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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은 복숭아와 매실, 토마토 등 여러 원예작물을 생산하지만 농가별 물량이 흩어지면 선별 기준을 맞추고 대량 주문에 대응하기 어렵다. 수확 직후 신속한 선별과 저온 보관이 필요한 품목은 작업이 늦어질수록 상품성이 떨어질 수 있다. 공급센터는 농산물이 산지를 떠나기 전 상품화 과정을 한데 묶어 개별 출하를 조직화된 공동출하 체계로 바꾸는 역할을 맡는다.
선별부터 저장·반출까지 한곳에서
센터는 동강면 한천리 일원에 지상 2층, 연면적 2359㎡ 규모로 들어섰다. 1층에는 스마트 공동선별장(APC)과 소포장실, 저온 냉장창고, 위생검수실을 갖췄다. 농산물이 들어오면 품질 기준에 따라 나누고, 소비자가 원하는 크기와 단위로 포장한 뒤 신선도를 유지하며 저장할 수 있다. 농가별로 하던 작업을 한곳에서 처리해 출하 준비 시간을 줄이고 상품 규격을 일정하게 맞추는 것이 핵심이다.
2층에는 운영사무실과 세미나실, 창업 공유오피스가 마련됐다. 단순한 선별장을 넘어 농가 교육과 출하 협의, 농업 창업 지원까지 묶는 복합 거점으로 쓰겠다는 뜻이다. 군의 업무계획에는 자동선별과 저온저장뿐 아니라 바코드 물류관리, 출하 예약과 정산 조회가 가능한 농가용 모바일 시스템, QR코드를 활용한 생산이력 제공도 담겼다. 시설과 데이터를 연결해 산지 유통을 더 빠르고 투명하게 만들겠다는 방향이다.
지난 21일 준공식에는 공영민 고흥군수와 송형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회 의장, 김민열 고흥군의회 의장, 군의원, 농·축협 조합장, 출하 농가와 주민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동강 마동매구 농악단의 풍물놀이를 시작으로 경과보고와 참여농가 답사, 테이프 커팅, 시설 시찰이 이어졌다.
복숭아로 가동 점검…토마토로 확대
센터는 준공식에 앞서 지난달 15일부터 복숭아를 대상으로 시범 가동했다. 반입된 복숭아를 정밀 선별하고 포장해 전국으로 내보내면서 설비와 작업 동선, 저장·반출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했다. 공영민 군수도 지난 3일 현장을 찾아 선별 장비와 농산물 반입부터 반출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살폈다. 복숭아와 토마토 출하 농가를 만나 판로와 현장 애로사항도 들었다.
다음 품목은 토마토다. 군은 오는 11월부터 토마토 재배 60여 농가와 연계해 공동선별·공동출하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여름철 복숭아에 이어 겨울철 토마토를 처리하면 특정 시기에만 시설이 멈추는 문제를 줄일 수 있다. 군은 매실과 방울토마토, 완숙토마토 등으로 취급 품목을 넓혀 연중 가동률을 80% 이상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여러 농가의 물량을 모아 규격을 맞추고 출하 시기와 물량을 조절하면 도매시장과 대형 유통처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기반도 커진다.
군은 공급센터와 로컬푸드 직매장을 고흥 농산물 유통의 두 축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공급센터가 공동선별과 대량 출하를 맡고, 직매장은 지역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창구가 되는 구조다. 대형 거래처와 지역 소비시장을 함께 확보하면 상품 등급과 출하량에 따라 판로를 나눌 수 있고, 작은 농가도 시장에 참여할 기반이 넓어진다.
공동출하로 협상력 높인다
센터의 가장 큰 역할은 농산물을 ‘잘 키우는 일’과 ‘잘 파는 일’을 나누는 데 있다. 소규모 농가는 선별기와 저온창고를 따로 갖추기 어렵고, 출하량이 적으면 시장과 가격을 협의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공동선별과 공동출하는 흩어진 물량을 하나로 묶어 품질을 표준화하고 운송과 포장 비용을 줄이는 방식이다. 같은 기준을 통과한 상품을 꾸준히 내보내야 고흥 농산물에 대한 거래처의 신뢰도 쌓인다.
군은 공동 배송체계를 만들고 도매시장과 연계한 물류를 운영하는 한편, 지역 농산물 브랜드를 통합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출하 예약과 정산 정보를 농가가 손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되면 언제, 얼마나 출하했고 얼마를 받았는지 관리하기 쉬워진다. 생산이력까지 소비자에게 제공하면 안전성과 품질을 앞세운 판매 전략도 가능해진다.
성과는 농가 소득으로 증명해야
시설 준공이 곧 유통 혁신의 완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참여 농가와 출하 물량을 꾸준히 확보하고, 품목별 선별 기준과 정산 원칙을 투명하게 세워야 한다. 판로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물량만 모으면 저장 비용이 늘 수 있는 만큼 도매시장과 대형 유통업체, 온라인 판매처를 함께 넓혀야 한다. 전문 운영인력 확보와 설비 유지관리, 농가 교육도 센터의 성패를 가를 요소다.
가동률 80%라는 수치만큼 중요한 것은 농가가 체감하는 결과다. 참여 농가 수와 공동출하 물량, 포장·운송비 절감액, 평균 정산가격 등을 꾸준히 공개해야 사업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선별 기준과 비용 분담을 둘러싼 불신이 생기지 않도록 운영 과정도 투명해야 한다. 공급센터가 행정 시설에 머물지 않고 농민이 먼저 찾는 유통조직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공영민 군수는 “스마트 공급센터는 단순한 농산물 선별장을 넘어 수급 조절과 산지 유통 혁신을 이끄는 핵심 거점이 될 것”이라며 “안정적인 운영 관리와 농가 지원에 군의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과제는 분명하다. 센터를 거친 농산물이 더 좋은 조건으로 팔리고, 그 이익이 농민에게 돌아가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고흥 농업의 새 유통 실험은 준공식이 아니라 농가의 정산서에서 평가받게 된다.
서은선 기자 hoahn0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