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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의 딸’, 주홍글씨를 문학으로 승화시키다
정지아 작가를 이야기할 때 ‘빨치산의 딸’이라는 수식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그의 정체성이자 문학적 자산이다. 그의 부모는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과 백운산 일대에서 활동했던 빨치산, 정운창과 이옥남이다. 험난한 산 생활 끝에 세상으로 나온 부모 밑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 시절부터 ‘빨갱이 딸’이라는 사회적 낙인과 감시 속에서 성장해야 했다.
이 특별한 가족사는 1990년, 그의 등단작인 소설 「빨치산의 딸」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자신의 유년기를 담담하게 그려낸 이 소설은 당시 문단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이념 대립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시절, 빨치산의 삶을 인간적으로 조명했다는 이유로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는 등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꼬리표는 작가로서의 명예인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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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시간을 관통한 끈질긴 글쓰기
첫 작품이 남긴 강렬한 인상과 사회적 파장 이후, 정지아 작가는 한동안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진 듯 보였다. 그러나 그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소설집 『행복』, 『봄빛』 등을 꾸준히 펴내며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해 나갔다. 이 시기 그의 작품들은 이념이라는 거대 담론에서 한 걸음 물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 깃든 욕망과 슬픔, 관계의 아이러니를 날카롭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했다.
그의 문장은 간결하고 힘이 넘치며, 특히 인물 간의 대화는 마치 눈앞에서 연극을 보는 듯 생생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그가 오랜 시간 동안 인간과 삶을 얼마나 집요하게 관찰하고 탐구해왔는지를 증명하는 대목이다. 32년이라는 세월은 그저 흘러간 시간이 아니라, 그의 문학이 더욱 깊고 넓어지는 숙성의 과정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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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웃음과 눈물로 이뤄낸 화해와 해방
그리고 2022년, 그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통해 화려하게 귀환했다. 이 소설은 1990년의 「빨치산의 딸」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한층 성숙해진 작가의 시선을 보여준다. 과거의 작품이 딸의 시점에서 겪는 아픔과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면,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비로소 그의 삶을 찾아 나서는 ‘화해의 여정’이다.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이념의 잣대로 한 인간을 재단하는 대신, ‘사람’ 그 자체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찾는 조문객들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 아부지’의 모습은 지독한 구두쇠이자 이웃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따뜻한 사람이다. 작가는 이 과정을 특유의 해학적인 문체와 전라도 말의 맛을 살려 유쾌하게 그려낸다. 독자들은 폭소를 터뜨리다가도 어느새 코끝이 찡해지는 경험을 하며, 이념이 사람 위에 군림했던 시대의 비극을 넘어선 보편적인 부녀의 정과 인간애를 발견하게 된다.
결국 소설이 말하는 ‘해방’은 단순히 이념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다. 그것은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 딸의 해방이며, ‘빨갱이’라는 낙인에 갇혀 있던 아버지의 영혼을 위한 해방이고, 나아가 편견과 미움으로 서로를 밀어냈던 우리 모두를 위한 해방일지다.
정지아 작가는 자신의 가장 아픈 가족사를 문학의 제단에 바쳐,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이해와 화해’의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역사의 비극을 개인의 운명으로 감내해야 했던 한 인간이 어떻게 문학을 통해 그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키고, 마침내 시대를 보듬는 거대한 이야기로 확장시킬 수 있는지를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그의 펜 끝에서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피어날지, 한국 문학계가 그를 주목하는 이유다.
강주성 기자 hoahn0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