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수도’ 나주, 호남 반도체 성장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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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수도’ 나주, 호남 반도체 성장축으로
한전·전력기관 한곳에 집적
국가산단·켄텍 연구축 확보
광주 생산기지 배후망 구축
  • 입력 : 2026. 08.06(목) 11:24
  • 김예영 기자
4. 나주시는 지난해 미래 에너지 전환의 핵심기술로 주목받는 ‘인공태양(핵융합) 연구시설’ 유치에 성공해 글로벌 핵융합선도도시로 도약하고 있다.
광주 군공항 일대가 지난달 29일 호남권 반도체 첨단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지정되면서 광주와 나주를 잇는 미래산업 축이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 250만 평 규모 후보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 수요를 반영한 대형 프로젝트다. 그러나 공장 부지만 마련한다고 세계적인 클러스터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전력과 용수, 연구개발, 인재, 소재·부품·장비 공급망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이 조건을 갖춘 인접 도시로 빛가람혁신도시를 품은 나주가 떠오르고 있다. 생산은 광주가 맡고, 전력과 연구개발, 기자재와 인력은 나주가 뒷받침하는 분업 구조다.

전력기관 집적, 공장 밖 경쟁력

나주의 가장 큰 강점은 전력산업 기관이 한곳에 모여 있다는 점이다. 빛가람혁신도시에는 한국전력과 전력거래소, 한전KDN, 한전KPS가 본사를 두고 있다. 송·배전과 전력시장 운영, 전력 정보통신, 발전설비 정비 기능이 가까운 거리에서 연결된다. 반도체 공장은 순간적인 전압 흔들림이나 정전도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어 전력망 설계와 실시간 관리, 설비 유지보수가 중요하다. 나주는 이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과 기술기업이 모인 국내 대표 집적지다.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확대로 전력 수요가 늘고, 글로벌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사용과 탄소 감축까지 공급망에 요구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의 변동성을 보완할 에너지저장장치, 분산전원, 디지털 계통 운영 기술이 함께 필요한 이유다. 나주가 축적한 전력산업 기반은 전기를 보내는 기능을 넘어 값싸고 안정적이며 탄소 배출이 적은 전력체계를 설계하는 데 강점을 가질 수 있다.
다만 기관이 모여 있다는 사실이 곧바로 공장에 전기가 공급된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 생산라인을 돌리려면 대용량 송전선로와 변전소, 이중화된 공급망을 새로 갖춰야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오는 2029년 말까지 산단 연결 송전망을 구축한다는 계획이지만 부지 확정과 인허가, 국비 확보가 뒤따라야 한다. 나주의 역할도 행정기관 유치에 머물지 않고 계통 설계와 실증, 기자재 공급, 유지관리까지 산업 현장으로 이어져야 힘을 얻는다.

국가산단·대학, 연구와 기업 잇는다

산업 공간과 연구 기반도 나주의 경쟁력을 키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나주시 왕곡면 덕산리 일원 123만9722㎡를 에너지 국가산업단지로 승인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전남개발공사가 오는 2032년까지 2633억 원을 투입해 에너지산업과 신소재·나노융합소재, 친환경 정보기술 기업을 유치할 예정이다. 국토부는 산단 완공 때 3164억 원의 생산 유발과 1515명의 고용 유발 효과를 예상했다. 산단이 반도체 전력장비와 첨단소재 기업까지 끌어들이면 광주 생산기지와 맞물린 공급망을 만들 수 있다.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는 전력반도체와 인공지능, 에너지 신소재, 스마트그리드를 중점 연구하고 있다. 실리콘카바이드와 질화갈륨을 활용한 고전압 전력반도체 연구는 전력 손실과 발열을 줄이는 기술로 전기차,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에 쓰일 수 있다. K-그리드 인재·창업밸리는 대학과 전력 공기업, 연구기관, 스타트업을 묶어 기술 개발에서 창업까지 잇는 사업이다. 지난 해 나주 유치가 확정된 인공태양 연구시설도 초전도와 플라즈마, 첨단소재 연구 기반을 넓힐 수 있다. 나주가 단순한 전력 공급지가 아니라 기술과 인재를 함께 내놓는 연구 거점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용수·기자재, 계획을 시설로 바꿔야

반도체 공정에는 막대한 물과 높은 순도의 초순수가 필요하다. 현재 특별시는 동복댐과 보성강댐, 주암댐 등을 연계해 초기 용수를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나주시는 영산강 수계와 나주호 등을 활용한 산업용수 공급과 노안권 초순수 기반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아직 완성된 공급시설이 아니다. 취수원별 공급량과 수질, 관로 위치, 정수·재이용 체계, 주민 부담을 수치로 제시해야 배후도시 구상이 현실이 된다. 폐수 처리와 물 재이용 시설까지 한 묶음으로 설계해야 가뭄과 환경 규제에도 흔들리지 않는 생산 기반을 만들 수 있다.
노안 일반산업단지를 전력기자재 중심의 소재·부품·장비 특화단지로 키우는 사업도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 나주시는 변압기와 차단기, 개폐기, 디지털 전력망 장비를 중심으로 정부 공모를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는 반도체용 전력장비와 시험인증, 정비업체까지 범위를 넓히고 광주 산단의 발주와 나주 기업의 생산을 연결하는 공동 구매·실증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산업용지 확보와 개발제한구역 해제, 입주기업 유치도 동시에 풀어야 한다.

광주·나주 분업, 실행 속도가 관건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성패는 두 도시가 무엇을 가져갈지를 다투는 데 있지 않다. 광주는 공장과 인공지능·미래차 산업을 묶고, 나주는 전력망과 연구개발, 소재·부품·장비, 인재 양성을 맡는 구조가 효율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광주와 나주, 정부, 한전, 대학, 기업이 참여하는 상설 추진체를 꾸려 전력·용수·산업용지·인력 계획을 하나의 시간표로 관리해야 한다. 국가산단 후보지 지정은 출발점일 뿐 최종 지정과 군공항 이전, 기반시설 건설이라는 큰 관문이 남아 있다.
공공기관 2차 이전과 발전공기업 통합 본사 유치도 나주의 기회로 거론되지만 아직 입지가 정해진 사업은 아니다. 불확실한 기관 이전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재 보유한 조직과 연구시설을 기업 투자로 연결하는 것이다. 반도체 소부장 기업이 실제 입주할 부지와 세제·인력 지원책, 광주 공장과의 납품 체계를 구체화해야 한다.
윤병태 나주시장은 “광주가 첨단 생산기지라면 나주는 전력과 연구개발을 맡는 핵심 배후도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구상이 힘을 얻으려면 ‘준비된 도시’라는 선언을 실제 시설과 기업, 일자리로 증명해야 한다. 빛가람혁신도시의 기관 집적과 국가에너지산단, 켄텍의 연구역량을 광주 생산라인과 촘촘히 연결할 때 나주는 호남 반도체 시대를 떠받치는 성장 거점이 될 수 있다.
김예영 기자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