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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게 듣고 넓게 품는 행정
장 군수는 이날 취임사에서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를 꺼냈다. 가까운 사람이 기뻐하면 먼 사람도 찾아온다는 뜻이다. 그는 군민이 구례에 사는 일을 자랑스럽게 느끼는 군정을 새 출발점으로 삼겠다고 했다. 청년과 아이가 꿈을 키우고, 어르신이 편안한 하루를 보내는 지역을 만들겠다는 말이다.
장 군수는 선거 때의 자신과 오늘의 자신, 앞으로의 자신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말보다 실천으로 신뢰를 쌓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지난 6월 3일 지방선거를 지나 갈라진 민심을 하나로 모으는 일도 첫 과제로 꼽았다. 군민의 목소리를 먼저 듣고, 현장의 작은 불편부터 고치는 생활 행정에 힘을 싣겠다는 구상이다.
구례가 마주한 현실은 가볍지 않다. 지난해 말 구례의 거주인구는 2만4023명이었고, 65세 이상 비율은 41.3%에 이르렀다.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빨라지는 흐름 속에서 ‘3만 구례’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일자리, 교육, 돌봄, 관광을 함께 살려 다시 사람이 모이는 지역을 만들겠다는 약속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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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받치는 기본소득
장 군수가 가장 앞에 둔 정책은 군민 기본소득이다. 그는 기본소득을 단순한 현금 지원이 아니라 지역 안에서 돈이 돌고, 소상공인과 농가까지 숨통을 트이게 하는 정책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구례군은 농림축산식품부 주관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추가 공모에 선정돼 오는 9월부터 1년 6개월 동안 매월 15만 원을 카드형 지역화폐로 지급할 예정이다.
다만 실현에는 꼼꼼한 설계가 필요하다. 재원 마련, 지급 방식, 조례 정비, 군의회 협의가 뒤따라야 한다. 장 군수가 이날 소통과 협력을 거듭 말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큰 약속일수록 군민에게 과정과 숫자를 쉽게 설명해야 믿음이 쌓인다. 민선 9기의 첫 시험대가 기본소득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교육도 큰 축이다. 장 군수는 “구례의 미래는 교육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교육 때문에 떠나는 지역이 아니라 교육을 위해 찾아오는 지역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미래 핵심 역량 개발원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인공지능 시대에 맞는 힘을 기르고, 세계를 향해 꿈을 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아이 키우기 좋은 지역을 만드는 일은 인구 3만 회복의 밑바탕이기도 하다.
지난달 17일 출범한 군수직 인수위원회도 기본소득과 행복교육, 체류형 관광, 산동온천 재정비 같은 과제를 먼저 들여다봤다. 정책행정, 교육복지, 문화교통, 농업경제, 건설환경 등 5개 분과가 군정 현안을 나눠 점검했다. 취임 뒤 곧바로 정책을 밀고 가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농업을 바꾸고 관광을 키운다
농업 분야에서는 대전환을 내세웠다. 전략작목을 키우고, 인공지능과 스마트농법을 현장에 들여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생산에만 머물지 않고 가공, 연구, 유통, 관광을 잇는 농업으로 체질을 바꾸겠다는 점도 강조했다.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제 확대도 약속했다. 농민이 가격 폭락 걱정을 덜고 새 작목과 새 기술에 도전할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다.
문화와 관광은 구례의 또 다른 성장판으로 제시됐다. 장 군수는 문화관광재단을 중심에 두고 축제와 관광의 힘을 키우겠다고 했다. 지리산과 섬진강, 화엄사, 산동 온천지구 같은 자원을 따로 보지 않고 하나의 길로 묶어 사람이 머무는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관광객이 오래 머물수록 숙박, 음식, 농특산물 판매가 함께 살아난다는 판단이다.
그는 산동 온천지구와 화엄사 상권 활성화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했다. 관광은 보는 데서 끝나면 지역에 남는 힘이 작다. 먹고, 자고, 걷고, 다시 찾게 만드는 구조가 갖춰져야 한다. 장 군수의 구상은 자연과 문화, 치유 자원을 묶어 구례 전체를 하나의 여행지로 키우는 데 맞춰져 있다.
돌봄과 자치로 신뢰 세운다
복지도 촘촘하게 손보겠다고 했다. 장 군수는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필요한 순간 기대어 설 수 있는 통합돌봄 체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행정이 먼저 살피고, 이웃이 함께 돌보는 구조를 넓혀 누구도 외롭지 않은 공동체를 세우겠다는 뜻이다. 고령 인구가 많은 농촌 현실을 생각하면 돌봄은 복지 정책을 넘어 지역 유지의 핵심 과제다.
지방자치의 방식도 바꾸겠다고 했다. 주민자치회를 전체 면으로 넓히고 권한을 키워, 마을 문제가 마을 안에서 먼저 논의되고 풀리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구례군의회와의 관계는 견제와 균형을 존중하면서도 협력의 길을 넓히겠다고 했다. 군의회와 군민 행복이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소통하겠다는 것이다.
공직사회에는 자율과 책임을 주문했다. 장 군수는 공정한 인사를 원칙으로 삼고, 열심히 일한 사람이 인정받는 조직을 만들겠다고 했다. 중요한 결정의 책임은 군수가 지되, 일선에는 권한과 자율을 보장하겠다고도 했다.
새 군정의 성패는 약속을 얼마나 빨리 내놓느냐보다 군민이 얼마나 체감하느냐에 달려 있다. 장 군수는 공직자가 행복해야 군민도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일선 공무원이 자부심을 갖고 움직일 때 행정의 온도도 달라진다는 판단이다. 취임식장의 박수는 기대의 표시였지만, 앞으로의 평가는 현장에서 이뤄진다. 군민이 매일 만나는 민원 창구와 마을 길, 학교와 농장에서 변화가 확인돼야 한다. 그것이 새 출발의 무게다. 그래서 더 치밀해야 한다.
끝으로 그는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를 인용했다.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말이 없어도 사람이 찾아와 길이 난다는 뜻이다. 장 군수는 군민의 뜻을 길로 삼아 구례의 내일을 열겠다고 밝혔다.
서은선 기자 hoahn0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