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0’선의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모두 합쳐 ‘18’선의 중진 후보 4명을 꺾고 11일 보수의 거대 정당인 국민의힘 당대표로 선출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 대표는 당원 선거인단 투표에서 37.4%로 나경원 후보(40.9%)에게 근소한 차이로 뒤졌지만 일반 국민 여론조사의 압도적 승리(58.8%)에 힘입어 당권을 차지했다.

기존의 좌우 기성 엘리트를 부정‧폄하하고 보수적인 우파 가치를 적극 옹호하면서 거침없는 언행으로 포플리즘의 상징이었던 미국의 트럼프가 한국의 이준석으로 재 탄생했다는 평가이다.

한국 보수정당에서 30대가 당대표가 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70년대 김대중의 40대 기수론의 21세기 버전으로 현 정치의 주역인 586세대의 퇴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50-60대로 대표되던 정치권의 중심축이 20-40대로 이동되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보수 성향이 강한 국민의힘에서 젊은 대표가 탄생한 가장 큰 배경은 무엇일까.

보수 진영에서 정권교체 열망이 그만큼 강하다는 징표다. 바꿔 말하면, 이대로 가선 내년 3월 대통령선거에서 또다시 질 거라는 위기감의 발로다. 1970년 민주당에서 40대 기수론이 분출하자 65살의 유진산 총재는 “젖비린내가 난다”라고 폄하했다. 그러나 유진산, 유진오, 허정 등 원로들을 뒷물결로 보내고 김대중 의원이 대통령 후보로 올라선 데엔, 기존 리더십으론 또다시 박정희 군사정권에 패할 것이라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강한 위기감이 작동했다. 이준석 대표 선출은 야당 지지자들의 결집력이 내년 대선에서 매우 높을 것임을 예고한다.

또 하나는, 세대교체를 통한 변화의 열망이다.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과 비판은 언제나 있어 왔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기성 정치인,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 신뢰가 항상 최저치에 머물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야권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윤석열, 안철수에겐 ‘이준석 선출’은 어떤 득실이 있을까.

국민의힘 입당이 거론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이제는 입당보다 계속 관망하는 입장을 취할 것이다. 이준석 대표의 선출은 윤석열 입장에선 나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힘의 퇴행적이고 고인물 같은 이미지를 탈색할 수 있으니까, 또 이준석이 “박근혜 탄핵은 정당하다”라고 말했으니, 국정 농단 수사를 지휘한 윤석열로서는 다행일 것이다.

더 큰 이유는 윤석열 자신에게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은 정치인이 아니어서 이제까지 본격적으로 검증을 받아본 적이 없다. 국정 운영의 비전과 정책은 그렇다 쳐도, 당장 장모와 부인을 둘러싼 여러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순간, 이 모든 의혹이 한꺼번에 도마 위에 올려질 것이다. 그러니까 윤석열로서는 최대한 늦게 링에 오르는 게 검증의 칼날을 그나마 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양파껍질이 하나하나 벗겨지기 전에 곧바로 경선전을 통과해 본선으로 들어가는 게 정치적으로 가장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입당 시기를 빨리할 이유가 없다.

국민의힘 이준석 신임 당대표가 선출된 것을 두고도 야권 대선 주자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공식적으로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12일 이 대표와의 회동을 가졌다. 두 사람 모두 합당에는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흡수 합당이냐 당 대 당 통합이냐의 방법론에서 입장 차가 있다. 일각에서는 그보다 앞서 개인적으로 쌓인 감정적 앙금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준석 대표는 앞서 안철수 대표를 ‘소’에 빚 대며 “소 값은 후하게 쳐주겠다. 소 말고 다른 것(조직)도 들여오려고 하는데 난 소에만 관심이 있다”라고 말했다. 당 대 당 통합에 부정적인 뜻을 내비친 것이다. 안 대표로선 득보다 실이 큰 이준석 대표의 선출이다.

이준석 윤석열 안철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겐 앞으로 닥쳐 올 난관이 많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당내 중진 정치세력에 의해 좌초하거나 구습과 타협한다면 지금의 보수가 보냈던 기대와 희망은 물거품처럼 빠른 시간 내에 사라질 것이다. 이준석 호의 험난한 항해는 지도부 구성과 대선 관리 문제가 첫 시험대인 것이다.

이 대표는 “대표가 되면 대선 후보가 되는 사람과 긴밀히 상의해 김종인 전 위원장이 꼭 선대 위원장을 맡을 수 있도록 하겠다”던 구상에 향후 김종인 전 위원장의 국민의힘 대선 합류도 지켜볼 관심사다.

6.11전당 대회에서 선출직 최고위원 4명 중 3명의 여성 정치인(조수진, 배현진, 정미경)이 선출되는 등 확 젊어진 지도부 구성도 주목할 만하다. 이 대표는 첫 당내 인사로 초선의 황보승희, 서범수 의원을 수석대변인,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당 대표 공식 첫 행보로는 동작동이 아닌 대전 현충원을 참배하고, 천안함 호 유족들을 챙기면서 문재인 정권의 ‘대화와 타협’ 대북 정책 노선에 대해 ‘북한과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는 대북 강경책을 시사하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돌풍’으로 민주당에선 ‘대선 경선 연기론’이 다시 불붙는 모양새다.

이달 들어 민주당 내 ‘경선 연기론’에 대한 온도는 달라진 분위기다. 이준석 당대표의 등장으로 그가 이끌어나갈 국민의힘의 차기 대선 경선에 관심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일부 권리당원들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가 결합할 경우 경선 흥행 시너지를 우려하며 연기론을 주장하고 있다.

당사자인 대선주자들이 ‘경선 연기론’ 공론화에 직접 나서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여권
‘빅 3’인 정세균 전 총리는 “경선 시기나 방법 등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 됐다”라며 경선 연기론에 힘을 실었다.

이낙연 전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대선 전략에 대해 “원칙은 흥행 한 가지”라며 대선 경선 후보 토론회를 팀 배틀로 진행하겠다는 구상 등을 밝히며 경선 연기론에 무게를 두었다.

한편 '경선 일정'을 놓고 여권 선두를 달리는 이재명 경기지사는 "정치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중요한 건 국민의 눈높이"라며 여전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광재, 박용진, 김두관 의원과 최문수 강원지사 등도 입을 모아 ‘경선 연기’를 주장하고 있다.

내부에서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지면서 다음 주 확정할 예정이었던 대선기획단 인선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는 21~22일로 예정됐던 예비후보 등록 일정도 연기될 전망이어서 당 지도부의 고민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경선연기론

내년 대권 승리를 위해 민주당은 변화와 바람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주축 세력인 운동권 586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할 만큼 했고, 혜택받을 만큼 받았다. 4년여간 민주의 성지 호남은 끊임없는 지지를 그들에게 보냈다. 하지만 온갖 위선과 불공정, 반칙을 저지르고도 송영길 당대표와 깨어 있는 의원 몇 명을 제외하고는 반성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는 이념과 특권의식, 나만 옳다는 독선과 편 가르기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생각하고 날마다 성찰하며 쇄신과 개혁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내년 대선에서 다시금 호남 민심의 심판을 더불어민주당은 받게 될 것이다