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이사장

어린 시절 대통령이 꿈이었다는 사람. 그는 꿈을 이뤘다. 꿈꾸면 이뤄지는 직업이 있다. 바로 배우! 연극인 김진호를 만나러 나주로 향한다. 나주천 바로 옆, 햇볕 잘 드는 곳에 자리한 예인방은 기와지붕에 황토벽까지 마치 고향집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연극인들에게, 또 나주사람들에게 예인방은 그런 곳이다. 늘 그 자리에 있는 곳, 언제든 찾아와도 되는 공간, 어머니가 항상 계실 것 같은 고향집 같은 곳이다.

전문예술극단 예인방에 대해 소개를 한다면?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간이라는 의미입니다. 1981년 1월 나주에서 처음 창단한 극단입니다. 처음에 예인방이란 이름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41년 동안 해오고 있습니다. 창단공연 <시집가는 날>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한해도 작품을 걸러보지 않고 창작극 레퍼토리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무대에 올리고 있습니다.

연극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1981년 제가 19살 때였습니다. 벌써 40년이 넘었습니다. 그때는 연극적 철학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지만, 잘나 보이고 싶어서였습니다. 열정과 패기 넘치던 시절의 선택이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어릴 적에는 대통령이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왕도 해보고 조정 대신, 국회의장, 장군, 변호사, 다양한 역할로 살아 보면서 연극인의 꿈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연극인으로 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창단 40주년 특별기획공연

코로나19로 공연할 기회가 줄었는데…

예인방을 만들고 지금까지 41년 동안 한해도 작품은 걸러 보지 않았습니다. 코로나로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가 필요한 시대라 오히려 연극무대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엄마의 희생과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연극 <김치>는 작년에도 무대에 올렸습니다. 또 작년에는 MBC 미니시리즈 ‘미치지 않고서야’에서 배정탁 상무역으로 출연했습니다. 학교 밖 아이들에게 연극을 경험하게 하는 멘토링 연극학교도 집중하고 있는 일 중 하나입니다. 연극의 장점은 함께하는 것, 남의 인생을 살아보는 것, 독서를 통해 자기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자신이 꿈꾸는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과 멘토로 연결해주는 일도 함께 하며 학교 밖 아이들에게 꿈을 갖게 하고 꿈을 이루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아내와의 공연작품인 <콜렉터>를 비롯해서 <피고지고 피고지고> 등 많습니다. 모든 작품이 다 기억에 남습니다. 그중 <김치>는 2013년 5월 지역극단으로는 보기 드물게 서울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 무대에 올렸습니다. 엿새간의 대장정에 연일 600여 객석 매진이라는 진기록을 낳았습니다. 또 <엄마의 강>은 제8회 대한민국 연극대상 작품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연극협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연극대상은 1년간 국내에서 공연한 작품 중 치열한 경합을 거쳐 선정됩니다. 지역극단 최초라는 점에서 많은 의미를 안겨줬었습니다.

사단법인 전문예술극단 예인방

나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많다. 대본도 직접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주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계속 나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릴 적 나주역 앞에 살았었는데, 대나무가 많아서 동네 이름도 죽림동이었습니다. 추억이 참 많습니다. 연극 <김치>는 나주역을 연극 <엄마의 강>은 영산포 홍어 선창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곳, 내가 살던 곳이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며 김치 소재로 연극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김치>라는 작품을 만들었고 <울엄니>는 흔히 봤던 어려운 삶을 살았던 우리 주변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술 먹고 아내를 때리는 난봉꾼, 제비로 불렸던 댄스선생님까지 인물들을 구상했습니다. 극단 초기에는 외부 작품을 많이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보니 왠지 텅 빈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지역정서가 스민 콘텐츠, 나만이 콘텐츠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극단만의 레퍼토리를 만들자는 출발점이었었습니다. 또 ‘레퍼토리를 산업과 연결시킬 경우 부가가치도 창출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활동하기에는 나주보다는 서울이 더 좋았을 텐데…

전혀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습니다. 제가 1년에 10만 km를 운전합니다.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에 있든 꿈을 키울 수 있습니다. 과거보다 모든 분야에서 더 발전한 지금은 지역에 국한되지 않아도 되는 시대입니다. 즉, 지역에서도 꿈을 꿀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다는 의미입니다. 지금은 Local(로컬)과 Global(글로벌)을 따로 떼놓고 말하기는 어려운 세상이 됐습니다. 글로벌시대를 넘어 지역의 가치가 강조되는 ‘글로컬(Glocal)’시대를 추구합니다. 좋은 작품이 있을 뿐이지 지역과 서울의 차이는 없습니다. 예술에 지역을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시골에서 연극하기가 쉽지 않지만 꾸준히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큰 힘이 됩니다. 지위나 돈이 아닌 늘 응원해주는 이웃들, 보통사람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나주에 연극을 이어올 수 있었죠.

배우(연극인)와 경영은 다를 것 같은데…

하나의 극단을 이끌고 경영한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일 년 내내 연극무대를 꾸리려면 작품을 선택하고 배우(연극인)들의 일상도 관리하고 예산도 신경 써야 하고, 극단 살림은 늘 적자입니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 출연을 하고 제 출연료로 메꾸는 일도 많습니다.

인터뷰 중인 김진호 이사장

인생의 가장 큰 후원자는?

어머니입니다. 제가 처음 연극을 시작할 당시 그때 시대적 분위기는 아들이 연극을 하겠다면 보통은 남부끄럽다는 반응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니는 묵묵히 지켜보고 응원해주셨습니다. 관객석 맨 뒤에서 지켜보시다 연극이 끝나면 단원들의 밥을 해주셨습니다. 아들을 믿어준 어머니가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동료 배우이자 아내인 임은희와 가족들이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연극을 하는데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면…

모든 연극은 나주에서 먼저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 연습 과정은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원칙입니다.

앞으로의 그리고 싶은 미래는?

연극 전용극장이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나주에 연극 전용극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작품을 다양한 채널로 만날 수 있는 시대가 되어야 합니다. 연극 작품을 영화로 책으로 애니메이션으로 라디오로 들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연극을 보려면 나주로 와라~’ 이런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연극전용 극장에서 매일 종이 울리면 ‘아 연극이 시작되는구나’ 느낄 수 있고, 예인방의 레퍼토리 작품들이 1년 365일 공연되는 것. 이것이 저의 꿈이자 제가 그리는 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