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래 곡성군수가 이재명 대통령(당시 민주당대표)와 장세일 영광군수가 당시 군수후보 선거 유세를 하던모습

조상래 곡성군수의 핵심 공약이었던 '전 군민 50만 원 기본소득'이 선거 구호를 넘어 현실의 문턱에 섰다. 전라남도와 발맞춘 시범사업의 틀이 짜이고 군 차원의 조례 제정까지 속도를 내면서,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 공동체를 위한 담대한 실험이 본격적인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하지만 연간 80억 원이 넘는 막대한 군비 부담과 중앙정부의 최종 승인이라는 두 개의 높은 산을 넘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이 실험이 단순한 현금 복지를 넘어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 그 성공 여부에 모두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선거 공약, 현실의 문을 두드리다
모든 시작은 ‘약속’이었다. 조상래 군수는 2024년 10월 재보궐선거 당시 “매년 50만 원 군민 기본소득 지급”을 대표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선 이후에도 이 약속은 여러 차례 재확인되었고, 군정의 최우선 과제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지역의 의지에 중앙 정치권의 지원 약속이 더해지며 추진력은 한층 강화되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2024년 9월 곡성을 직접 방문해 “액수가 적더라도 할 수 있음을 보여주자”며 곡성과 영광을 주민 기본소득 시범 도입 지역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역의 필요와 정치적 지원이 맞물리면서, 막연하게만 들렸던 기본소득 구상은 구체적인 정책으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전남형 기본소득,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리다
곡성군 기본소득의 법적, 재정적 근거는 ‘전남형 기본소득’이라는 더 큰 틀에서 마련되었다. 2025년 3월, 전남도의회는 ‘전라남도 기본소득 기본 조례안’을 의결하며 제도 추진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조례는 시범지역 주민 1인당 연 50만 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고, 관련 정책을 심의할 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핵심 내용을 담았다.

가장 중요한 재원 분담 계획도 구체화되었다. 전남도와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곡성·영광군이 사업비를 4:6 비율로 분담하는 원칙이 세워졌다. 곡성군 인구 약 2만 7천 명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연간 총사업비는 약 135억 원에 달하며, 이 중 곡성군이 부담해야 할 몫은 약 81억 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전남도의 지원이 더해져 재정적 현실성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곡성군 역시 자체적으로 ‘곡성군 기본소득 지급 조례안’을 입법예고하며 군 차원의 법적 기반을 다지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81억 군비와 ‘복지부 협의’라는 두 개의 산
청사진은 나왔지만, 현실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다. 가장 큰 과제는 역시 재원 확보다. 곡성군이 매년 81억 원의 군비를 안정적으로 마련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다. 물론 곡성군은 2025년 상반기, 54억 원의 추경 예산을 편성해 전 군민에게 20만 원씩 ‘민생활력지원금’을 지급한 경험이 있다. 이는 수십억 원 규모의 재원을 동원할 수 있는 행정적 역량을 보여준 사례지만, 일회성 지원과 매년 지속해야 하는 기본소득은 무게감이 다르다. 군의회 예산 심의 과정과 군 전체 재정 여력을 고려한 치밀한 계획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또 다른 관문은 보건복지부와의 ‘사회보장제도 신설 협의’ 절차다. 지방자치단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새로 만들거나 변경할 때는 반드시 중앙정부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 현재 전남도는 곡성·영광 기본소득 안건을 두고 복지부와 협의를 진행 중이며, 복지부의 자료 보완 요구 등으로 당초 계획보다는 일정이 다소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남도와 곡성군은 여전히 ‘연내 첫 지급’을 목표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 중앙정부와의 협의 결과가 사업 성사의 마지막 열쇠가 될 전망이다.

첫 삽을 뜬 곡성, 소멸 위기 극복의 모델 될까
곡성의 기본소득 실험은 함께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영광군의 모델과 비교해 볼 때 그 성격이 더욱 분명해진다. 영광군은 해상풍력 등 에너지 공유부를 기반으로 2030년 연 133만 원으로 시작해 장기적으로 지급액을 늘려가는 ‘광풍 연금’ 모델을 구상 중이다. 반면 곡성의 모델은 현재의 조세 재원을 기반으로 즉시 실행 가능한 보편적 현금 지원에 가깝다.

지급 수단으로는 지역화폐인 ‘곡성심청상품권’이 유력하다. 이는 지급된 기본소득이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으로 유출되지 않고, 지역 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직접적인 혜택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지역 경제 선순환을 유도하려는 목적이다. 이미 카드, 모바일, 지류 형태로 운영 중인 인프라를 활용해 안정적인 지급이 가능하다.

조상래 군수의 약속에서 시작된 곡성의 기본소득은 이제 군민의 삶과 지역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현실 정책으로 구체화되었다. 재정 부담과 행정 절차라는 험난한 과제가 남아있지만, 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소멸의 위기 앞에서 더 이상 기존의 방식만 고수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이 담대한 실험을 추동하고 있다. 곡성의 첫 삽이 단순한 복지 확대를 넘어, 지역 공동체를 살리는 지속가능한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조상래 곡성군수가 본인의 선거공약을 지켜 메니페스토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