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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생명부터 지키는 학교
통합교육청의 최우선 정책은 학생 생명과 마음건강이어야 한다. 전남에서 파악된 자해 시도 학생은 지난 2021년 189명에서 2025년 677명으로 늘었다. 자살 시도 사례도 지난 2021년 40명, 2022년 32명, 2023년 65명, 2024년 62명, 2025년 57명으로 계속 확인됐다. 수치가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아이들의 고통은 이미 학교 밖 문제가 아니라 학교 안의 긴급한 과제다. 예산과 인력 배치도 이 기준에서 다시 짜야 한다.
이제 대응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사건이 난 뒤 상담을 붙이는 방식만으로는 늦다. 담임교사 혼자 학생의 마음을 살피는 구조도 한계가 있다. 모든 학교에 위기 신호를 조기에 찾는 절차를 세우고, 교육지원청에는 정신건강 전문가와 상담 인력을 묶은 전담팀을 둬야 한다. 학교, 병원, 상담센터, 가정이 따로 움직이지 않고 한 팀처럼 이어져야 한다. 학생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6개월 이상 살피는 사후관리도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마음건강은 특별한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힘들 수 있다는 전제에서 예방 교육, 익명 상담, 보호자 안내를 일상화해야 한다.
기초학력은 통합의 출발선
두 번째 과제는 기초학력이다. 통합교육청은 도시와 농어촌의 차이를 설명하는 기관이 아니라 그 차이를 줄이는 기관이어야 한다. 초등 저학년 때 읽기, 쓰기, 셈하기가 흔들리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학습 포기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기초학력 진단은 시험 점수를 매기는 일이 아니라 도움을 빨리 건네는 일이어야 한다.
광주와 전남은 학교 규모와 생활 여건이 다르다. 광주 원도심 학교, 전남 섬 지역 학교, 신도시 과밀 학교의 어려움은 서로 다르다. 새 교육청은 같은 처방을 일괄로 내릴 게 아니라 학교별 결손 원인을 먼저 봐야 한다. 초등 저학년은 담임 중심으로 기초 문해력과 수리력을 책임지고, 중학교는 과목별 보충과 진로 상담을 함께 붙여야 한다. 학습 부진의 배경에 정서 문제나 가정 형편이 있으면 상담과 복지도 함께 들어가야 한다. 한 학생을 여러 부서가 나눠 보는 대신 한 팀이 끝까지 책임지는 체계가 필요하다.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아이를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 부족한 부분을 찾고, 채우고,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 학교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AI는 도구, 교사는 기준
세 번째 축은 인공지능 교육이다. 인공지능은 숙제를 대신해 주는 기계가 아니다. 질문을 더 잘 만들고, 자료를 비교하며, 틀린 답을 찾아내는 배움의 도구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기 보급보다 수업 기준이 먼저다. 학생이 인공지능 답변을 그대로 베끼지 않도록 출처를 확인하고, 왜 그런 답이 나왔는지 설명하게 해야 한다. 교사는 인공지능을 금지할지 허용할지만 고르는 사람이 아니라, 안전하게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안내자가 돼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와 저작권 교육도 함께 들어가야 한다. 편리함만 가르치면 기술에 끌려가고, 기준을 함께 가르치면 기술을 부릴 수 있다.
전남광주는 이 분야에서 장점이 있다. 광주의 인공지능 산업 기반, 전남의 에너지·농생명·해양 자원을 교실과 연결할 수 있다. 학생들이 지역의 교통, 농업, 환경, 관광 문제를 자료로 모아 인공지능으로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게 하면 교육은 훨씬 살아난다. 작은 학교도 공동수업과 원격수업을 활용하면 도시 학교와 함께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모든 학교가 같은 기회를 갖는 일이다. 장비가 부족한 학교, 교사 연수가 늦은 학교부터 먼저 지원해야 한다.
학군 불안 줄이고 기준 공개
통합이 커질수록 학군 재편과 인사, 조직 문제에 대한 불안도 커진다. 준비위원회는 오는 15일부터 21일까지 시도민·학부모·교직원 4000명을 대상으로 정책 여론조사를 벌이고, 시민소통위원회도 꾸리기로 했다. 기초학력 보장, 인공지능 미래교육, 학군 재편, 행정조직, 인사제도, 지역 상생이 핵심 의제다. 광주에는 통합교육기획위원회와 AI교육대전환위원회를, 무안에는 자율분권교육위원회와 메가시티교육위원회를 두는 구상도 제시됐다. 준비위 활동은 오는 7월 30일까지 이어진다. 속도보다 올바른 방향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여론조사는 출발일 뿐이다. 결과를 공개하고, 어느 의견을 정책에 반영했는지 설명해야 신뢰가 생긴다. 학군 조정은 통학 거리, 학교 시설, 학생 수, 지역 균형 기준을 먼저 공개해야 한다. 작은 학교는 없애는 대상이 아니라 살릴 자원으로 봐야 한다. 학생 수만으로 학교의 가치를 재단해서도 안 된다. 공동교육과정, 대학·기업 연계 수업, 특성화고 진로 프로그램을 묶으면 학생은 지역을 떠나지 않고도 더 넓은 길을 찾을 수 있다. 통합청의 인사와 예산도 한쪽에 쏠렸다는 의심이 생기지 않게 기준을 숫자로 보여줘야 한다.
전남광주 교육의 첫해는 많은 일을 벌이는 시간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는 시간이어야 한다. 먼저 생명을 지키고, 다음으로 배움을 붙들고, 그 위에 미래교육을 얹어야 한다. 새 교육청이 이 순서를 지킬 때 통합은 행정의 성공을 넘어 아이들의 삶을 바꾸는 약속이 된다. 대한민국 교육의 새 표준은 큰 선언에서 나오지 않는다. 가장 아픈 학생을 먼저 살피는 교실, 가장 뒤처진 학생을 끝까지 기다리는 학교, 지역의 미래를 자기 문제로 배우는 수업에서 시작된다.
정원채 기자 hoahn0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