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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6만여 명, 한 해 예산은 1조 원에 육박한다. 대한민국 우주 항공산업의 전초기지이자, 유자와 석류, 마늘의 고장인 우리 고흥군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금고’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금고는 단순히 돈을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다. 수천억 원의 자금을 어떻게 운용해 이자 수익을 한 푼이라도 더 늘리고, 그 과실을 어떻게 군민과 지역사회에 환원하는지를 보여주는 지자체 금융 파트너십의 바로미터다.
고흥군은 2023년경 4년(2024~2027년)의 살림을 맡길 우선 금고 지정 제안서 접수를 마감하고 새로운 금고를 선정 운영 중이다. 지난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년간 고흥군의 제1금고 역할을 수행해 온 곳은 ‘NH농협은행 고흥군지부’다. 수십 년간 지역의 대표 금융기관으로 자리매김해 온 농협은행과 지난 4년간의 동행은 고흥군과 군민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본지는 새로운 4년의 출발선에서 지난 금고 운영의 성과와 과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군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금고의 모습을 조명해 본다.
4년간 4조 원의 돈줄, '수익 극대화'는 성공적이었나?
지자체 금고 운영의 첫 번째 평가 척도는 ‘수익성’이다. 군민의 혈세로 조성된 예산을 단 하루라도 더 높은 이자를 주는 곳에 예치해 추가 세입을 확보하는 것은 금고와 군 재무부서의 핵심 역량이다.
지난 4년은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극심했던 시기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초저금리 시대(한국은행 기준금리 0.5%)를 거쳐,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가파른 금리 인상기(기준금리 3.5%)를 통과했다. 이러한 롤러코스터 장세 속에서 고흥군과 NH농협은행은 어떻게 자금을 운용했을까?
고흥군의 연간 예산 규모를 평균 8,000억 원으로 가정하고, 이 중 상시 예치되는 여유자금을 1,000억 원이라고 보수적으로 추산해 보자. 금리가 0.1%만 차이 나도 연간 1억 원의 이자 수익이 달라진다. 4년간이면 4억 원이라는 작지 않은 돈이다.
저금리 시기였던 2020년~2021년, 고흥군의 정기예금 평균 이율은 1% 내외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시중은행의 예금금리를 고려하면 특별히 높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금 운용의 ‘유연성’이다. 고흥군 회계과 관계자는 "자금 집행 계획에 맞춰 단기 자금은 수시입출금이 가능한 MMDA(시장금리부 수시입출금식예금)에, 장기 여유자금은 고금리 정기예금으로 즉시 전환하는 등 금고 은행과 긴밀히 협의하며 단 1원의 이자라도 더 받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금리 인상기였던 2022년 하반기부터 2023년까지는 성과가 두드러졌다. 당시 NH농협은행은 지자체 유치 경쟁이 심화하자 4~5%대의 특판 예금을 제공하기도 했다. 고흥군이 이 시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여유자금을 고금리 상품으로 전환했다면, 저금리 시기의 부진을 만회하고 상당한 이자 수익을 거뒀을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군민의 입장에서는 아쉬움도 남는다. 금고 약정서에 명시된 지자체 예금에 대한 구체적인 우대금리 수준과 실제 기간별 예치 금액 및 이자 수익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점은 '깜깜이 운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앞으로는 분기별 또는 반기별 자금 운용 현황과 수익 보고를 통해 군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흥군민이 받은 실질적 혜택은? - "수수료 면제는 기본, 더 필요한 건…"
"농사일 마치고 읍내 농협 들러서 재산세 내는 게 제일 편하제. 다른 은행 가면 수수료도 내야 하고 번거롭잖어." 도양읍에서 마늘 농사를 짓는 김모(68) 씨의 말이다.
NH농협은행이 지난 4년간 군민에게 제공한 가장 큰 혜택은 단연 ‘접근성’과 ‘편의성’이다. 고흥군 관내에는 NH농협은행 지점과 지역 농·축협 지점을 포함해 총 17개의 영업망이 촘촘하게 깔려있다. 이는 고령 인구 비율이 높은 고흥군의 특성상 어르신들이 지방세, 상하수도 요금 등 각종 공과금을 납부하는 데 절대적인 편의를 제공했다.
또한, 군 금고로서 모든 창구와 ATM에서 고흥군 관련 공과금 납부 시 수수료를 면제해 준 것은 군민의 실질적인 금융비용 절감으로 이어졌다. 이 외에도 고흥군 소속 공무원 및 공공기관 임직원들에게는 급여이체에 따른 추가적인 수수료 면제와 대출금리 우대 혜택이 주어졌다.
하지만 일반 군민이 체감할 수 있는 혜택이 '공과금 납부 편의'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한 군민은 "시금고를 유치한 다른 도시에서는 '시민 우대 적금' 같은 특판 상품을 내놓기도 하던데, 고흥에서는 그런 걸 본 기억이 별로 없다"며 "고흥군민이라는 것만으로도 예금이나 대출에서 조금이라도 더 우대받을 수 있는 실질적인 금융 혜택이 아쉽다"고 말했다. 금고 은행의 혜택이 공무원 중심에서 전체 군민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요구다.
지난 5년, 금고 지정 현황과 지역경제 기여도
고흥군의 금고는 예산 규모에 따라 제1금고(일반회계 및 특별회계)와 제2금고(기금)로 나뉘어 운영될 수 있다. 지난 5년간 고흥군의 제1금고는 NH농협은행이, 제2금고는 광주은행이 맡아왔다. 압도적인 예산 비중을 차지하는 제1금고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NH농협은행이 고흥군 금고라는 지위를 통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지역 내 자금의 선순환 구조 확립이다. 고흥군의 예산을 유치한 농협은행은 이를 재원으로 지역의 농업인, 소상공인, 중소기업에 대출을 실행한다. 특히 농업이 중심인 고흥에서 농업정책자금 대출, 농기계 구입자금 지원 등은 농가 경영 안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농협은행 고흥군지부 관계자는 "금고 은행으로서 지역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지역 내 기업과 농가에 대한 자금 지원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둘째, 고용 창출 및 지역 밀착 경영이다. 군지부와 각 읍면 지점에 근무하는 직원 대다수는 지역 출신으로, 이는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 효과를 낳는다. 또한, 지역 사정에 밝은 직원들이 제공하는 금융 상담은 군민들에게 높은 신뢰를 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형 시중은행의 부재로 인해 금융 경쟁이 부족하고, 이로 인해 군민과 지역 기업들이 더 나은 금융 서비스를 받을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금고 지정 시 지역 기여도를 중요하게 평가하되, 건전한 경쟁을 통해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 마련도 필요해 보인다.
금고의 '사회공헌', 단순한 기부인가? 지역 상생 파트너인가?
금고 지정 평가 항목 중 '지역사회 기여 및 지자체와의 협력사업'은 금고 은행의 사회적 책임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다. NH농협은행은 지난 5년간 금고 약정에 따라 상당한 규모의 협력사업비를 고흥군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금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였을까? 군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인재 육성 장학금 지원: 매년 (재)고흥군교육발전위원회에 장학기금을 기탁하여 지역 학생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지역 축제 및 문화행사 후원: 고흥 유자·석류 축제 등 지역의 대표 축제를 후원하여 관광객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
취약계층 지원: 명절마다 독거노인, 저소득 가정을 위한 '사랑의 쌀'과 생필품을 전달하고, 코로나19 시기에는 방역물품을 지원하는 등 사회 안전망 강화에 힘을 보탰다.
농촌 일손 돕기: 농번기에는 임직원들이 직접 일손이 부족한 농가를 찾아 봉사활동을 펼치며 농심(農心)을 나누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들은 분명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금고 유치를 위해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내놓는 수십억 원의 협력사업비(출연금)가 과연 최선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일회성 기부나 행사 지원을 넘어, 고흥의 미래 먹거리인 '우주 항공 산업' 연계 스타트업 육성 펀드를 조성하거나, '청년 귀농귀촌' 정착을 위한 특화 금융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고흥군의 장기적인 비전과 함께하는 '전략적 사회공헌'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로운 4년, '투명한 금고, 든든한 파트너'를 기대하며
지난 4년간 NH농협은행은 고흥군이라는 거대한 배의 항해를 돕는 든든한 '키잡이' 역할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수행해왔다. 촘촘한 영업망을 바탕으로 한 군민 편의성 제공과 지역 농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금융 지원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성과다.
그러나 이제 군민들의 눈높이는 더 높아졌다. 단순히 안정적인 자금 관리를 넘어, 예산 운용의 수익성과 투명성을 극대화하고, 그 과실이 모든 군민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체감형 혜택'을 원한다. 또한, 단순한 기부를 넘어 고흥의 미래와 함께 호흡하는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새롭게 시작될 4년의 금고 계약은 이러한 군민의 기대를 담아내야 한다. 고흥군은 금고 선정 과정에서 더욱 엄격하고 투명한 잣대를 적용하고, 선정된 금고 은행과 함께 자금 운용 현황을 군민에게 정기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금고 은행 역시 '지역의 돈줄'이라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고흥군민 모두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와 진정성 있는 사회공헌으로 보답해야 할 것이다.
고흥군의 1조 원 살림살이는 군수나 공무원의 것이 아닌, 6만 군민 모두의 것이다. 새로운 금고가 군민의 곁에서 때로는 든든한 '금고지기'로, 때로는 미래를 함께 여는 '성장 동반자'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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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주 기자 hoahn0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