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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이 숨은 천년고찰 천은사
천은사의 옛 이름은 감로사였다. 사적기에는 신라 흥덕왕 3년인 지난 828년 덕운선사가 절을 세웠다고 전한다. 경내에 이슬처럼 맑은 샘이 솟아 ‘감로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려 충렬왕 때에는 ‘남방제일선원’으로 불릴 만큼 이름난 수행처로 명성을 얻었다. 이후 임진왜란과 화재 등을 겪으며 여러 차례 중창을 거쳤고, 조선 숙종 5년인 지난 1679년 다시 절을 세우는 과정에서 이름도 천은사로 바뀌었다. 샘물이 자취를 감춘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사라진 샘을 둘러싸고 천은사에는 오래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중창 당시 샘가에 나타나던 큰 구렁이를 잡은 뒤부터 물이 더 이상 솟지 않았고, 그 무렵부터 절에 화재가 잦아졌다고 전한다. 이후 조선 후기의 명필 원교 이광사가 물이 흐르듯 유려한 글씨로 ‘지리산천은사’를 써 일주문에 걸었고, 그 뒤 불이 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이어진다. 지금도 일주문에 걸린 이 현판은 천은사를 찾는 이들에게 오래된 전설을 가장 먼저 들려준다. 샘과 구렁이, 화재와 명필의 글씨가 겹쳐진 이야기는 천은사의 천년 풍경에 또 하나의 깊이를 더한다.
지리산의 고요에 스민 재즈
천은사가 재즈를 선택한 배경에는 지리산이 품은 고요와 평안이 있다. 지난 2024년 처음 열린 지리산재즈페스티벌에서 대진스님은 “지리산에 살면서 느끼는 것은 마음의 평안”이라며 “지리산에 잘 어울리는 휴식 같은 음악인 재즈 선율이 오래도록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리산이 건네는 쉼과 재즈의 여유로운 선율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바람이 담겼다. 그해 공연의 주제도 ‘Solitude-고독’으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돌아보는 의미를 담았다. 자유로운 즉흥을 바탕으로 한 재즈는 지리산의 고요한 자연과 산사가 지닌 사색의 분위기 속에서 또 다른 울림을 만들어냈다.
이후 재즈 무대는 계절을 달리하며 천은사에서 이어지고 있다. 봄에는 짙은 신록이 무대를 감싸고, 초가을에는 지리산의 바람과 계곡 물소리가 재즈 선율과 어우러진다. 같은 음악도 계절과 시간, 주변 풍경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 산사 공연의 매력이다. 올해는 여기에 ‘머무름’의 의미까지 더했다. 공연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산사에 머물며 숲과 물길을 걷고, 공예를 만나는 시간까지 함께 마련했다. 음악과 자연, 산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나로 이어지며 천은사만의 재즈 풍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산사를 채우는 이틀의 선율
첫날인 다음달 4일 오후 6시 30분 수변무대에서는 구례 기독중창단 커뮨이 축제의 문을 연다. 불교 사찰에서 기독교 중창단의 화음이 울려 퍼지는 무대는 종교의 경계를 넘어 음악으로 서로를 잇는 특별한 장면을 만든다. 이어 박상아 Jazz Cats가 따뜻한 선율과 즉흥 연주를 들려주고, 신경숙 Smooth Jazz Band가 친숙한 멜로디를 세련된 재즈로 풀어내며 첫날 밤을 채운다.
둘째 날인 5일에는 낮부터 음악이 이어진다. 오후 1시 NS Jazz Band가 절제된 연주로 정통 재즈의 깊이를 전하고, DONKEY’S Project는 탭댄스의 발구름을 하나의 타악기처럼 활용한 무대로 색다른 리듬을 선사한다. 저녁 7시에는 야외무대에서 축제의 마지막 공연이 이어진다. SM Jazz Trio가 익숙한 K-POP 선율을 재즈의 언어로 새롭게 풀어내고, ‘스캣의 여왕’으로 불리는 말로 밴드가 자유로운 보컬과 즉흥 연주로 이틀간의 무대를 마무리한다.
지난봄에도 천은사에는 재즈 선율이 울려 퍼졌다. 지난 5월 29일에는 세계적인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이 쿼텟과 함께 봄 무대를 펼쳤다. 초록이 짙어가던 산사를 재즈 선율로 채운 데 이어 이번에는 초가을 지리산의 바람과 물소리 위로 또 다른 음악이 흐른다. 계절을 달리해 이어지는 공연은 천은사가 법회와 수행의 공간을 넘어, 오래된 산사의 고요와 자연을 음악과 예술로 새롭게 만나는 장소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산사의 고요에 머무는 예술
재즈가 멈춘 뒤에도 천은사에서의 시간은 이어진다. 다음달 4일부터 6일까지는 9명의 공예작가가 참여하는 ‘Temple Craft Retreat’가 함께 열린다. 사찰에 머물며 공예를 만나고, 숲과 물길을 걷고, 재즈를 듣는 1박 2일 체류형 프로그램이다. 음악과 공예, 자연을 따로 떼어놓지 않고 천은사라는 한 공간에서 천천히 경험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공연장을 찾았다가 돌아가는 축제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산사의 하루와 밤까지 머물러 보는 시간이다.
공연과 공예, 산사에서의 머무름을 하나로 잇는 이번 축제의 중심에는 ‘고요’가 있다. 소리를 더하기보다 천은사가 본래 품고 있던 자연과 침묵 속에서 음악을 만나게 하겠다는 뜻이다. 대진스님은 “소리가 있어 음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침묵이 있기에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리산에서 내려온 바람과 계곡의 물소리, 오래된 전각 사이에 머문 고요 위로 재즈가 흐른다. 천년고찰이 품어온 시간과 오늘의 예술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순간이다. 올가을 천은사에서 재즈는 무대 위의 연주에만 머물지 않는다. 산과 물, 전각과 사람 사이로 번지며 오래된 산사의 풍경에 새로운 기억 한 장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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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영 기자 hoahn0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