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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치 않는 옥좌’, 지난 5년간의 금고 지정 현황
지난 5년간, 아니 사실상 그 이전부터 보성군 금고의 주인은 변하지 않았다. NH농협은행 보성군지부가 제1금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농업이 중심인 지역 특성상 농협의 광범위한 지점망과 지역 밀착성은 분명한 강점이다. 이로 인해 특별한 경쟁 없이 ‘당연한 결과’로 여겨져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기 집권은 ‘경쟁 부재’라는 그림자를 낳는다. 금융기관 간의 건전한 경쟁은 군에 더 유리한 예금금리를 제공하고, 주민들에게 더 나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며, 지역사회를 위한 더 많은 기여를 끌어내는 원동력이다. ‘어차피 이번에도 농협’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진다면, 금고 은행은 수익 극대화를 위해 군과 주민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소홀히 할 유인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득권’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한 군민의 목소리: 보성읍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김 모 씨(58)는 “세금 내러 갈 때나 농사 자금 빌릴 때 농협이 편한 건 맞다”라면서도 “하지만 수십 년째 한 곳만 하니 우리 돈을 맡아주면서 얼마나 큰 이익을 보는지는 생각도 안 해봤다. 다른 은행과 경쟁이라도 붙으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조건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깜깜이 이자율’, 군민의 이익은 어디로 증발했나?
최근 5년간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역사적인 변화를 겪었다. 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5월 0.50%까지 떨어졌던 기준금리는, 가파른 물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2023년 1월 3.50%까자 치솟았다. 시중은행의 예·적금 금리 역시 덩달아 춤을 췄다.
그렇다면 이 기간, 수천억 원에 달하는 우리 보성군의 예금은 과연 얼마의 이자를 받았을까? 안타깝게도 군민들은 정확한 정보를 알 길이 없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영업 기밀’이라는 은행의 논리 뒤에 숨어 구체적인 약정 금리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적인 통계를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작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 3곳 중 1곳이 기준금리보다도 낮은 이자로 은행 금고에 돈을 맡겨둔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지자체의 금고 이자율은 0%대에 불과해, 사실상 ‘세금 방치’라는 비판을 받았다.
만약 보성군 역시 낮은 변동금리 약정으로 묶여 있었다면, 고금리 시기에 벌어들일 수 있었던 막대한 이자수익, 즉 군민을 위해 쓰였어야 할 ‘기회비용’이 공중으로 사라진 셈이다. 이 돈이면 우리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복지 시설을 확충하고,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늘리며, 청년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소중한 재원이 될 수 있었다. 금고 수익의 극대화는 곧 군민 복리의 극대화와 직결되는 문제다.
금고 은행의 ‘황금알’, 주민이 받은 혜택은?
금고 은행에 지자체 금고 유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된다. 수천억 원의 공공 자금을 거의 제로에 가까운 비용으로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은 이 막대한 자금을 기반으로 대출 영업을 통해 안정적인 예대차익(예대차익: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익) 수익을 올리고, 지자체 공무원 및 산하단체를 대상으로 한 파생 영업으로 고객 기반을 넓힌다.
그렇다면 은행이 막대한 이익을 얻는 동안, 우리 주민들이 체감하는 혜택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지방세 수납 편의성, 관내 다수 지점망을 통한 접근성 향상 등 기본적인 혜택은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금고 은행으로서 당연히 제공해야 할 기본적인 서비스에 가깝다.
실질적인 혜택으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협력사업비’ 명목의 출연금이다. 금고 은행은 장학금 지원, 지역 축제 후원, 불우이웃돕기 성금 기탁 등의 형태로 지역사회에 기여한다. NH농협은행 보성군지부 역시 매년 어려운 이웃을 위한 쌀 기부, 장학금 전달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쳐왔다.
그러나 이 협력사업비의 규모가 은행이 얻는 전체 이익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또한, 그 사용처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군민 전체의 복리 증진에 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일부 행사성, 선심성 사업에 치중되거나, 그 혜택이 특정 단체나 계층에만 돌아간다는 지적도 무시할 수 없다.
지역경제와 상생, 진정한 동반자 관계인가
금고 은행은 지역경제의 혈맥을 돌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특히 농업 중심의 보성군에서 NH농협은행은 농업인 대출, 정책자금 집행 등에서 순기능을 수행해왔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지역 경제의 중요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독점적 지위가 낳는 안일함은 지역경제의 역동성을 저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담보 능력이 부족하지만,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 창업가나 소상공인에게 얼마나 문턱을 낮추고 적극적인 금융 지원에 나섰는가? 고금리 시대에 지역 소상공인들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실질적인 상생 금융 프로그램을 얼마나 운영했는가?
금고 은행은 단순히 군의 돈을 맡아 관리하는 것을 넘어, 지역경제의 성장을 견인하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지역에서 얻은 이익을 지역에 재투자하고, 지역 소상공인, 중소기업과 함께 성장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금고 지정 평가의 중요한 잣대가 되어야 한다.
- 한 청년 농업인의 목소리: 귀농 4년 차인 박 모 씨(35)는 “농업 관련 대출은 농협이 가장 잘 아는 것이 사실이라 자주 이용한다”라면서도 “하지만 스마트팜처럼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려고 할 때, 기존의 담보 위주 관행에서 벗어난 과감한 투자를 받기는 여전히 어렵다. 지역의 미래 먹거리를 키우는 데 금고 은행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보여주기식’인가, 진심 어린 사회공헌인가?
금고 은행의 사회공헌활동은 지역사회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이행하는 중요한 활동이다. NH농협은행은 앞서 언급된 기부 활동 외에도 농촌 일손 돕기, 농산물 꾸러미 나눔 등 농협의 특성을 살린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전개해왔다. 이러한 활동들은 분명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군민의 관점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이러한 사회공헌활동이 금고 유치를 위한 ‘평가용 스펙’에 머무르는 것은 아닌가? 연간 수십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수익에 비견할 때, 현재의 사회공헌 규모는 과연 충분한 수준인가?
진정한 사회공헌은 일회성 기부나 행사 후원을 넘어, 지역사회가 당면한 근본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뤄진다. 청년 인구 유출, 고령화 문제, 교육 및 문화 인프라 부족 등 보성군이 가진 현안에 대해 금고 은행이 얼마나 깊이 고민하고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투자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평가해야 한다.
군민을 위한 금고, ‘투명한 경쟁’과 ‘철저한 검증’이 답이다
다가오는 보성군 금고 지정은 향후 4년간 우리 군의 살림과 지역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중대사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관행에서 벗어나, 군민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선택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보성군과 군의회는 다음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첫째, 금고 약정 이자율을 군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군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금리가 합당한 수준인지 감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평가 과정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객관적인 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평가 항목 중 ‘지역사회 기여 및 협력사업’의 구체성과 실현 가능성을 면밀히 검증해야 한다. ‘협력사업비’의 액수보다는 그 내용이 얼마나 군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셋째, 경쟁 환경을 조성하여 더 많은 금융기관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기존 금고 은행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모든 금융기관이 공정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야 한다.
수천억 원의 주인은 군수도, 공무원도, 은행도 아닌 바로 보성군민이다. 금고 지정이 ‘그들만의 잔치’가 아닌, 군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진정한 살림꾼’을 뽑는 축제가 되기를 3만 5천 군민과 함께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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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주 기자 hoahn0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