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과 타오르는 강'을 주제로 문학 강연을 하고있는 문순태 작가의 모습

Q1.처음 글쓰기와 인연을 맺으신 계기와 그 순간이 작가님의 인생에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그리고 작가 길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광주고등학교 2학년 때 국어교사였던 수필가 송규호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글을 써서 제출하라는 숙제를 내셨습니다. 그 때 <자취생의 변>이라는 글을 써냈지요. 송선생님께서는 리얼하게 잘 썼다면서 문예부에 들어가라고 하셨어요. 문예부에 들어가 보니 이성부가 있더라고요. 이성부와 함께 김현승 시인을 찾아뵙고 시를 배웠어요. 이를 계기로 문학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광고에 입학했을 때까지만해도 법관이 되어서 6.25 때문에 풍비박산이 된 집안을 일으켜달라는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려고 했으나, 세속적인 출세와 거리가 먼 문학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문학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고 싶었어요. 65년 <현대문학>에 시를 추천받아 시인으로 데뷔했지요. 그러나 72년 엄혹했던 유신시대가 시작되자, 신문기사를 제대로 쓸 수가 없었어요. 신문기사로 진실을 고발할 수 없을 바에야 소설로 모순된 사회현실을 고발하기로 하고 작가의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서울로 김동리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소설 공부를 했고 74년<한국문학>신인상에 당선되어 작가가 되었어요.

Q2.한국소설문학작품상, 문학세계작가상, 이상문학상 특별상, 요산문학상, 채만식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등굵직한 상을 수상하셨습니다. 특히 작가님의 작품 세계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던 수상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2024년에 스승의 이름으로 된 ‘김현승시문학상’을 받고 감회가 깊었어요. 소설가가 시인상을 받는다는 게 부담스럽기는 했습니다만, 하늘에 계시는 스승님께서 소설도 좋지만 이제는 시를 쓰라는 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작년에 저는 <타오르는 영산강>이라는 네 번째 시집을 내기도 했지요. 스승님의 명을 따라 앞으로는 시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Q3.작품들에서 남도와 농촌에 대한 부분에서 많은 영감을 얻으시는것같은데요. 작가님이 작품을 집필할 때 어린시절 담양에서의 경험과 호남에서의 삶이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평론가들이 제 작품세계를 한마디로 전라도적 정서와 역사적 아픔을 잘 드러내는 “고향과 恨의 작가”라고들 합니다. 저는 초기에 <징소리>연작을 통해서 산업사회로 인해 고향상실과 한의 문제를 다루었고, <철쭉제>나 <41년생 소년>을 통해서는 남북분단과 이념의 화해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 (전9권)에서는 영산강 공간을 통해 노비들의 고통스런 삶을 다루면서 “민중의 한과 그 해한”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전라도를 떠난 적이 없어요. 소설가에게 소설 공간은 아주 중요하지요.저는 지금까지 제가 잘 아는 전라도를 주요 소설 공간으로 선택해왔어요. 전라도는 오랫동안 소외와 핍박을 받아온 땅이지요. 저는 이 땅에서 소외당하고 고통을 받고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 진혼곡을 불러주고 싶답니다.


Q4.현재 타오르는 강 문학관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화에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계시는데요, 그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이나, 후학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글쓰기의 가치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담양군 가사문학면 구산리에서 태어난 저는 지금까지 무등을 바라보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2024년에 나주시에서 영산강을 배경으로 쓴 저의 졸작 <타오르는 강>의 소설공간인 나주시 영산포에 문학관을 세워주었습니다. 나주의 많은 독자들이 <타오르는 강>을 읽고 나니 영산강이 새롭게 보인다고 말했어요. 제 작품 속에 이 지역의 역사 문화 컨텐츠가 많이 담겨져 있다고들 했습니다. 지금 문학관에서는 <타오르는 강>읽기, <타오르는 강 관광 아카데미><문순태작가와 함께하는 소설창작교실>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나주에 있으면서 한과 희망이 함께 흐르는 영산강의 가치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혀두고 싶어요. 영산강 르네쌍스 시대를 여는데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글쓰기의 가치라...글쎄요,군사독재 시절에 저는 문학은 잘못된 모순을 과감히 잘라내는 ‘역사의 칼’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구도의 길 찾기’ 라고 생각하지요. 문학을 통해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역할이랄까....결국 문학 특히 소설은 인식과 깨달음을 통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Q5.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새로운 작품 주제, 또는 글쓰기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개인적·지역적 목표가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작가는 글을 쓸 때만이 살아 있는 존재지요. 저는 올해 우리 나이로 87세입니다. 이 나이에 무엇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죽는 날까지 쓰는 것을 멈추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지요. 작년부터 시와 에세이와 소설 형식이 함께 섞이는 소위 장르파괴 자전적 장편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80여년 제 삶을 반추하고 정리하는 내용이지요. 목표라기 보다는 정신이 살아 있는 그날까지 오직 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