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마을전통시장을 찾은 조상래 곡성군수.

전남 곡성군의 5일장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고무 대야에 직접 기른 채소를 담아 나온 할머니 앞에서도 장을 보러 온 젊은 관광객들이 지갑 대신 스마트폰과 신용카드를 꺼내 든다. "카드 되나요?"라는 물음에 난처해하던 상인들의 표정은 사라졌고, 시장 곳곳을 누비는 도우미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곡성군은 지난 11월부터 관내 전통시장 3곳(기차마을·옥과·석곡)을 대상으로 전국 최초 '전통시장 노점 카드 결제 지원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사업자등록증이 없어 카드단말기를 개설할 수 없었던 영세 노점상들의 숙원을 해결한 혁신적인 시도로 평가받는다.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시기에 시범 운영을 거친 후 곡성군 전남형 기본소득 선불카드 지급과 함께 본격적으로 추진된 이 서비스는 전통시장의 해묵은 난제였던 '결제 불편'을 해소하며 지역 경제의 새로운 활력소로 떠오르고 있다.

-'사업자등록'의 벽을 넘어, 발상의 전환이 만든 '공유 경제'
그동안 전통시장 노점의 가장 큰 걸림돌은 '사업자등록' 부재였다. 기본적으로 사업자등록증이 없으면 카드 가맹점 가입이 불가능해 단말기를 설치할 수 없다. 이에 따라 현금 거래만 가능했고, 이는 현금을 잘 쓰지 않는 젊은 층과 관광객의 유입을 막는 거대한 장벽으로 작용해왔다. 곡성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별 설치'가 아닌 '공유와 대행'이라는 우회로를 택했다. 개별 노점상이 아닌, '전통시장 상인회'를 가맹점으로 등록하여 법적 테두리를 마련한 것이다.
시스템의 핵심은 ‘찾아가는 결제 서비스'다. 상인회 명의로 개설된 이동식 카드단말기를 '전통시장 버스 도우미(결제 도우미)'가 소지하고 상주한다. 손님이 노점에서 물건을 구매하려 할 때 상인이 도우미를 호출하면, 도우미가 즉시 이동하여 결제를 대행한다. 결제된 대금은 상인회 통장으로 입금된 뒤, 정산 과정을 거쳐 해당 노점상에게 현금으로 지급되는 구조다. 현재 이 서비스는 곡성 기차마을 전통시장을 비롯해 옥과, 석곡 전통시장 시행 중이다.

-'전남형 기본소득'과 맞물린 시너지… 지역 자금 유출 막는다
곡성군이 이 사업을 서두른 배경에는 단순히 결제 편의성 제공을 넘어선, 치밀한 경제적 셈법이 깔려 있다. 바로 '정책 수당의 소비처 확보'다. 최근 전라남도를 비롯한 지자체들은 농어민 공익수당, 전남형 기본소득,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 포인트 등을 대부분 '카드형 지역화폐'나 '바우처' 형태로 지급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 자금이 전통시장 노점에서는 사용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카드를 받지 못하니 수십억 원에 달하는 지역 내 유동 자금이 영세한 노점 대신 카드 결제가 가능한 대형 마트나 편의점, 프랜차이즈 상점으로 쏠리는 '소비 불균형' 현상이 발생했다.
곡성군 관계자는 "카드 리더기 추가 확보와 예비 장비 마련을 병행해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구축할 계획이다. 같은 기간 동안 결제 건수와 매출 증가 등 운영 성과를 분석해 사업 지속 여부와 개선 방향을 도출하고 내년도 1월부터는 QR결제와 간편결제 등 확장형 디지털 결제 도입 가능성도 검토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시범 운영 대성공… 하루 매출 1천만 원의 기적
반응은 즉각적이고 폭발적이었다. 지난 11월 본격 시행 이후, 곡성 기차마을 전통시장 노점에서만 하루 카드 결제 매출이 1,000만 원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상인들은 과거 현금이 없는 손님에게 바쁜 와중에 계좌번호를 적어주느라 애를 먹어야 했고, 그 과정이 번거로워 구매를 포기하고 돌아가는 손님도 상당수였던 어려움에서 벗어났다. 카드 결제 도우미의 지원으로 결제 문제가 원활히 해결되면서 업무 환경이 한결 편해진 것은 물론, 이는 실질적인 매출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평소 전통시장의 정취는 선호하면서도 현금을 따로 챙겨야 하는 점을 부담으로 느끼던 방문객들에게 이번 변화는 큰 호응을 얻고 있다. 2~3천 원 정도의 소액 상품도 눈치 보지 않고 카드로 결제할 수 있게 되면서, 향후 마트보다 시장을 더 자주 찾게 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단순 지원 넘어 '지속가능한 상생 모델'로
곡성군은 이번 노점 카드 결제 지원사업 외에도 기존 사업자등록이 있는 소상공인을 위한 '카드 수수료 지원사업(최대 50만 원)'을 병행하며 소상공인 지원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 주력하고 있다. 등록 상인은 수수료 부담을 줄여주고, 미등록 노점은 결제 수단을 열어주는 '투트랙 전략'이다.
이 사업은 곡성군의 사례가 고령화와 디지털 전환 사이에서 길을 잃은 전국의 전통시장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별도의 복잡한 가입 절차 없이, 고령의 상인들이 기존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디지털 경제에 편입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기 때문이다.

조상래 곡성군수는 곡성군과 전통시장 상인회가 함께 협력하여 전통시장 매출 증가라는 성과를 이뤄냈다”라며, “앞으로도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현장 중심의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디지털 결제 시스템이라는 날개를 단 곡성군의 전통시장이 '현금 없는 사회'의 파고를 넘어,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