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기로에선 지방기초의회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시계가 조용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총선 이후 숨을 고르는 분위기지만, 물밑에서는 다음 전장을 규율할 ‘지방의회 선거제도 개혁’이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지금 우리 동네 정치가 주민의 다양한 뜻을 제대로 담아내는가라는 질문이 국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다양성 확보를 위한 제안, 중대선거구제
현실은 양당 중심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지방 정치를 이끌고 있으며, 2022년 지방선거는 이를 분명히 보여줬다. 당시 진보·소수정당은 19%의 정당 득표율을 얻었지만 광역의회 의석은 전무했고, 기초의회에서도 3%에 그쳤다. 당선자의 93.6%를 양당이 차지했다. 일부 지역에선 후보자 1명만 나서거나 정당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지는 ‘무투표 당선’이 300곳을 넘기도 했다. 유권자의 표심은 여러 갈래인데 결과는 거대 정당으로 쏠리는 구조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활력을 갉아먹는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의회 구성이 획일화되면 정책도 단조로워질 수 있다. 광역의회 여성 의원 비율은 약 20%에 머물고, 40세 미만 청년 정치인은 2.8%에 불과하다. 지역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과 미래를 책임질 청년의 고민이 의사 결정에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다.

이 문제의식 위에서 조국혁신당 정춘생 의원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핵심은 명료하다. 대부분 12인을 뽑는 기초·광역의회 선거구를 최소 3인, 최대 5인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로 바꾸고, 정당 득표율과 의석의 불비례를 줄이기 위해 비례대표 의석을 현행 10%에서 최소 20%로 늘리자는 것이다. 조국혁신당·진보당 등 야3당과 941개 시민단체가 연대한 ‘정치개혁공동행동’은 이 안이 소수정당·여성·청년의 진입 문턱을 낮춰 지방 정치의 다양성을 회복할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1등만 살아남는 소선거구제와 달리 35등까지 당선될 수 있는 구조는 신인과 소수정당에게 기회를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다.

효율과 책임 vs 정치적 불안정
이 제안은 ‘지역소멸’ 대응과도 맞닿아 있다.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의원은 인구 감소 지역일수록 청년·여성·귀농·귀촌인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대선거구제와 비례 확대가 복합적 대표 구조를 만들어 소멸 위기 대응력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 명이 지역 전체를 대표하기보다 여러 명이 각기 다른 세대·계층·가치를 대변해 더 촘촘한 정책을 만들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개혁엔 반론이 따른다. 한 선거구에서 여러 의원을 뽑으면 책임 소재가 흐려지고, 지역 현안에 대해 서로 책임을 미루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거대 양당은 군소정당 난립으로 의회 운영이 비효율화되고, 이견 조율이 길어져 시급한 현안 처리가 지연될 수 있다고 본다. 투표용지가 복잡해져 유권자가 혼란을 겪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러한 우려는 양당제가 가진 장점과 연결된다. 양당제는 책임소재가 명확하고 의사결정이 빠르며 중앙정부와의 정책 조율이 용이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극단적 이념 세력의 의회 진입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는 긍정도 있다. 우리 사회가 익숙해진 ‘안정성’의 근간이라는 점에서 변화의 비용을 따지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딜레마에 빠진 거대 양당, 현실의 벽
정치권의 셈법은 복잡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청년·비례대표를 중심으로 중대선거구제 전면 도입과 비례 확대에 우호적 기류가 있다. 수도권과 도시 지역에서 다당제 구도가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신중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중대선거구제 검토’ 발언 이후 도시는 중대선거구, 농촌은 현행 유지라는 ‘도농복합형’ 절충안을 검토하지만, 당내 농어촌 지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지역 대표성 약화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정치적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현실적 우려가 작동한다.

적용까지는 시간과 절차의 벽이 있다. 2026년 지방선거에 반영하려면 올해 안에 법안이 통과되고 내년 3월까지 선거구 획정을 마쳐야 한다. 8월부터 국회 정치개혁특위와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병합심사가 본격화되지만, 비례 의석 비율과 농촌 지역구 문제 등 난제가 곳곳에 놓여 있다.

결국 논의는 ‘익숙한 안정’과 ‘새로운 다양성’ 사이의 선택으로 귀결된다. 검증된 거대 정당에 힘을 실어 효율과 책임을 중시할 것인가, 다소의 혼란과 비효율을 감수하더라도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여 더 많은 목소리를 의회로 들일 것인가. 정답은 없다. 시대정신과 국민적 공감대에 따라 신중히 선택해야 할 문제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지방의회가 주민들의 다양한 삶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비판과 마주해 있다는 사실이다. 생활 정치를 구현할 최적의 제도가 무엇인지, 이제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