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봉우리 아래, 천년을 쉬어가는 절 ‘화순군 쌍봉사’

관광
두 봉우리 아래, 천년을 쉬어가는 절 ‘화순군 쌍봉사’
신라말 839년 이전 창건 추정, ‘천년고찰’의 시간
화순군 유일 국보 57호 철감선사탑과 보물들이 빚은 품격
숲길·마당·바람이 만드는 느린 여행, 다시 오고 싶은 산사
  • 입력 : 2026. 02.10(화) 15:12
  • 김예영 기자
화순 쌍봉사_한국관광공사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계당산 자락. 길 끝에서 절집이 “여기다” 하고 나서는 대신, 숲과 돌담이 먼저 사람을 늦춰 세운다. 쌍봉사는 신라말 839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천년고찰이다. 화순에서 유일하게 국보를 품은 사찰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해외 매체가 소개한 ‘한국의 아름다운 사찰 33곳’ 목록에 이름을 올린 사실까지 겹치며, 이 산사는 한 번 다녀오면 “언젠가 다시”를 남기는 장소가 된다.

■ 숲이 먼저 인사한다… 계당산 길 끝에서 시작되는 ‘느린 방문’
쌍봉사로 향하는 길은 과장된 장식이 없다. 계당산의 그늘과 바람이 안내판처럼 방향을 잡아준다. 주차장에서부터 곧장 중심 전각으로 뛰어들기보다, 돌담을 따라 천천히 걷는 편이 좋다. ‘관람’이 아니라 ‘방문’이 되려면, 몸의 속도를 먼저 바꾸어야 해서다. 마당으로 들어서면 바닥의 자갈 소리가 작게 따라오고, 그 소리만으로도 말이 줄어든다.
‘쌍봉사’라는 이름의 유래도 여러 갈래로 전해진다. 통일신라 승려였던 철감선사의 법호 ‘쌍봉’을 따서 불렸다는 이야기, 절 앞뒤로 두 봉우리가 서로 읍(揖)하는 모습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겹쳐 내려온다. 어느 쪽이든 현장에서는 쉽게 수긍이 간다. 멀리서 보면 두 봉우리가 마주 보고, 가까이서는 절집을 감싼다. 그래서 쌍봉사는 ‘산속의 절’이라기보다 ‘산이 절을 품은 자리’처럼 느껴진다.
걷다 보면 ‘풍경이 예쁘다’는 말보다 ‘마음이 정돈된다’는 감각이 먼저 든다. 이 절의 장점은 볼거리의 개수가 아니라, 머무를 틈의 넓이에 있다.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많다. 그만큼 눈이 바깥에서 안으로 옮겨 오기 때문이다.

■ 화순 유일한 국보 앞에서 멈추다… 팔각 원당형 철감선사탑
쌍봉사의 역사를 조금 더 알고 들어가면 ‘천년’이 더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9세기 무렵 이곳은 선(禪)의 흐름이 뿌리내린 자리로 거론된다. 특히 혜철이 귀국한 뒤 이 절에서 여름을 지냈다는 기록이 전하며, 그 흐름을 따라 “늦어도 839년 이전 창건” 가능성이 제시된다. 이어 철감선사가 이곳에서 선문을 펼치며 사세가 확장됐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절집 한 채가 아니라, 수행의 네트워크가 자리 잡은 산사였다는 뜻이다.
여행 동선은 욕심을 덜수록 선명해진다. 마당을 가로질러 곧장 국보로 향하기보다, 전각 사이를 한 번 둘러 절의 ‘숨’부터 읽어보자. 처마 아래 그늘이 깊은 시간대에는 마당의 소리가 더 또렷해지고, 햇빛이 강한 날에는 돌조각의 윤곽이 선명해진다. 비가 온 다음 날이라면 숲 냄새가 한층 짙어져, 같은 풍경이 전혀 다른 색으로 보인다.
쌍봉사에서 가장 먼저 만나야 할 문화유산은 국보 제57호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이다. 통일신라 869년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며, 1962년 국보로 지정됐다. 팔각 원당형의 구조는 낯설 수 있지만, 한 번만 둘러보면 금세 이해가 된다. 팔각의 리듬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전체 비례는 단단하게 서 있다.
철감선사 도윤(798~868)의 입적과 ‘철감’이라는 시호가 내려진 배경, 그리고 그를 기리기 위한 승탑의 성격은 이 유산의 의미를 또렷하게 만든다. 탑은 단지 오래된 돌이 아니다. 한 사람의 수행과 공동체의 기억이 결로 남은 기록이다. 가까이에서는 조각의 정교함이 먼저 보이고, 조금 멀어지면 균형감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좋은 조각은 가까이서 놀랍고, 멀리서 편안하다. 이 승탑이 그렇다.
관람 요령이 있다면 ‘정면-측면-후면’으로 천천히 도는 것. 한 바퀴를 돌며 빛이 닿는 면이 바뀌는 순간을 느껴보면, 같은 돌이 다른 표정을 낸다. 그때 비로소 국보가 ‘장소’가 아니라 ‘경험’이 된다.

■ 글이 사라져 더 선명하다… 철감선사탑비, 거북과 머릿돌만 남긴 시간
승탑 곁에는 보물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가 남아 있다. 이 탑비는 현재 비신(몸돌)이 사라지고 귀부(거북받침)와 이수(머릿돌)만 남아 전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자가 사라진 자리에서, 조형은 더 크게 말한다.
거북받침은 낮게 엎드려 있으면서도 힘이 있다. 등껍질 무늬는 장식이 아니라 ‘버티는 문법’처럼 보인다. 머릿돌의 용은 날아오르기 직전의 긴장으로 돌에 붙잡혀 있다. 비문이 남아 있었다면 우리는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바라본다’. 그래서 여행자는 잠시 멈춰 서게 된다. 눈으로 읽는 대신, 마음으로 채우게 되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는 설명판을 오래 붙들기보다, 침묵을 조금 길게 잡아보길 권한다. 바람이 한 번 지나가고, 새소리가 한 번 섞인 뒤에야, 돌거북이 왜 거기에 남아 있는지 이해가 된다.

■ 불전이 탑이 되는 자리…3층 목탑형 대웅전과 지장전 보물, 산사 여행의 끝
쌍봉사의 또 다른 상징은 대웅전이다. 이 전각은 전국 유일의 3층 목탑형식 불전으로 알려져 왔다. 다만 1984년 화재로 소실된 뒤 복원됐고, 그 복원의 시간까지가 오늘의 쌍봉사를 이룬다. 여행자에게 이 대목은 중요하다. 쌍봉사는 “오래된 것”만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사라진 뒤 다시 세운 것”의 결심까지 함께 보여준다.
사찰 내부의 보물은 승탑과 탑비에 그치지 않는다. 지장전에는 보물 ‘화순 쌍봉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이 봉안돼 있다.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도명존자·무독귀왕, 시왕과 권속까지 21구가 함께 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성 연대는 1667년으로 소개된다. 단정한 얼굴과 절제된 표현 속에서 ‘심판’보다 ‘위로’가 먼저 읽힌다. 산사에서 위로가 필요한 순간은, 늘 내 삶의 한복판에 있기 때문이다.
대웅전 목조삼존불상, 극락전과 아미타여래좌상, 극락전 등도 쌍봉사의 층위를 더하는 축으로 거론된다. 한 번의 방문으로 모두를 ‘정복’하려 하면 오히려 풍경이 납작해진다. 이 절은 ‘적게 보고 깊게 남기는’ 방식이 어울린다. 국보 앞에서 한 번 멈추고, 지장전에서 한 번 숨을 고르고, 마당에서 바람 소리를 한 번 듣는 것. 그 세 번의 멈춤만으로도 하루는 충분히 달라진다.
쌍봉사 여행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은 의외로 ‘나오는 길’이다. 절을 등지고 몇 걸음만 걸어도 전각들은 숲 사이로 조용히 접힌다. 그 순간 알게 된다. 쌍봉사는 ‘보는 곳’이 아니라 ‘돌아가서도 계속 생각나는 곳’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 산사는 계절마다 한 번씩, 혹은 마음이 복잡해질 때마다 한 번씩, 다시 찾아올 명분을 스스로 만들어준다.
국보는 시간을 붙잡고, 보물들은 그 시간을 촘촘히 채운다. 하지만 쌍봉사의 진짜 힘은 유산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는 데 있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사람을 이끈다. 천년의 결을 따라 걸으며 오늘의 소음을 내려놓는 방향이다. 두 봉우리가 절을 감싸는 풍경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고 나서, 돌아가는 길에 숨을 길게 내쉬어보자. 그 한 번의 호흡이 여행의 완성이다. 화순 여행에서 ‘조용한 하이라이트’를 찾는다면, 답은 대개 이곳으로 돌아온다.
김예영 기자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