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9경 주암호·서재필기념관으로 잇는 물빛과 기억

관광
보성 9경 주암호·서재필기념관으로 잇는 물빛과 기억
산중호수로 피어난 수자원
문덕면에 남은 독립의 기억
호수서 기념관까지 하루 동선
  • 입력 : 2026. 02.10(화) 10:19
  • 김예영 기자
주암호 전경.
보성의 풍경을 떠올리면 대개 차밭의 초록과 바닷바람을 먼저 생각한다. 그런데 ‘보성 9경’의 마지막 장면은 내륙의 물과 근대사의 이름으로 마무리된다. 9경은 ‘주암호·서재필기념관’이다. 호수는 광주·전남권의 물길을 떠받치고, 기념관은 독립의 언어를 오늘의 자리로 불러온다. 한 장소에서 ‘생활의 물’과 ‘자립의 정신’을 함께 만나는 코스가, 보성 북부 문덕면 일대에 펼쳐져 있다.

□ 주암호, 보성강이 만든 ‘내륙의 바다’
주암호를 이해하는 첫 문장은 ‘강’에서 시작된다. 보성강은 보성군 웅치면 일림산과 사자산에서 발원해 보성읍을 지나 보성강저수지와 주암호를 이루고, 결국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물줄기다. 이 강줄기를 막아 만들어진 인공호가 주암호다. 호수의 폭과 굴곡,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골짜기의 깊이는 ‘댐이 만든 풍경’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자연스럽다. 산 능선이 물 위로 내려앉아 병풍처럼 둘러서고, 굽이마다 시야가 달라져 호반길은 드라이브와 라이딩 코스로도 매력을 갖는다.
주암호는 행정구역으로도 경계의 호수다. 유역면적 1,010㎢에 이르며, 순천시·보성군·화순군 3개 시·군에 걸쳐 있다. 이 넓은 물그릇이 생긴 배경에는 ‘물 부족’이라는 현실이 있었다. 주암다목적댐은 광주광역시와 여수·순천·광양 등 호남권 용수난 해소를 위해 1984년 9월 착공해 1992년 12월 완공됐고, 연간 4억8900만 ㎥의 용수를 공급하는 체계로 운영된다. 공급량에 따라 전기도 생산해 최소 4640만kWh에서 최대 7600만kWh까지 생산·공급한다. ‘풍경’이기 전에 ‘기능’이었던 호수가, 시간이 지나 보성 9경의 한 장면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댐과 호수의 시간표도 분명하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 자료를 보면 본댐은 1990년 3월 담수를 시작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주암도수터널’ 통수를 개시했으며, 1992년 12월 시설 준공으로 이어진다. 호수의 물이 단지 이 계곡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필요로 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물길’로 설계돼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주암호 풍경을 가장 간편하게 ‘한눈에’ 잡으려면 전망 지점을 고르면 된다. 순천 쪽에는 ‘주암댐 물문화관’이 대표적이다. 전시실과 야외 전망대가 함께 구성돼 있고, 전망대에서 주암호를 조망할 수 있다. 호수의 물빛을 먼저 읽고, 그 물이 어떻게 관리되고 이동하는지 ‘전시’로 확인하는 방식은, 주암호를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생활 기반 시설’로도 바라보게 만든다.

□ 서재필기념관, 물가에 세운 ‘독립의 교실’
주암호가 ‘오늘의 물’이라면, 보성군 문덕면의 서재필기념관은 ‘어제의 선택’을 되묻게 하는 공간이다. 국가보훈부 현충시설정보서비스는 이곳을 ‘서재필 기념공원’으로 소개하며, 기념의 장이 한 건물에 그치지 않고 마을과 길, 주변 풍경까지 아우르는 형태로 조성됐다고 설명한다.
서재필(송재)의 삶은 한국 근대사의 굴곡과 맞닿아 있다. 그는 1864년 1월 7일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 가내마을에서 태어났고, 1884년 갑신개혁을 주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의학을 공부해 우리나라 최초의 양의사로 이름을 올렸고, 1896년 귀국한 뒤에는 한글신문 ‘독립신문’을 펴내며 시대의 변화를 이끌었다.
독립문 건립에 힘을 보태고 토론회를 열어 자주독립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는 한편, 근대 문명을 소개하는 데도 앞장섰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자유한인대회를 열어 한국의 독립 의지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지지를 모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재필 생가

문덕면의 서재필기념공원은 이런 삶의 흐름을 현장에서 따라가게 만드는 공간이다. 공원은 1990년대 초부터 조성되기 시작해 오늘의 기념공원 형태로 자리 잡았고, 가까운 곳에는 서재필 선생의 생가도 함께 보존돼 있다.
생가는 보성군 문덕면 가내길 18-35에 있으며, 기념공원에서 차로 10분 안팎이면 닿는다. 주암호와 서재필기념관을 한 코스로 묶으면, 호수의 풍경을 감상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한 인물이 남긴 선택과 그 시대가 던지는 질문까지 함께 품고 돌아오게 된다.
보성 9경의 마지막이 주암호와 서재필기념관으로 묶인 이유는, 두 곳이 서로의 빈칸을 채우기 때문이다. 주암호가 지역의 물 수요를 떠받치는 거대한 인프라라면, 서재필기념관은 ‘시민’이라는 단어의 뿌리를 되짚는 공간이다.
한낮의 호수는 넓고 고요하지만, 그 물이 어디로 가고 무엇을 지키는지 알게 되는 순간 풍경은 ‘의미’가 된다. 그리고 기념관을 나서 다시 호반길을 잡을 때, 물결은 단지 아름다운 배경이 아니라 ‘살아가는 조건’으로 읽힌다. 보성 9경의 끝자락에서, 여행은 그렇게 한 번 더 깊어진다.
김예영 기자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