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식 걷어내는 전남광주… 서·논술형 전환 승부수

교육
객관식 걷어내는 전남광주… 서·논술형 전환 승부수
내년 초5·6, 중1부터 시행
교사 부담·사교육 우려 확산
대입 개편 연계 여부가 변수
  • 입력 : 2026. 08.07(금) 10:53
  • 서은선 기자
서·논술형 도입관련으로 김대중 교육감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청이 내년부터 초등학교 5·6학년과 중학교 1학년 평가에서 선다형(객관식) 문항을 없애는 방안을 밀어붙인다. 정답을 고르는 시험에서 벗어나 학생이 생각한 과정과 근거를 글로 설명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김대중 교육감은 미래 인재를 키우려면 서·논술형 전환이 필요하다며 사교육 대책과 교사 지원책을 함께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채점의 공정성과 업무 증가, 민원과 사교육 확산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국가 차원의 대입제도도 정해지지 않아 정책의 성패는 속도보다 교실의 준비와 신뢰 확보에 달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다형 문항 ‘제로’ 추진

김 교육감이 밝힌 일정은 초등학교 5·6학년은 내년 3월부터, 중학교 1학년은 자유학기제를 마친 내년 2학기부터다. 대상 학년의 전 과목 평가에서 선다형 문항을 없애고 서술형과 논술형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제도가 안정되고 정부의 대입 개편 방향과 맞물리면 오는 2032년까지 초·중·고 전체 학년으로 넓히는 방안도 제시했다.

다만 ‘100% 서·논술형’이 모든 답안을 긴 글로 쓰게 한다는 뜻은 아니다. 준비위원회는 정답 고르기식 문항을 없애는 ‘선다형 제로’라고 설명했다. 토론과 발표, 프로젝트 등 기존 과정 중심 수행평가는 유지한다. 교육청 구상은 수행평가 30%, 정기시험 70%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현재 학교 평가에도 서술형 문항이 20∼30%가량 포함돼 있어 완전히 새로운 형식은 아니다. 차이는 일부 문항에 머물던 방식을 전 과목으로 넓히고 선택형 문제를 없앤다는 데 있다.

학년과 과목의 큰 방향은 나왔지만 모든 학교에 한꺼번에 적용할지, 일부 지역과 학교에서 먼저 시행할지는 최종안에서 분명히 해야 한다. 초등학교는 담임교사가 여러 과목을 맡고 중학교는 과목별 교사가 평가를 설계한다. 도시의 큰 학교와 농어촌 소규모 학교의 여건도 달라 학교급과 규모에 맞춘 기준이 필요하다.

수업 바꾸고 채점 부담 낮춰야

정책의 목표는 암기한 지식을 빨리 찾는 능력보다 문제를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힘을 기르는 데 있다. 평가가 달라지면 교실도 설명과 토론, 질문 중심으로 바뀔 수 있다는 판단이다. 김 교육감은 수업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가만 바뀌면 사교육 시장이 먼저 움직일 수 있다며 교육과정 자율권 확대와 수업 혁신을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교사와 교육공동체의 동의 없이는 할 수 없다”고 한 만큼 교사가 수업과 평가를 설계할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 우선이다.

지원 장치로는 가칭 교육과정개발평가원 신설이 제시됐다. 교육청은 오는 9월 설립추진단을 꾸리고 내년 3월 개원을 목표로 문항과 예시 답안, 채점 기준표를 개발할 계획이다. 손글씨 답안을 디지털화하고 인공지능이 채점과 피드백을 돕는 체계도 검토한다. 최종 평가는 교사가 맡는다. 학교와 교육지원청, 평가원이 이의신청과 민원을 단계별로 처리해 교사가 채점 분쟁을 혼자 떠안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내놨다.

평가원 설립만으로 부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과목별 성취기준에 맞는 문항은행과 채점 예시를 충분히 쌓고, 여러 교사가 같은 답안을 함께 채점해 기준을 맞추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의가 제기됐을 때 누가 어떤 절차로 다시 살필지도 미리 공개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답안을 분류하고 피드백을 돕는 보조 수단에 머물러야 한다.

교사 반발, 공정성 논란 넘어야

현장의 반응은 차갑다. 전교조 전남·광주지부가 지난달 3일부터 9일까지 교사 161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97.0%는 충분한 협의 없이 시행 시기부터 정한 절차가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선다형을 없애는 방식에는 91.4%가 우려를 나타냈고, 전면 시행에는 83.1%가 반대했다. 예상되는 문제로는 학부모 민원과 이의신청 증가 84.5%, 채점의 객관성과 신뢰성 논란 79.5%, 출제·채점 업무 증가 73.3%가 꼽혔다.

이 조사는 자발적 참여자를 대상으로 해 지역 전체 교사의 뜻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정책을 실행할 교사들의 불신이 크다는 경고로는 충분하다. 같은 답안에 교사마다 다른 점수를 주지 않도록 구체적인 채점 기준과 공동 채점 절차를 마련하고, 학급 규모와 과목별 특성을 반영해 업무를 줄여야 한다.

사교육 대책도 말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글쓰기와 논술 훈련을 학원에서 먼저 받은 학생이 유리하다는 인식이 퍼지면 가정 형편에 따른 격차가 커질 수 있다. 교육청은 학교 안에서 읽기와 쓰기, 첨삭과 다시 쓰기 시간을 보장하고 기초 문해력이 부족한 학생을 따로 지원해야 한다. 시행 전후 학원 수강과 사교육비 변화를 조사해 공개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대입 방향은 아직 미확정

김 교육감은 국가교육위원회가 서·논술형을 크게 늘리는 대입 방향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확정된 정책은 아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지난 3일 대학입학제도 특별위원회에서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을 뿐 정해진 사안은 없다고 밝혔다. 특별위원회 논의가 끝난 뒤 교육현장과 국민 의견을 수렴해 국가교육발전계획에 담겠다는 단계다. 전남광주의 정책을 국가 대입 개편의 확정된 흐름처럼 설명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서울과 경기도는 이미 서·논술형 확대와 인공지능 채점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은 올해 관련 실천학교를 120곳으로 늘렸고, 경기는 중학교 지필평가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두 지역은 단계적 확대에 무게를 둬 특정 학년의 선다형을 곧바로 없애려는 전남광주와 속도와 강도가 다르다.

앞서가는 정책이 교육 혁신으로 남으려면 시범 운영 결과와 채점 오차, 교사 업무시간, 사교육비 변화를 공개하고 문제가 확인되면 일정과 범위를 조정해야 한다. 평가 방식의 변화는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교사가 납득하고 학생과 학부모가 결과를 믿을 때 비로소 교실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서은선 기자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