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소년서 전남광주특별시장 후보까지⋯ ‘민형배의 65년’

정치
해남 소년서 전남광주특별시장 후보까지⋯ ‘민형배의 65년’
민형배, 전남광주의 다음 시대를 짊어지다
승리보다 책무 앞세운 통합특별시 첫 후보
지역과 중앙을 거치며 호남정치의 길 다져
  • 입력 : 2026. 04.20(월) 10:08
  • 정희영 기자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국회의원(광주 광산을)은 여야 통틀어 국회 법안 발의 1등 의원이다. 민 의원은 “의원은 입법 노동자이고, 시민께서 부여하신 업무가 바로‘입법’이기에 이에 충실했을 뿐”이라며 “시민과의 대화가 입법 아이디어의 원천이 됐다”고 밝혔다. [사진=민형배 의원실]
지난 14일 오후 6시 15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소병훈 선거관리위원장이 단상에 올라 마지막 결과를 읽어 내려가자 장내는 곧 박수와 환호로 들끓었다. “민형배.” 김영록 전남지사와 강기정 광주시장 등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그는 초대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민주당 후보로 확정됐다. 하지만 민형배가 이 순간을 받아들인 방식은 승리의 환호와는 거리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선출을 두고 “정체된 전남·광주를 깨우고 시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라는 주권자의 엄중한 명령”이라고 했다. 이날의 승리는 그에게 정치적 상승의 장면이 아니라 더 큰 책무를 짊어진 출발로 읽혔다.

해남에서 올라온 청년, 광주라는 시대를 품다

민형배의 시작은 전남 해남이다. 1961년 6월 15일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화내리에서 태어난 그는 해남마산초, 해남중, 목포고를 거쳐 전남대 사회학과에 진학했다. 해남에서 올라온 그에게 광주는 단지 공부를 위해 머문 도시가 아니었다. 그의 삶의 방향을 바꿔 놓은 시대의 현장이었다. 1980년 5월, 전남대 안팎을 뒤덮은 피와 함성은 한 청년의 내면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총성과 군홧발, 그리고 그 앞에서 맨몸으로 버티던 시민들의 얼굴. 민주주의는 그에게 책 속 문장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과 죽음이 걸린 절박한 현실이 됐다. 5·18은 해남에서 올라온 한 청년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겼고, 그 흔적은 훗날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기준이 됐다.

기록과 저항의 현장에서 지역의 맥을 읽다

1988년 그는 전남일보 창간 멤버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전남도청과 광주 각 구청, 교육청, 국세청 등을 출입하며 행정의 가장 가까운 현장을 누볐다. 12년의 기자 생활은 단순한 경력의 축적이 아니었다. 광주와 전남의 속살을 몸으로 익히는 시간이었다. 그는 지역사회의 문제를 기록했고, 권력과 행정이 움직이는 방식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봤다. 전남일보 노조위원장을 맡았을 때는 독단 경영과도 정면으로 맞섰다. 해직과 복직을 겪으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2003년에는 전남대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시민단체 ‘참여자치21’ 공동대표를 맡아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을 이어 갔다. 언론과 시민사회, 두 현장을 거치며 그는 지역을 읽는 법과 지역과 함께 움직이는 법을 함께 배워 갔다.

청와대와 광산구를 오가며 행정의 힘을 익히다

2006년 노무현 정부는 그를 청와대로 불렀다. 국정홍보비서관실 행정관과 시민사회수석실 사회조정비서관을 맡으며 그는 중앙 권력의 심장부에서 지역과 국가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배웠다. 2010년 그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광주 광산구청장에 당선됐다. 이후 재선까지 성공하며 8년 동안 광산구정을 이끌었다. 그가 내세운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생활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행정이었다. 전국 최초의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화, 동장 주민직선제, 민관 협력 복지망 ‘투게더광산’ 등은 전국의 주목을 받았다. 2018년 문재인 정부 청와대로 다시 들어가 자치발전비서관과 사회정책비서관을 맡은 그는 광주형 일자리, 한국에너지공과대 설립, 인공지능 집적단지 조성 등 광주·전남의 핵심 현안을 뒷받침했다. 지역과 중앙을 오간 그의 이력은 이 무렵 더욱 선명한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국회로 넓어진 무대, 개혁의 이름을 세우다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그는 광주 광산구을에 출마해 전국 최고 득표율 84.05%로 국회에 입성했다. 지역 정치인에서 중앙 정치인으로 무대가 넓어졌지만, 민형배의 정치적 색채는 오히려 더 분명해졌다. 그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전략기획위원장을 맡았고, 2022년 검수완박 법안 처리 과정에서는 당적을 잠시 내려놓는 결단도 감행했다. 비판 또한 적지 않았지만, 동시에 그의 선명성과 결기를 각인시킨 장면으로 남았다. 이후 재선에 성공한 그는 검찰개혁특별위원장 등을 맡으며 전국적 인지도를 넓혀 갔다. 기자, 시민사회 활동가, 청와대 참모, 기초단체장, 국회의원으로 이어진 경로는 모두 광주와 전남이라는 공간과 맞물려 있다. 이 이력은 한 개인의 출세담이라기보다, 호남 정치가 지나온 한 궤적으로 읽힌다.

민주와 연대의 도시, 더 큰 책무를 묻다

광주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다. 한국 민주주의가 가장 깊게 상처 입었고, 동시에 가장 치열하게 다시 일어선 공간이다. 1980년 5월의 피와 함성은 한국 정치의 문법을 바꿨고, 시민주권과 연대, 저항과 참여의 가치는 이 도시를 상징하는 언어가 됐다. 전남 또한 그 역사적 감각을 삶의 현장에서 함께 떠받쳐 온 터전이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단순한 행정구역 통합을 넘어서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이 도시는 덩치만 커진 행정체가 아니라, 민주와 연대의 가치를 행정과 정책의 원리로 다시 세워야 한다는 요구 위에서 출범해야 한다. 광주가 피로 지켜낸 민주주의를 제도로 옮기고, 전남과 광주가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드는 일, 그것이 통합특별시에 가장 먼저 주어진 책무다.

지금 지역이 민형배에게 거는 기대 역시 단순한 선거 승리에 머물지 않는다. 전남과 광주가 왜 특별해야 하는지, 왜 더 큰 정치와 더 넓은 권한이 필요한지를 실제 행정과 정책으로 입증해 달라는 요구에 가깝다. 민형배가 주목받는 이유 또한 이미 완성된 거물 정치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광주와 전남이 함께 품어 온 민주와 연대의 가치를 새 시대의 행정과 정치로 옮겨낼 수 있는 인물일지 모른다는 기대가 그를 비추고 있다.

해남 소년으로 출발해 기자와 행정가, 국회의원을 거쳐 통합특별시 첫 후보에 이르기까지의 65년은 한 개인의 입신 경로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것은 호남이 다시 누구에게 미래를 맡길 것인가, 또 어떤 가치 위에 다음 시대를 세울 것인가를 묻는 시간이기도 했다.
정희영 기자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