을까”하고 전했다. 그간 스쳐지나갈 법한 희미한 존재에서 찾아낸 애잔함으로, 모두에게 따듯한 위로를 선사하는 책을 써 온 정 작가의 생각답다.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는대산문화 올 봄 호에 실렸다. 도서로는 10월 25일 2020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인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로 찾아볼 수 있다.
홍주희 기자 hoahn0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