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 정치력·뚝심으로 결국 일궈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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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정치력·뚝심으로 결국 일궈냈다
  • 입력 : 2021. 04.27(화) 13:45
  • 윤석민 기자
“아특법 개정은 국회의원이 되면 첫 번째로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일이다”.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문화체육관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장을 역임하며 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탄생을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는 이병훈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광주 동남을)의 말이다. 그 일을 이루기까진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렇지만 결국 웃었다.

▶공직에 오래 몸담고 계셨다. 정치 입문 계기가 어떻게 되시는지?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정치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노무현대통령 때 『아시아문화중심도시 특별법』을 마련하고 종합계획을 수립하여 시작한 사업인데,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광주를 문화수도로 만들고 아시아 문화를 토대로 국가의 성장동력을 마련한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아시아문화전당에 대한 정부의 사업추진 의지가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전당이 정상적으로 완공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울 정도로 상황은 악화되었다. 행정가로서의 한계를 느낀 시점이었다. 그 때 정치적 힘의 필요성을 느꼈고 국회의원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다. 두 번의 실패를 거쳐 세 번의 도전만에 국회에 입성하게 되었다.

▶행정 일선의 주요 보직을 거치는 동안 일 잘하는 이미지가 강한데. 비법이라도 따로 있는지

세종시(행복도시)를 만들면서 1년만에 2,200만평(79.1㎢)의 부지에 대한 97%의 협의매수를 이뤄냈다. 협의매수는 주민과 합의되어야 가능하다. 이는 원주민으로 구성된 생계조합을 만들고 분묘이전과 같은 생계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등 주민의 삶을 돌봄으로써 신뢰를 쌓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문체부의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장을 지내면서 수많은 시민단체와 협의하여 아시아문화전당을 건립했다. 또 광주문화경제부시장을 지내면서 노조, 현대차 등과 함께 많은 대화 끝에 ‘광주형일자리’를 만들고 GGM을 발족시키는 데 힘을 보탰다. 인공지능 사업도 당시에 추진했던 사업이다. 추진했던 대부분의 사업들이 추진과정에서 실패할 것이라는 전망이었으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만들어냈다.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했던 행정인으로서, 이제는 정치인으로서 늘 가슴에 품고 있는 생각은 ‘비전’과 ‘소통’이다.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할지라도 만나서 대화하고 소통하면 해결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광주형일자리 추진과정에서 노동계와, 현대차와의 협상과정에서 양측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히 왔고 불신의 골은 너무나 깊었다. 결국 최종적으로 협약 체결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했던 것은 진정성 있는 소통과 대화를 바탕으로 한 신뢰관계 구축이었다.

또 한 가지는 ‘현장에 답이있다’라는 것이다. 일이 막힐 때는 늘 관련된 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 그래야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아낼 수 있다. 때로는 욕을 들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현장을 피하게 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아특법 개정안 법안 통과에 대한 소감은?

많은 사람이 법 개정이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그러나 수많은 설득과 대화, 난상토론 끝에 결국은 통과되었다. 상임위 역사상 단일법안으로 세 차례 논의되는 등 가장 긴 토론이 있었고, 법사위에서도 이틀간 논의되는 진풍경이 벌어졌으며, 결국 국회 본회의 시작시간을 넘기고 나서야 법사위에서 의결되고 본회의에 부의되어 법이 개정되었다.

이번 법개정은 박근혜정부가 왜곡해버린 법안을 바로잡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본래 국가기관이었던 아시아문화전당을 박근혜정부가 법인으로 넘기려 했고 그 시한이 작년 12월이었다. 이는 태어난지 5년밖에 안된 어린아이에게 독립하라고 집에서 내쫓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당은 터전을 닦기까지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 법의 개정을 위해 이낙연 전대표의 확고한 의지를 비롯해 당직자 여러분들의 많은 협조가 있었고, 문체위 상임위 국회의원들의 많은 도움과 이용섭 광주시장 등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무엇보다도 우리 광주시민의 지지와 성원이 법 통과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 논의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2020년 말까지 개정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아시아문화전당은 국가기관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고 법인으로 운영하게될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렇게 되면 수익성보다 공공성을 중요하게 다루는 전당의 역할에 매우 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임위에서 야당은 원론적인 반대만을 되풀이 하며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우여곡절 끝에 어쩔수 없이 표결에 의해 상임위를 넘어섰으나 법사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공수처법과 같은 쟁점법안들에 밀려 논의조차도 되지 못하다가 결국 해를 넘겨 1월 임시국회에서도 통과가 불발되었을 때는 큰 위기감을 느꼈다. 이 시점에서 “아시아문화중심도시특별법을 꼭 통과시켜야 한다”는 이낙연 대표의 강한 의지가 막판에 법사위를 넘어설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탄생을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앞으로 아시아문화전당의 전망은?

전당은 이제 당초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우선 빠른 시일 내에 조직의 안정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전당장임명, 기존 아시아문화원 인력의 원활한 고용승계를 비롯해 전문성과 노하우를 갖고 있는 인력의 확보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조직 안정은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해 낼 수 있다. 우선 아시아 각국과의 교류와 세계적인 복합문화기관들과 교류, 그리고 인문·예술·테크놀로지의 융합을 통해 창조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당은 문화예술과 문화산업을 이끄는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또한 광주에는 수많은 국내외의 관광객이 몰려들 것이며, 창조적 예술과 전통문화가 어우러지는 관광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아시아문화원 노조 측에서는 기존 직원들의 고용승계에 대한 제도적인 장치가 미비했다는 입장인데

개정법에 아시아문화원직원의 고용승계를 분명히 밝혔다. 다만 부칙의 ‘채용특례’규정에 대해 야당에서 공무원 채용에 대한‘특혜’라고 주장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에 ‘채용특례’조항을 ‘고용에 관한 경과조치’로 수정하고, 아시아문화원 직원은 신설되는 아시아문화전당재단이 정원 내에서 고용을 승계하는 것으로 규정하여 통과시킨 것이다. 따라서 아시아문화원 직원은 전원 아시아문화전당재단이 고용을 승계한다.

아시아문화원 직원 중 아시아문화전당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직원은 임용절차에 따라 시험을 거쳐 임용된다. 법인 직원을 공무원 직원으로 절차 없이 전환하는 것은 공공성에 위배되는 ‘특혜’에 해당되며 현행 ‘공무원법’에도 저촉된다. 따라서 반드시 공무원 채용시험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전당의 공무원은 주로 학예연구직으로 채용될 것이다. 학예연구직 공무원 채용에는 신규채용과 전문경력직 채용 과정이 있는데, 아시아문화원 직원의 경우 전문경력직에 해당될 것이다. 이 경우 해당분야의 근무경력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공무직 직원은 정부의 정원 규정과 상관 없이 해당 기관의 사업비를 토대로 이뤄진다. 따라서 해당직원이 소속된 사업이 전당으로 옮겨지게 되면 자동적으로 전당으로 승계되며, 만약 해당 사업이 재단으로 소속되면 자동적으로 재단으로 고용이 승계된다. 따라서 고용이 승계되지 않는 직원은 없다는 것이 문체부의 입장이다.

▶의원에게 광주가 가지는 의미는?

광주는 민주화의 도시이자 문화도시다. 오랜 민주화 과정에서 소외되었고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황이 되어버린 도시를 창의성을 통해 극복하고 새로운 발전 동력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그 중심에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형 일자리’, ‘인공지능’과 같은 중요 키워드들이 놓여 있다. 나는 이 주제들이 문화를 통해 총체적 형태로 경제화되고 시민의 삶 속에 구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를 문화경제로 정의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 키워드들을 다루는 정책의 핵심에 있었고, 이 주제들은 앞으로도 깊게 연구하며 풀어내야 할 ‘화두’라고 생각한다. 행정인으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삶의 중요한 부분이 광주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공직자이자, 정치인 이전에 ‘인간 이병훈’은 어떤 인물인지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며 지식 또한 계속 진화한다. 결국 내 자신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으로서 날마다 새로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되새기며 생활한다.

미술 작품과 음악, 책을 좋아한다. 예술인과 대화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내게 아이디어와 영감의 원천이라 할 만하다.

▶지역민에게 한마디

팬데믹이 오랫동안 물러가지 않고 있고 오히려 확대되고 있는 어려운 시기다. 나의 행동이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음을 다 함께 직시해야 한다. 생활을 정갈하게 가다듬어야 하며 이웃의 삶을 살피는 지혜가 필요하다. 고통의 시간을 나눠질 수 있는 참된 용기를 우리 지역민들은 가졌다고 생각한다. 내일은 밝은 해가 뜰 것이다.

▶본지의 시그니처 질문이다. 의원의 애창곡이 있다면?

사실 애창곡이 너무 많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듣기 좋아하는 노래는 노르웨이의 민족음악가인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다.
윤석민 기자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