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포단오제보존회

국가무형유산 제123호 '법성포단오제'는 오백 년의 깊은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서해안 최대 규모의 민속 축제이다.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 일대에서 펼쳐지는 이 축제는 단순한 행사를 넘어 풍요로운 어업과 조창(漕倉) 문화를 배경으로 민초들의 삶과 염원이 녹아든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어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용왕제부터 부녀자들의 멋과 풍류가 깃든 선유놀이까지, 법성포단오제는 과거의 전통을 현재의 주민들이 생생하게 향유하며 그 가치를 빛내고 있다. 매년 음력 5월 5일 단오를 전후하여 법성포는 조상들의 얼과 흥이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축제의 장으로 변모하며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풍요의 땅에서 싹튼 오백 년의 역사
법성포단오제의 뿌리는 조선 중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5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축제의 기원에 대해 문헌에 명확히 기록된 바는 없으나 '조창기원설'과 '조기 파시기원설'이 전해진다. 조창이란 백성들에게 거둬들인 세곡을 모아 보관하고 수송하기 위해 만든 창고를 가리키는 것으로 고려 성종 때 처음 설치된 법성포창은 조선 중종 대에 이르러 호남 제1의 조창으로 발돋움했다. 나라 살림의 밑천인 세곡을 보관하고 지키기 위해 수많은 군사와 인부가 법성포에 상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법성포단오제가 대중적인 축제로 발돋움하게 된 배경에는 '파시(波市)'가 있다. 봄이면 칠산바다에 조기가 울음소리를 낼 정도로 모여들어 전국 최대의 조기 파시가 열렸고, 이 시기는 단오와 맞물려 엄청난 물산과 재화가 오가는 경제적 풍요를 안겨주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배경 속에서 단오 명절이 자연스럽게 제천 의식과 결합하여 오늘날과 같은 대규모 축제의 틀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던 단오제는 순탄한 길만을 걸어오지 않았다. 1907년경, 일본의 강압에 의한 군대 해산과 의병 봉기로 나라가 어수선해지면서 그 맥이 끊기는 첫 번째 시련을 맞았다. 40년간 단절되었던 축제는 광복 이듬해인 1946년, 부활했다. 하지만 1974년, 그네뛰기 행사 중 발생한 인명사고로 또다시 10여 년간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다. 두 번의 큰 위기에도 불구하고 1986년에 다시 부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와 전통성을 인정받아 2012년 마침내 국가무형유산 제123호로 지정되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 축제로 굳건히 자리매김하였다.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는 신성한 의식
법성포단오제의 핵심은 신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제의에 있다. 축제 기간에는 총 네 가지의 중심 의식이 거행되는데, 법성포의 진산인 인의산에서 마을의 수호신에게 안녕을 고하는 '산신제(인의제)',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에서 마을의 화합과 풍어를 비는 '당산제', 한스러운 영혼을 위로하는 '무속수륙재', 그리고 단오제의 가장 독특하고 중심적인 제의인 '용왕제'가 그것이다. 특히 용왕제는 풍어와 조업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배를 타고 칠산바다로 나가 선상에서 펼쳐진다.
제관과 무당 일행이 먼저 용왕의 탱화를 걸고 유교식으로 제사를 올리며 축문을 읽으면, 뒤이어 무녀와 악사들이 본격적으로 용왕굿을 연행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굿의 마지막에는 쇠머리를 바다에 던지며 풍어와 무탈을 기원하는데, 이처럼 유교식 제사와 무속 신앙이 결합된 독특한 구조는 법성포단오제만의 고유한 특징이다. 용왕제가 끝나면 곧바로 법성포의 고유 민속놀이인 '선유놀이'가 이어진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부녀자들이 나룻배에 올라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장구장단에 맞춰 춤과 노래로 한껏 풍류를 즐기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이 외에도 단오의 대표 민속놀이인 씨름과 그네뛰기가 펼쳐지고, 창포물에 머리를 감으며 액운을 쫓는 체험, 쑥떡 메치기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되어 축제의 흥을 더한다. 또한, 예로부터 그 권위를 인정받아 온 '숲쟁이전국국악경연대회'는 전국의 명인 명창들이 기량을 겨루는 예술의 장으로서 법성포단오제의 격을 한층 높이고 있다.

-민간 주도로 이어온 나눔과 화합의 정신
법성포단오제가 다른 지역 축제와 차별화되는 가장 큰 특색은 관 주도가 아닌,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봉사와 협력으로 명맥을 이어왔다는 점이다. 과거 보부상 조직인 백목전계가 주관하여 단오제 한 달 전부터 난장기를 설치하고 축제 개최를 전국에 알렸던 전통과 정신을 이어받아, 지금도 법성포단오보존회와 지역 주민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축제를 치른다.
그 정신을 이어 지금까지도 난장트기를 꾸준하게 이어오고 있고, 이러한 자생적인 힘은 두 번의 중단이라는 위기를 극복하고 축제를 부활시킨 원동력이었다. 또한, 일반적으로 단오 행사는 북쪽으로 갈수록 강하게 나타나는데, 남쪽 지방인 법성포에서 그 원형을 굳건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가치가 높다. 무엇보다 법성포단오제는 '나눔과 어울림'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축제다.
예로부터 단오절이 되면 남녀노소, 신분의 귀천 없이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었던 전통을 계승하여, 지금도 굴비 시식행사를 열고 제천 행사가 끝난 음식을 함께 나누며 따뜻한 정(情)과 신명 나는 흥(興)이 넘치는 한마당을 만들어낸다. 수백 년의 역사를 지켜온 자생적인 힘과 공동체 정신이야말로 법성포단오제를 미래로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이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 축제로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의 근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