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사각 줄인다⋯ 전수조사·아이돌봄사 자격제 시행

정치
아동학대 사각 줄인다⋯ 전수조사·아이돌봄사 자격제 시행
진료기록 없는 아동 조사 착수
돌봄인력 국가자격제 본격 시행
예방·신뢰 잇는 국가관리 기준
  • 입력 : 2026. 04.27(월) 16:11
  • 성지용 기자
이스란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아동학대 예방 및 대응 강화 방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동학대 대응의 무게중심은 사후 처벌에서 조기 발견과 예방으로 옮겨갔다. 정부는 5월부터 의료기관 진료 기록이 거의 없는 6세 이하 아동 5만8000명을 전수조사하기로 했고, 지난 23일부터는 교육 이수와 범죄경력 조회 등을 거친 ‘아이돌봄사’ 국가자격제를 시행했다.
집 안에서 드러나지 않던 위험 신호를 국가가 먼저 찾아내고, 부모가 아이를 맡기는 돌봄 인력은 공적 기준으로 걸러내겠다는 취지다. 두 제도는 분야와 방식은 다르지만, 아이를 둘러싼 사각지대를 더는 방치하지 않겠다는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보이지 않던 위험을 먼저 살피고, 맡길 사람의 신뢰를 제도로 증명하겠다는 점에서 이번 변화는 아동 보호 정책의 결을 바꾸는 신호로 읽혔다. 사건이 벌어진 뒤 수습하는 국가에서, 위험이 커지기 전에 먼저 개입하는 국가로 옮겨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았다.

의료 공백에서 위험 신호 찾는다

이번 대책의 가장 강한 메시지는 “보이지 않는 아이를 먼저 찾겠다”는 데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2일 교육부·법무부·행정안전부·성평등가족부·경찰청과 함께 영유아·장애아동 학대 예방 및 피해 보호 강화 대책을 발표하고, e아동행복지원사업으로 포착한 의료 미이용 6세 이하 아동 약 5만8000명을 대상으로 5월부터 전수조사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영유아건강검진을 받지 않았거나 의료기관 진료와 예방접종 기록이 드문 아동을 위험 신호로 삼아 학대 가능성을 더 촘촘히 살피겠다는 뜻이다. 특히 의사 표현이 어려운 영유아는 방임과 학대가 장기간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큰 만큼, 의료 공백 자체를 조기경보 지표로 삼겠다는 접근이 눈에 띈다. 정부는 2세 이하 아동의 가정방문 조사 때 전문인력 동행을 확대하고, 영유아 검진 과정에서는 외상 등 이상 징후 확인도 강화하기로 했다.
한 번도 구조의 눈에 포착되지 않았던 아이를 의료 기록의 빈칸에서 먼저 찾아내겠다는 발상은, 기존 대응 체계와 결이 뚜렷이 다르다.
이 대목은 기존 아동보호 체계의 허점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그동안 학대 징후는 신고가 들어오거나 큰 사고가 벌어진 뒤에야 제도권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영유아는 학교 출결이나 또래 관계 같은 외부 신호가 약해 위험이 오랜 시간 집 안에 갇혀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병원에도 가지 않고 예방접종도 제때 받지 못하는 아이를 국가가 직접 확인하겠다는 방침은 사각지대의 입구를 먼저 좁히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왜 아무도 몰랐나”라는 뒤늦은 질문을 줄이기 위해, 이제 국가는 보이지 않던 공백을 먼저 들여다보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건 대응 넘어 조기 개입 체계로

핵심은 사건이 터진 뒤 대응하는 방식에서 위험 단계에서 먼저 개입하는 방식으로 체계를 바꾸는 데 있다. 정부는 어린이집·유치원 무단결석 관리와 취학연기 확인도 강화하고, 피해아동 보호 쉼터를 공급 부족 지역 중심으로 늘리기로 했다. 영유아 특화 쉼터 시범 운영과 부모 교육 확대도 함께 추진한다.
아동학대를 더 이상 가정 내부 문제로만 보지 않고, 보건·보육·교육 정보가 함께 반응해야 할 공공 안전 의제로 보겠다는 뜻이 읽힌다. 처벌 강화 논의도 병행되지만 이번 대책의 본질은 수사보다 발굴에 한발 더 무게를 둔 데 있다. 학대가 확인된 뒤 개입하는 방식만으로는 피해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현실 인식이 정책 전면에 놓인 셈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신고가 들어온 뒤 얼마나 빨리 움직이느냐보다, 신고조차 어려운 아이를 얼마나 먼저 찾아내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돌봄도 이제 국가 기준 세운다

시행된 개정 아이돌봄 지원법도 이런 변화의 연장선에 놓인다. 성평등가족부는 지난 23일부터 아이돌봄사 국가자격 신청 접수를 시작하고, 민간 아이돌봄서비스 제공기관 등록제를 본격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제 지정 교육기관에서 전문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범죄경력 조회와 건강진단 등 결격 여부를 확인받아야 국가자격을 받을 수 있다.
그동안 공공 아이돌봄센터 소속 인력은 일정 절차 안에서 관리됐지만, 민간 돌봄 인력은 부모가 신뢰 여부를 스스로 가늠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개정법은 이 공백에 국가 인증 기준을 들여온 것이다. 공공 중심이던 관리체계를 민간 영역까지 넓혀, 아이를 맡기는 가정이 최소한의 공적 기준을 확인할 수 있게 한 셈이다.
돌봄을 더 많이 공급하는 것만큼 누가 어떤 기준으로 아이를 돌보는지 묻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제도 변화의 의미는 분명하다. 돌봄의 양을 늘리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돌봄의 질과 신뢰를 국가가 관리하겠다는 방향이 선명해진 것이다.

제도 성패는 현장 작동에 달렸다

다만 제도 도입만으로 사각지대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의료 미이용 아동 전수조사가 실제 현장 방문과 보호 조치로 이어지려면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의료·보육기관 사이의 정보 연계와 인력 대응이 뒷받침돼야 한다. 아이돌봄사 국가자격제 역시 교육기관 운영과 자격 심사, 민간 등록기관 관리가 허술하면 서류상 제도에 그칠 수 있다.
특히 전수조사 대상이 수만 명에 이르는 만큼 읍면동 현장 인력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대응 역량이 충분히 따라주지 못하면 점검은 형식에 머물 수 있다. 국가가 기준을 세웠다면 이제는 그 기준이 수도권과 비수도권,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후속 설계가 따라야 한다. 또 아이돌봄사 자격제가 현장에서 안착하려면 교육기관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 대한 보완과 민간 등록기관 점검 체계도 함께 갖춰져야 한다.
제도는 출발했지만, 부모가 실제로 “믿고 맡길 수 있다”고 체감하는 단계까지 가려면 촘촘한 사후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아이를 둘러싼 위험의 빈칸을 먼저 찾고, 돌봄의 신뢰를 국가가 책임 있게 관리하는 체계로 나아갈 때 비로소 사각지대는 줄어들 수 있다.
제도 시행의 평가는 현장에서 아이를 얼마나 더 빨리 발견하고 더 안전하게 보호하느냐에 달려 있다.
성지용 기자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