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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의 시간표가 만든 명절
법성포의 단오는 농사철 절기에서 시작됐지만, 시간이 지나며 포구의 삶에 맞춰 다른 색을 입었다. 일반적인 단오가 모내기와 파종을 마친 뒤 마을 사람들이 숨을 고르는 명절이었다면, 법성포의 단오는 바다와 물길, 장터가 함께 만든 축제였다. 칠산바다는 봄부터 초여름까지 조기가 많이 잡히는 어장으로 이름났고, 법성포에는 조기와 물건을 사고파는 파시가 크게 섰다.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모아 배로 보내던 조창도 있었다. 법성포는 물고기와 곡식, 사람과 배가 한꺼번에 모이는 포구였다.
음력 오월 초닷새 무렵은 바다와 들판의 일이 잠시 매듭지어지는 때였다. 조기잡이는 한고비를 넘기고 세곡 운반도 마무리됐으며, 농민들은 씨를 뿌리고 모를 낸 뒤 다음 농사일을 기다렸다. 그래서 법성포 사람들에게 단오는 단순히 노는 날이 아니었다. 바다에서 무사히 돌아온 것을 고마워하고, 물길로 곡식을 실어 보낸 일을 마무리하며, 새 계절의 농사를 함께 확인하는 날이었다. 풍요를 기원하면서 지나온 고단함을 서로 위로하는 공동체의 자리였다.
파시도 단순한 장터가 아니었다. 그곳에는 조기와 소금, 곡식과 옷감이 오갔고, 장사꾼과 뱃사람, 농민과 놀이꾼이 뒤섞였다.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면서 바다 일을 마친 사람들이 한숨 돌리고 소식을 나누는 큰 마당이었다. 법성포단오제의 뿌리를 파시난장과 조창난장에서 찾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 축제의 바탕에는 많이 잡고 많이 버는 기쁨만이 아니라, 거친 바다와 물길을 지나온 사람들이 서로의 무사함을 확인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나누는 마음이 놓여 있었다.
산과 마을, 바다에 차린 상
법성포단오제의 의례는 마을을 둥글게 감싼다. 먼저 인의산 산신제는 높은 곳에서 재앙을 막고 풍요를 비는 절차다. 마을 안쪽의 당산제는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어 온 당산신에게 올리는 제의다. 법성포에서는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을 잇는 의례를 통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빈다. 두 당산을 잇는 과정은 흩어져 있던 주민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 상징적 절차이기도 하다.
의례의 절정은 물길 위에서 치러지는 용왕제다. 배를 띄우고 제상을 차려 용왕에게 풍어와 안전한 조업을 청하는 순간, 단오는 더 이상 내륙의 명절에 머물지 않는다. 산과 마을과 바다가 차례로 불려 나오는 구조는 법성포 사람들의 생활 반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들에게 신성한 공간은 산꼭대기에도 있었고, 마을 어귀에도 있었고, 파도가 밀려오는 물목에도 있었다.
바다는 은혜를 주는 곳이면서 언제든 사람을 삼킬 수 있는 곳이다. 포구의 풍요는 늘 위험의 그림자를 데리고 왔다. 법성포 사람들은 그 양면성을 제의의 언어로 다스렸다. 풍어를 비는 일은 더 많이 잡겠다는 욕망만이 아니었다. 무사히 돌아오게 해 달라는 간절함, 마을이 함께 버텨내게 해 달라는 청원이었다. 그래서 법성포단오제의 용왕제는 축제의 장식이 아니라 핵심에 가깝다. 이 의례를 지나야 비로소 놀이도, 난장도, 웃음도 제자리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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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놀이, 바다 위의 풍류
선유놀이는 이름 그대로 배 위의 놀이다. 기록에는 법성포의 부녀자들이 나룻배를 타고 법성진에서 은선암 주변이나 바닷가를 돌며 음식과 가무를 즐긴 모습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것을 한가한 유람으로만 읽으면 축제의 깊이를 놓친다. 배는 생업의 도구였고, 포구는 위험과 번영이 동시에 드나드는 문이었다. 배 위에 음식을 차리고 노래와 춤을 얹는 일은 일상의 도구를 축제의 무대로 바꾸는 일이었다.
용왕제가 바다에 대한 두려움의 언어라면, 선유놀이는 그 두려움을 흥으로 풀어내는 공동체의 기술이었다. 여성들이 놀이의 한 축을 맡았다는 점도 눈여겨볼 장면이다. 포구의 삶은 바다에 나간 사람들만의 역사로 끝나지 않는다. 기다리고, 거두고, 나누고, 다시 떠나보내는 사람들의 생활까지 함께 있어야 완성된다. 법성포단오제에서 바다 냄새가 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의례가 바다를 달래고, 놀이는 바다를 품었다.
난장에서 피어난 예능의 힘
법성포단오제는 의례에만 머물지 않고 난장트기, 국악경연, 농악, 씨름, 그네, 민속놀이로 넓어진다. 숲쟁이는 단지 공원이 아니라 예인들이 기량을 겨루던 무대였고, 난장은 물건만 오가는 시장이 아니라 소리와 몸짓, 소문과 관계가 오가는 문화의 항구였다. 포구가 물길의 교차점이었다면, 난장은 사람과 예능의 교차점이었다.
이런 성격 때문에 법성포단오제는 대동놀이, 해양축제, 예능축제의 얼굴을 함께 갖는다. 산신제와 당산제가 마을의 뼈대를 세우고, 용왕제가 바다와의 관계를 묻고, 선유놀이와 국악경연이 흥을 펼친다. 굴비의 고장 법성포에서 단오는 경제와 예능, 신앙과 놀이가 뒤섞인 한판이었다. 그 한판 속에서 지역민은 공동체를 확인했고, 방문객은 포구 문화의 깊이를 만났다. 한 마디로 법성포단오제는 ‘바다를 믿고 살아온 사람들의 종합예술’이다.
바다로 이어지는 단오의 길
법성포단오제를 여행하려면 산신제에서 당산제, 용왕제, 선유놀이로 이어지는 흐름을 함께 읽어야 한다. 뭍에서 바다로, 제사에서 놀이로, 두려움에서 흥겨움으로 옮겨가는 길이 이 축제의 본문이다. 제상 앞의 절, 배 위의 노래, 숲쟁이의 소리를 한 장면으로 묶어 보면 법성포가 왜 단오를 포구의 언어로 바꿔 왔는지 보인다.
법성포의 단오는 계절을 기념하는 날이자 바다를 달래고 마을의 안녕을 비는 날이다. 법성포 단오제에서 바다 냄새가 나는 까닭은 분명하다. 바다 곁에서 열린 단오가 아니라, 바다를 살아낸 사람들이 만든 단오이기 때문이다.
정원채 기자 hoahn0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