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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 은행은 단순히 돈을 보관하는 창구를 넘어, 자치단체의 재정을 기반으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고, 그 이익을 지역사회와 공유하며 상생 발전을 이끌어야 할 중요한 파트너다. 이에 본지는 지난 5년간 화순군의 살림을 도맡아 온 지정 금고의 운영 실태를 군민의 시각에서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지정된 금고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진단해 본다.
부동의 1위, 지난 5년간의 'NH농협은행 시대'
화순군의 금고 지정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 5년, 아니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제1금고의 자리는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NH농협은행 화순군지부가 수의계약에 가까운 형태로 장기간 그 자리를 지켜왔다. 농업이 지역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화순군의 특성상, 농업인 조합원을 기반으로 읍·면 단위까지 촘촘한 금융망을 갖춘 농협은행의 독점적 지위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져 왔다.
화순군의 예산은 2019년 약 6,500억 원 수준에서 2025년 8,203억 원을 넘어서며 가파르게 증가했다. 이 기간 동안 농협은행은 군의 모든 세입금 수납과 세출금 지급, 수백억 원에 달하는 각종 기금과 유휴자금을 도맡아 관리했다. 이는 은행 입장에서 보면, 변동성 없는 대규모 자금을 거의 '제로'에 가까운 비용으로 확보할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다름없었다.
'제로금리'의 역설, 금고 수익은 극대화됐다
최근 5년간의 금리 추이는 금고 은행의 수익 구조를 명확히 보여준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친 2020년부터 2021년 말까지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0.5%라는 사상 최저 수준을 유지했다. 이 시기 화순군이 금고에 예치한 수천억 원의 자금에 대한 이자 수익은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군청이 보통예금 계좌에 넣어두는 일상적인 운영자금은 연 0.1% 내외의 이자만 붙었다. 정기예금에 묶어두는 유휴자금 역시 1% 안팎의 저금리가 적용됐다. 군의 재정 담당자가 아무리 효율적으로 자금을 운용하려 해도, '초저금리'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는 이자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은행의 수익 극대화는 시작된다. 은행은 군으로부터 저비용으로 조달한 이 막대한 자금을 개인 신용대출(5~10%), 주택담보대출(3~6%), 기업대출 등 고금리 상품으로 운용하며 막대한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이)을 거뒀다. 즉, 화순군의 돈은 '최저' 이자로 빌려 와서, 화순군민과 기업에게는 '최고' 이자로 빌려주며 수익을 낸 것이다.
2022년 이후 금리가 급등하는 시기에는 이러한 구조가 더욱 심화됐다. 예금금리 인상 속도보다 대출금리 인상 속도가 훨씬 빨랐기 때문이다. 군민들은 가파르게 오른 대출 이자에 허덕이는 동안, 군의 금고는 역대급 순이익을 경신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군민이 체감한 혜택, '세금 납부 편의' 그 이상은 없었나?
그렇다면 지난 5년간 화순군민들은 지정 금고로부터 어떤 실질적인 혜택을 받았을까?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단연 '접근성과 편의성'이다. 읍·면 단위까지 지점과 ATM이 설치되어 있어 어르신들도 지방세나 공과금을 쉽게 납부할 수 있다는 점은 농협은행의 가장 큰 장점이다. 또한, 인터넷·모바일 뱅킹을 통한 비대면 납부 시스템 역시 잘 갖춰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편의성은 이제 대부분의 시중은행이 제공하는 보편적인 서비스가 되었다. 군민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금고 은행만이 제공할 수 있는 차별화된 혜택이다. 가령, '화순군민 전용 우대금리 상품'이나 '소상공인·청년 창업 특례 대출', '각종 금융 수수료 전면 면제' 등 금고 지정에 따른 이익을 군민에게 직접적으로 되돌려주는 금융 상품이나 서비스는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것이 중론이다.
주민 박 모(54세, 화순읍) 씨는 "농협은행이 우리 군 금고라고 해서 대출받을 때 이자를 1%라도 깎아주거나 예금할 때 이자를 더 쳐주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며 "그냥 가까워서 세금 내러 가는 은행일 뿐, 우리에게 특별한 혜택이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결국 군민들이 체감하는 혜택은 '기본 서비스'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한 셈이다.
금고 지정과 지역경제, '독점'의 그림자
지정 금고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금고 은행은 지역 내 자금의 흐름을 주도하는 '심장'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농협은행은 화순 지역 농업인에 대한 영농자금 대출, 지역 농특산물 유통 지원 등 농업 분야에서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장기간의 독점 체제는 건강한 경쟁을 가로막고 금융 서비스의 질적 정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예를 들어, 광주은행과 같은 지역 기반 은행이나 다른 시중은행이 화순군 금고 유치 경쟁에 뛰어든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들은 금고 유치를 위해 ▲더 높은 예금금리 ▲더 낮은 대출금리 ▲화순군 맞춤형 지역 상생 사업 등을 경쟁적으로 제시할 것이다.
이러한 경쟁은 최종적으로 군의 재정 수입 증대와 군민들에게 돌아가는 금융 혜택 확대로 이어진다. 하지만 현재처럼 '어차피 다음에도 농협'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에서는 금고 은행이 굳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스스로의 이익을 줄일 유인이 없다. 이는 곧 지역경제 전체의 금융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비용', 금고의 사회공헌도는 충분했나?
금고 은행은 지정의 대가로 '지역사회 기여 및 자치단체와의 협력사업비(출연금)'를 제공한다. 이는 금고 지정 평가의 중요한 항목 중 하나다. 농협은행 역시 지난 5년간 장학금 기탁, 불우이웃돕기 성금, 지역 축제(화순 국화향연 등) 후원, 각종 사회공헌활동을 꾸준히 펼쳐왔다.
문제는 그 규모와 투명성이다. 화순군이 금고에 예치한 연평균 자금 규모와 이를 통해 은행이 거둬들인 막대한 수익을 고려할 때, 현재의 사회공헌 규모가 과연 적절한 수준인지 군민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금고 유치를 위해 은행이 지자체에 제공하는 출연금은 사실상 '영업권'을 따내기 위한 비용이다. 이 비용은 결국 대출 이자나 수수료 등의 형태로 금융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따라서 출연금 액수만으로 사회공헌도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출연금의 규모가 얼마인지, 그 돈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에 어떻게 쓰였는지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 효과를 군민들이 체감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사회공헌이라 할 수 있다.
"수천억 원을 굴려서 수백억 원을 벌었으면, 최소한 수십억 원은 지역을 위해 쓰는 것이 상생의 도리 아니겠는가"라는 한 소상공인의 쓴소리는 많은 군민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
차기 금고 지정, '깜깜이' 관행을 넘어 투명한 경쟁으로
금고 지정은 화순군의 미래 재정과 군민의 금융 복지를 결정할 중요한 분수령이다. 더 이상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특정 은행의 독점 체제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
화순군은 이제라도 금고지정심의위원회의 구성부터 평가 항목, 배점 기준, 최종 결과까지 모든 과정을 군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평가 항목에서는 출연금의 액수와 같은 정량적 평가에만 매몰되지 말고, ▲군민을 위한 실질적인 금융 우대 혜택 ▲지역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을 위한 상생 금융 프로그램 ▲미래지향적 협력사업 제안 등 지역경제와 군민의 삶에 실질적인 보탬이 되는 정성적 가치를 비중 있게 평가해야 한다.
군민의 혈세는 더 이상 은행의 배를 불리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치열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최고의 파트너를 선정하고, 그 과실이 화순군과 군민 모두에게 온전히 돌아올 수 있도록 군과 의회, 그리고 군민 모두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때다.
송태주 기자 hoahn0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